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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국민들이 편하게 법의 보호 받도록 주민 곁에 있을 것”

등록일 2022-10-10 18:44 게재일 2022-10-11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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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우가 만났다<br/>배희건 대구경북지방법무사회장
배희건 대구경북지방법무사회장
배희건 대구경북지방법무사회장

우리는 법의 우산 아래에서 살고 있다. 특히 자본주의 사회에서 재산권을 보호받고 행사하기 위해서는 더욱 법에 의존해야 한다. 그런데 사회가 다양화하고 다원화할수록 법률관계는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해 생기는 억울한 문제가 언제든지, 누구에게든지 발생할 수도 있다.

배희건 대구경북지방법무사회 회장은 “국민의 재산권을 보호하는 일, 복잡하고 어려운 법률 절차를 시민 편에서 쉽고 편리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법률전문가가 법무사”라고 말한다.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법은 멀고 높은데 있다는 인식이 존재한다”는 배 회장은 법무사를 “국민 편에서 법률적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생활 법률 전문가”라고 자신한다.

 

“생활 법률사무를 담당하는 법무사, 국민 재산권 보호·어려운 법률 조언 받을 수 있어

대구경북 법무사 회원 640명 중 시험 출신 법무사 104명… 어렵고 까다로운 시험 경쟁률 치열

변호사와 법무사는 윈윈 관계… 서로 의견 조율·소통으로 선의의 경쟁·일원화 필요해”

 

-국민들로서는 여전히 법률이 어렵고 문턱은 높은 것 같다. 법무사는 어떤 직업인가.

△법무사는 국민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법률서비스를 제공하는 법률전문가다. 등기, 공탁, 경매사건 입찰대리, 회생 파산신청사건 대리, 민사소장, 가압류 가처분, 형사소장, 비송사건 등 업무를 하고 있다. 그리고 법원이나 검찰청에 제출하는 서류의 작성과 제출 대행 업무를 하고 있다. 법원에서 이뤄지는 재판 이외의 사건들에 법무사가 지원해주는 것이다.

 

-법률전문가로는 변호사가 있다. 변호사와 어떤 차이가 있나.

△변호사는 법무사의 업무를 포함하여 법률사무 전반에 대해 일을 할 수 있다. 실제 업무에서는 변호사는 소송 대리를 전문으로 하고 있다. 그러니 소송이 아닌 생활 법률사무는 법무사들이 맡고 있다고 보면 된다. 특히 등기 업무나 회생과 파산신청사건은 법무사가 처리하는 것이 의뢰인에게 경제적이고 시간적으로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재판에서 법무사와 변호사의 차이를 쉽게 설명해 달라.

△법무사는 법률전문가이지만 소송대리권이 없다. 법무사의 업무는 소송 서류를 작성하고 제출을 대행하는 권한만 있고 법정에 소송대리인으로 출석할 수 없다. 그래서 법무사가 재판 관련 서류를 작성하더라도 재판에는 민원인이 직접 당사자로 출석해야 한다.

 

-그렇다면 민원인으로서는 구태여 법무사를 찾을 필요가 없을 것 같다.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실제로 소송사건 중 복잡하고 어려운 사건은 많지 않다. 그러니 재판 당사자가 어느 정도 지식과 능력만 있으면 구태여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더라도 법무사의 도움만으로도 법정에 출석해서 소송을 진행할 수 있다. 법무사가 시간과 경제적인 조건에서도 훨씬 유리하다는 거다. 법무사는 전국 곳곳에 포진해 있어 국민들이 주거지 주변에서 쉽게 접근할 수 있고 법률 조언을 받을 수 있다. 경북도내 시군마다 법무사 없는 곳은 없다. 무엇보다 경비도 저렴하다. 변호사는 법정에 출석해야 하니 수임료가 비쌀 수밖에 없지만 법무사는 그런 부담에서 상대적으로 유리하다.

 

-법무사와 변호사의 직역 간 다툼은 없나.

△법무사와 변호사는 경쟁 관계가 아니다. 서로 보완하면 윈-윈 할 수 있다. 이석화 대구지방변호사회장도 자주 만나 서로 의견을 조율하고 소통한다. 지난 여름 대구 변호사사무실 방화 참사사건 때도 우리 법무사들이 ‘도와줄 일이 없나’ 하고 먼저 제안했고 성금 2천만 원을 모아 변호사회에 전달했다. 국회에서 검수완박 법안 처리를 놓고 여야가 대결 국면에 들었을 때는 대구 법무사회도 반대 현수막을 내걸어 변호사회의 입장을 지지했었다.

