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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회 포항스틸에세이 공모전, 홍윤선 씨 ‘쇠물고기’ 대상

윤희정기자
등록일 2022-10-30 19:14 게재일 2022-10-31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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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스틸에세이 공모전<br/>수필 500여편 출품, 김영아 씨 ‘철의 인문학’ 금상 등 12명 입상 영예<br/>심사위원회 “철이라는 소재 한계 넘어 철학적 사유 돋보이는 작품들”

경북매일신문이 포항시와 함께 개최하는, 철을 소재로 한 창작 문학작품 공모전 ‘포항스틸에세이 공모전’ 제6회 수상자들이 결정됐다.

제6회 포항스틸에세이 공모전 심사위원회는 최근 심사를 진행, 홍윤선(51·경남 김해시·사진) 씨가 응모한 수필 ‘쇠물고기’를 대상작으로 선정했다고 30일 밝혔다.

대상 작품 ‘쇠물고기’는 풍경과 그 끝에 매달린 쇠물고기를 통해 우리 각자가 자기만의 걸음과 속도로 다른 세계를 향해 나아가기를 바라는, 작가의 인문학적 깊은 사유가 담긴 수작으로 호평받았다.

금상은 김경아(울산시) 씨의 ‘철의 인문학’, 은상은 이승애(충북 청주시) 씨의 ‘활자나무’, 동상은 정미영(포항시) 씨의 ‘더 이상 문은 녹슬지 않는다’, 하미주(대구시) 씨의 ‘사랑의 흔적’ 등이 최종 수상작으로 각각 결정됐다.

가작은 이원락(포항시)·윤혜연(경남 진주시)·김주태(인천시)·지연구(경기도 안양시)·이성은(전광주광역시)·고미자(제주시)·박영순(대구시) 씨가 뽑혔다.

포항스틸에세이 공모전은 현대문명의 상징이자 한국 경제발전의 원동력이 돼온 철강산업의 소중함을 함께 나누고 재도약을 기원하기 위해 마련한 전국 유일의 철(鐵·Steel)을 소재로 한 수필 작품 공모전이다. 포항시 주최, 경북매일신문·스틸에세이 운영위원회 주관으로 치러진 공모전은 올해가 여섯 번째다.

지난 8월 26일부터 10월 21일까지 국내외 거주자(기성문인 포함)를 대상으로 접수한 올해 공모전에는 호주를 비롯 서울, 경남, 전남, 제주 등 국내외에서 스틸과 관련한 추억이 담긴 수필 작품 500여 편이 출품돼 대상 1점, 금상 1점, 은상 1점, 동상 2점, 가작 7점 등 모두 12점이 입상의 영예를 안았다.

심사위원회는 “‘제6회 포항스틸에세이 공모전’ 수상작들은 무엇보다 철이라는 소재를 물리적 형태 그대로 풀어내는 것을 넘어 또 다른 철의 세계를 넘나드는 철학적 사유가 돋보이는 좋은 작품들이었다”고 평가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대상 수상 소감