 

-최근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이 쏟아지면서 경쟁이 치열해지자 변호사들이 생존경쟁을 위해 활동 반경을 넓히면서 충돌이 생길 법도 하다.

△사실 개업 변호사들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그런 우려가 일부 보이기도 한다. 법무사회에서 변호사회에 선의의 경쟁을 벌이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등기사건에 대해 법무사와 변호사가 같이 선의의 경쟁을 하고 시장 질서를 무너뜨리는 덤핑은 하지 말자고. 그래야 등기 시장이 건강하게 살아나고 법무사와 변호사가 모두 살 수 있다고 말했다. 아파트 등기의 경우 1천 세대 정도 등기 업무를 맡으면 한 때는 수억 원대의 수익을 올리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시대가 지나갔다. 지나치고 무질서한 경쟁 탓이다.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 시공사가 하는 보존등기나 입주자가 하는 이전등기, 은행이 하는 설정 등기 등에서 경쟁자는 많고 수요와 공급이 밸런스를 이루지 못하니 규정에 따른 보수를 받는 것이 쉽지가 않다는 거다. 그래서 시장이 제대로 건강하게 돌아가야 한다며 변호사와 법무사가 선의의 경쟁을 해서 공존하자고 제안한 것이다.

 

-현재 개업 변호사는 전국적으로 2만6천명 정도 되고 올해 변호사시험에 1천700명이 합격한 것으로 알고 있다. 지금 법무사는 얼마나 되며 어떻게 구성되어 있나.

△법무사는 전국 7천500여 명이다. 대구경북 회원 640명(9월 현재) 중 시험으로 법무사가 된 회원은 104명(16%) 뿐이고 법원 출신이 344명, 검찰 출신이 192명으로 대부분이 법조 경력자다. 법무사 시험은 어렵고 까다롭다. 로스쿨 못지않다. 그렇지만 해마다 120명 정도 인맥이나 경험도 없이 새로 진출하는 법무사에게 법률시장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 젊은 변호사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법무사와의 영역 다툼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는 것도 한 원인일 것이다.

 

-이력이 특이하다. 중졸로 고졸자격 검정고시 출신으로 검찰 수사관이 됐다.

△농사짓다가 평생 농군이 될 수는 없다며 스물일곱 청년시절 홀어머니를 남겨두고 성주에서 대구로 나와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하루 4시간 자고도 정신은 초롱초롱했다. 시험에 떨어지면 농사꾼이 될 수밖에 없다는 절박한 심정이 나를 몰아세웠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120대 1이라는 경쟁을 통과했으나 절박하면 최선을 다하게 된다는 경험을 얻었다.

 

-하필 어렵다는 검찰사무직을 택했나.

△당시 검찰사무직 시험은 수학이 없었다. 다른 과목은 독학으로도 가능했지만 수학의 미분 적분은 정말 해결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검찰사무직을 택했는데 지금 보니 적성에도 맞는 것 같았다.

 

-검찰청에서는 주로 어느 부서에서 근무했나. 당시 검찰청 수사관과 검사와의 관계는 어땠나.

△주로 특수부와 형사부 검사실에서 근무했다. 검찰수사관은 관리부서에 근무해야 승진 기회도 많은데 검사실에서 근무했다. 수사에는 베테랑이 됐고 사건처리를 잘 해서 내가 근무하는 검사실에는 미제사건이 적었다. 검사와 업무 협조가 잘 되었는데 그것이 후임검사에게 인수인계되면서 관리부서에서 근무할 기회를 놓친 셈이다. 검사로서는 미제사건이 적으니 고과점수가 높았겠지만 덕분에 나는 검사실 근무를 오래 하게 된 것이다. 강력통 검사로 알려진 김홍일 전 대검 중수부장은 대구지검에서 초임검사 시절 대부분의 검사나 수사관들이 기피하는 끔찍한 강력사건 현장이나 시신 부검 현장 지휘를 자발적으로 도맡다시피 했다. 끝까지 현장을 고집한 김 검사는 대구 지하철 방화사건과 이명박 전 대통령의 대곡동 사건을 맡아 해결하는 등 그 능력을 인정받아 대검 중수부장과 부산고검장까지 승진해 법조인들이 존경하는 검사의 본보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검찰청에서 근무할 당시 기억나는 일화가 있으면 이야기해 달라.

△억울한 사건은 내 일처럼 해결해줘야 직성이 풀렸다. 모두가 외면했지만 ‘반드시 사연이 있을 것’이라고 믿고 끈기 있게 민원인의 이야기를 들어 해결해주어 ‘한을 풀어 줘서 고맙다’는 큰 절을 받기도 했다. 정동기 전 민정수석이 대구지검 특수부장일 때 대구 유명인사의 아들 사기사건이 있었다. 피해자는 몇 차례 고소해도 사건은 무혐의 처리되었고 고소인만 오히려 사업이 부도나서 피해 다니는 신세가 됐다. 고소인의 아버지가 찾아와서 ‘한을 풀어 달라’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정 부장에게 보고해서 ‘철저히 수사해 보라’는 허락을 얻고 수사해보니 피고소인은 “내가 누군데…. 네가 뭔데….”라며 안하무인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당시 YS(김영삼 대통령)와 직접 통하는 사이였고 여러 차례 진정과 고소에도 사건은 유야무야되고 있었던 것이다. 피고소인에게 “합의 안 되면 구속할 수밖에 없다”고 했더니 내가 거부할 수 없을 것으로 생각했던지 당시로서는 유명 변호사를 선임했다. 그러고도 피해자와의 약속을 지키지 않아 결국 구속함으로써 사건을 해결한 적이 있었다. 모두가 외면하던 고위층 관련 사건을 원칙대로 처리해 해결한 것이다. 당시 고소인의 늙은 부모들이 검찰청에 찾아와서 진심으로 감사한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정 수석은 대구지검장과 고검장 시절에도, 그 후에도 기회 있을 때마다 연락 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법무사로서도 억울한 일을 해결해 준 사건이 있나.

△최근 한 친구가 찾아와서 ‘내 어머니를 찾아 달라’고 하소연을 했다. 친구의 어머니가 후취로 들어와 삼남매를 낳았으나 호적에는 그들 모두 큰어머니(전처) 소생으로 등록돼 있다는 것이다. 70대의 친구는 “자식들 키우느라 고생만 하다 돌아가신 생모가 자식 하나 없다는 것이 너무 불쌍하고 억울하기도 하다”며 한을 풀어 달라는 것이다.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가도 일만 복잡하고 돈 되지 않으니 자신이 없다면서 아무도 수임하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관련 판례를 찾아보고 60년 전 초등학교 생활기록부 등 입증서류를 수집해 판결을 받아 친구의 소원을 풀어주었다. 개인적으로도 보람이었던 이런 사건이 법무사가 해결해야 할 생활 법률사무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변호사 수가 늘어나면서 법조일원화는 미뤄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법무사와 변호사의 법조직역 일원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등기 업무는 실무적으로 법무사가 오히려 유리하다. 법정의 소송사건이야 당연히 변호사가 전문이지만 사법보좌관의 업무, 서류 작성이나 절차법 같은 법무사가 유리한 영역이 있고 이를 인정해야 한다. 절차법에는 변호사보다 법무사가 오히려 유리한 점이 있을 수도 있다. 서로 조화롭게 보완하면 변호사와 법무사가 상호 공존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

 

-후배들에게 특별히 강조하는 말이 있나.

△“우리는 국가의 혜택을 받았음을 잊지 말자”고 강조하곤 한다. 개인적으로도 회장으로서 후배들에게 보탬이 되는 일을 하려고 노력한다. 나는 사무실도 건물 안쪽에 자리 잡았다. 우연히 들르는 고객이 아닌, ‘일부러 알고 찾아오는 민원인’을 고객으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다. 직원에게도, 후배에게도 “우리는 장사꾼이 아니다. 돈 안 되고 귀찮은 고객일수록 친절하게 대해라”고 강조한다. 법률 서비스를 통해 법률로부터 소외되고 불이익을 받는 사람이 없는 세상을 만드는 데 법무사가 한 부분을 맡아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 배희건(裵熙建·73)

대구경북지방법무사회장. 성주 출생. 고졸 자격 검정고시. 1975년 가을걷이를 마치고 대구로 나와 1년 동안 독학 후 검찰수사관으로 출발. 주로 검찰에서 특수부장 형사부장실 검찰수사관으로 수사업무에 주력. 18년 대구지검 근무동안 검사장, 법무부장관 표창 등 5회 수상하고 1995년 법무사 개업.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좌우명이다. 자기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야말로 그 자체로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늘 최선을 다하자’고 스스로 다짐하고 후배들에게도 강조한다. “독학으로 검찰수사관이 되고 보니 긴장이 풀렸는지 더 이상 노력하는데 느슨해졌다. 그 때 계속 공부해서 7급 공채에 도전했다면 국가와 국민을 위해 더 큰 봉사를 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후회가 남는다.”

법조직역인 변호사들에게는 ‘병 안의 새를 꺼내려면 주먹을 펴야 한다’며 공생을 강조한다. 욕심 부리지 말고 같이 가자는 것이다.

 

/이경우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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