납작해서 볼품없는 쇠물고기가 하늘을 유영하고 있습니다. 무늬도 지워지고 크기도 미미해 소리조차 희미합니다. 초라한 쇠물고기는 저를 닮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글을 쓰고 난 뒤 바다를 떠난 쇠물고기가 유별나다는 소리를 들을까 봐, 혼자서 외롭고 두려울까 봐, 하늘을 올려다볼 때마다 쇠물고기를 떠올리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이 또한 괜한 걱정이겠지요. 각자 만들어내는 소리의 동심원이 퍼져나가 하나의 커다란 울림으로 어우러질 테니까요. 다른 세상을 꿈꾸며 치열하게 돋쳐 오르는 그들의 힘을 믿어보고 싶습니다. 산사에서 시작된 여린 풍경 소리가 산 그림자를 따라 낮은 자리까지 깊숙이 울리는 듯합니다. 종어성(鐘魚聲)같이 미약한 글이 어떤 이의 마음종을 울릴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수상 소식을 듣고 일찍 세상을 떠난 어머니, 나의 복남 씨를 떠올렸습니다. 이제는 복남 씨보다 제가 나이가 더 많아져 버렸습니다. 젊은 어머니에게 기쁜 소식이 가닿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철이라는 소재를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장을 마련해준 경북매일신문사와 포항스틸에세이 관계자분들께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뒤에서 걷는 이가 수월하게 걸어오도록 앞서서 글불을 밝혀주는 김정화 선생님은 저의 빛나는 쇠물고기입니다. 외로운 길이라는 걸 알기에 마음 모아 고마움을 전합니다. 동서대수필 문우님들 덕분에 힘을 얻어 글을 씁니다. 대학생이었던 저에게 그 시절부터 글을 써보라고 권했던 홍성윤 교수님께 이제야 소식을 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지금 이 시각에도 고군분투하며 최선을 다하고 있을 큰아들과 군 복무 중인 작은아들, 축하 막걸리를 사 줄 남편과도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

홍윤선 약력

△1971년 경남 고성 출생

△부경대학교 졸업

△2020년 ‘수필과비평’ 등단

△2022년 경북문화체험 전국수필대전 동상

△부산수필과비평작가회

심사평

공모전은 공모요강에서부터 출발한다. 응모자의 이름은 반드시 별지에 기재해야 하며, 에세이의 기본을 지켜야 한다. 넋두리하는 글, 자아도취에 빠진 글, 과거 회상에 맴돌다 주제를 잃어버린 글, 소재에 빠져 겉돌다가 사유를 이끌어내지 못한 채 마무리된 글은 안타깝게도 좋은 점수를 얻기 어렵다는 것을 미리 밝혀둔다.

스틸이라는 소재에 대한 고민 때문인지 대부분 철로 된 사물을 중심으로 자신의 과거를 다루는 엇비슷한 이야기가 다수였다. 소재를 물리적 형태 그대로 풀어내는 작품보다 소재의 진화, 즉 정신적 변화를 다룬 글에 더 초점을 두었다. 다시 말하면 철의 기능적인 면을 서술하기보다는 개인의 경험을 통해 얻었던 인문학적 질문과 답을 향해 사유로 잘 풀어내고 일반화시킨 작품 중심으로 논의한 끝에 12작품을 선정하였다.

홍윤선의 ‘쇠물고기’는 철이 물고기가 되고, 마침내 명상이 되는 또 다른 세계로의 자연스러운 이동을 통해 사유가 확장되었다. ‘풍경’이라는 말보다 ‘쇠물고기’라는 신선하고 인문학적인 제목이 시선을 끌었다. 함께 응모된 ‘판갑옷’과 ‘쇠길 위에 서다’도 철의 진화에 대한 철학적 사유가 깊었다. 세 작품 모두 글과 문장이 고르며 수준이 높아 대상 작품으로 선정하는데 이견이 없었다.

김경아의 ‘철의 인문학’은 철에 대한 사유를 병렬식 구조로 풀어나간 점이 타 작품에 비해 특이할 점이었다. 철에 대한 예의가 바르고, 주제의식에 충실하였으며, 철의 사유를 따라 또다른 세계를 건너갈 수 있도록 독자를 이끌었다는 점에 공감하여 금상으로 선정하였다.

이승애의 ‘활자나무’는 철이 금속활자가 되고, 책으로 진화되는 세계를 차분하고 깔끔하게 이끌어냈다. 가장 먼 거리이자 상극이 되는 철과 나무를 가장 가까운 거리의 귀한 소재로 승화시킨 점이 특히 좋았다.

21세기는 질문하고 사유하는 시대이다. 지금까지는 에세이가 과거를 우려먹는 글로 자리 잡아 왔다면 앞으로는 질문과 사유의 글로 진화되어 동정보다는 동행하기를 바란다. 경험을 쓰되 철학적 사유를 끌어내길 바란다. 철을 이야기하되 또다른 철의 세계를 넘나들 수 있는 한 편의 에세이가 모든 장르를 뛰어넘는 명작이 되기를 기대한다. 당선자에게는 용광로 같은 뜨거운 축하를 드리고, 응모해주신 다른 분들에게는 위로의 말씀과 다음을 기대하는 격려의 말씀을 드린다.

/심사위원 수필가 주인석·박시윤

 

대상 수상작

‘쇠물고기’

화장실이 부뚜막 같다. 수선사 주지 스님의 뜻이라고 한다. 해우소나 뒷간이 주는 절집 인상이 여기서는 무너진다. 실내화가 얌전히 놓였는데도 맨발로 들어가는 이가 적지 않다. 옆으로 길게 뻗은 화장실 창은 거치적대는 바깥경치를 잘라내 액자가 되고, 근심을 푸는 속인은 틀 안에 들어온 풍경화를 제 것인 양 누린다. 고졸한 대웅전이 살림집 안채 같고 곳곳에 놓인 돌그릇이며 고른 잔디와 소담한 연못은 한옥 마당처럼 인정스럽다. 신들의 집이 예사로워 오히려 신성하다. 그리 높지 않아도 산바람이 있어 지글거리는 도시 더위와는 사뭇 다르다. 눈앞에 놓인 첩첩의 산을 바라보며 해를 피해 앉았는데 희미한 풍령 소리 들려온다. 나도 모르게 두리번거린다. 지리산 웅석봉 자락, 변두리 작은 사찰, 거기 추녀 끝에 조그마한 풍경이 흔들린다.

언제부터였나. 대문에 걸어둔 쇠종이 제대로 울리지 않는다. 현관문 버튼의 기계음에 밀렸는지 뭉툭한 탁음마저 나는 둥 마는 둥 해도 언죽번죽 태연하다. 한때는 레이스와 반짝이를 붙인 치마폭을 나붓이 펼치고 문을 여닫을 때마다 고관대작 부인처럼 방문객을 맞았었다. 스무 해 가까이 출입문을 지키는 동안 색은 얼룩덜룩 바래고 먼지는 사이사이 박혀 과거의 영예는 어디로 갔는지 그새 흉물스러워졌다.

처음부터 그러지 않았을 터. 종의 외피가 진동을 방해하나 싶어 걷어냈다. 화려했던 치맛자락은 가위에 난도질당하고 남은 큐빅마저 후두둑 떨어져 바닥에 낭자하다. 몸통을 드러낸다. 속에 든 구슬에도 때가 주버기로 끼어 오래 돌보지 않은 사람의 몸뚱이 같다. 혹시나 해서 다시 울려본다. 여전히 시큰둥하다. 제대로 울지 않으니 버릴까 하다 이리저리 살펴보니 보일 듯 말 듯 미세한 금이 여러 군데 생겼다. 그 틈으로 소리가 새고 있다. 결이 깨진 몸에서 앓는 소리가 났다. 고통에 찬 신음일지도 모른다.

이름난 사찰의 범종은 가만히 있어도 위엄있다. 규모에 걸맞게 팔작지붕을 얹은 종각이 사방으로 호위하고 거기에 듬직한 법고와 날렵한 운판, 여의주를 문 목어까지 어우러져 쳐다만 보아도 숭고하다. 당목으로 타종하면 큰스님의 가르침이 파동을 따라 금세라도 산 아래까지 퍼져나갈 듯하다. 그에 비하면 주먹만 한 풍경은 종잇장 같은 물고기 한 마리 겨우 제 몸에 매달았다. 절간이 아니라도 바람이 드나드는 곳이면 여염집 처마 끝도 마다하지 않는다. 살찬 햇발에 달궈지고 교교한 달빛에 식은 날들이 수두룩하건만 뜨거운 불에 제련된 범종에 비할 바 못 되어 울림마저 미미하다. 갈 길이 서로 다른 것을 어이할까.

볼 꼬집어 주는 사람 있으면 핑계 삼아 제 설움을 얹어 통곡이라도 해볼 텐데 밖에서 두드려주는 이가 없다. 혼자 글썽대는 눈물은 주저앉아 안으로 맴돈다. 토해낼 수 없는 처지가 기막혀 그토록 많은 오열을 삼켰던 걸까. 섬약한 목소리로 신호를 보내는 경우도 있지 않은가. 옛날 먼 산에서 들짐승이 가늘게 울부짖으면 마을은 주변을 살피고 단속을 하였듯 어떤 여음은 잊고 있던 존재를 끄집어낸다. 누군가 옆에서 흐느끼고 있을 때 내가 누리는 평안을 돌아보게 된다. 풍탁은 그렇게 범종과 다른 방법으로 울어 생각을 깨운다. 범종의 빈 시간을 메우며 무시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게 한다.

쇠물고기 한 마리가 파란 하늘을 푸른 바다처럼 누빈다. 바다와 하늘이 맞닿은 수평선까지 가본 물고기일 테다. 그 끝도 별반 다르지 않아 갈 길을 잃고 새로운 세계로 뛰어올랐겠지. 모든 꿈꾸는 이가 그토록 무모하듯, 본토와 친척과 아비의 집을 떠나 신이 지시하는 새 땅으로 향했던 성경의 아브라함처럼 처음에는 그저 그런 물고기였을 것이다. 이유가 무엇이든 떠난 데는 지금의 자리에 균열이 생겼기 때문이겠다. 누구는 패배자라고도 했겠지. 나섰다 한들 익숙했던 지난날로 돌아가고 싶은 고집이 어찌 없었을까. 매 순간 헤매며 묻고 내디디어 첫 조상이 되었으리라. 물고기는 바다로 가려 하는 관성을 끊고자 등지느러미를 묶어 종어(鐘魚)가 되었다.

집을 찾지 못하는 꿈을 자주 꾸었다. 분명히 왔던 곳인데 집으로 가는 방법을 몰라 파들파들 분투하며 꿈속을 바장거렸다. 얕은 잠 끝, 새벽이면 번번이 깨었다. 성벽, 절벽, 층벽, 장벽이 앞을 가로질렀다. 그런 날에는 세상이 온통 견고한 철벽 같았다. 영문도 모른 채 머리를 조아려야 했다. 앞날이 보이지 않아 자꾸 뒷걸음질 치고 싶은데 시간은 나를 억지춘향으로 끌고 나와 함부로 내달렸다. 어설피 봉합해서도 서둘러 끝낼 수도 없다. 속심이 흔들릴 만큼 앓아내고 온몸이 갈라질 만치 치러내야 다른 세계를 찾는다. 잔금 사이로 귀를 기울이면 낯선 소리가 들리고 숙였던 고개를 들면 빠끔한 틈으로 가려있던 생생한 길이 어렴풋이 보인다. 마침내 쇠물고기가 바닥을 힘껏 휘저어 틈서리로 돋쳐 오른다.

마음이 가는 대로 하여도 사리에 어긋나지 않으면 좋으련만. 선택은 명확하고 후회는 덜 하게 세월이 그렇게 빚어주면 안심이 될 텐데. 살아가는 일에 정해진 답이 있기나 할까. 은사님과 통화를 했다. 노교수님은 내 이름을 다정히 부르며 당신의 나이가 되어도 모르겠다고 수줍게 고백한다. 질문받지 않아도 되는 때란 없다는 뜻이겠지. 여든의 교수님도 다가오는 것들에 머뭇거리며 지금도 멈추지 않고 나아가는 중일 거라 헤아린다. 쇠물고기가 틈새기로 본 도약은 자신만의 속도로 자기 걸음을 걷는 자가 오목오목 새긴 발자국이었을 게다.

그러쥐고 있는 것이 전부는 아니라고, 다른 세계가 있으니 너머 세상을 상상해도 된다고 쇠물고기가 미풍 따라 하늘을 유영하며 울려준다. 산사에 미약한 종어성이 바람결을 타고 명징하게 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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