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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뭇결에는 삶의 애환이 농축되어 있죠”

윤희정기자
등록일 2022-11-13 18:41 게재일 2022-11-14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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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한국예총 한국예술문화명인 서각 선임명인 소봉(素峰) 강대욱 <br/>나뭇결 보여주는 음각·입체감 주는 결새김 통해<br/>음과 양의 조화로움 표현, 나무에 생명 불어넣어<br/>일월대·영일대 등 포항 명소에 작품 자부심 느껴<br/>최근 전통 교칠로 그림·글씨 공존하는 작업 매진
서각 명인 강대욱 서각가

“일상득취(日常得趣·일상 속에서 삶의 즐거움을 누린다)하며 붓과 망치와 서각도로 작품에 매달린 지 30여 성상이 지나서야 이 서각을 통해 고요함을 얻는 방법이 갑골자 정(靜)에 담긴 것처럼 작업에 집중하면 삶에서 중요한 정(靜)을 얻게 됨을 알았습니다.”

포항의 대표적 서각가 소봉 강대욱(68)은 국가무형문화재 제106호 각자장 이수자이며 (사)한국예총 한국예술문화명인 서각 선임명인이다.

강대욱 명인은 “서각은 자아 회복의 의미가 큰 예술”이라고 전제하고 “문자의 입체적 표현으로 새겨진 글귀를 통해 뜻을 생각하며 깨달음과 새롭게 도전해 볼 수 있는 새김질”이라고 말했다. 지난 12일 그를 만나 작가로서의 삶과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소봉(素峰)이라는 호의 의미는.

△‘흰 봉우리’라는 뜻으로 흰 눈 덮인 산을 보며 자적하며 마음을 다스리라는 의미다. 조용한 가운데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며 정진해가라는 뜻으로 구룡 박정만 선생님이 지어주셨다.

 

-서각(書刻)을 설명한다면.

△글 서(書) 새길 각(刻), 글을 새긴다는 뜻으로, 국가무형문화재 106호로 지정된 우리의 전통예술이다. 통일신라시대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나 고려시대 팔만대장경판 같은 경우가 인쇄문화이기 때문에 서각의 원류는 인쇄술이라고 본다. 현재는 현판이나 주련 제작과 좋아하는 글귀를 새기고 재현하는 장식품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서각 작가로서 보는 ‘나무’의 의미는 특별할 것 같은데?

△나뭇결에는 인간처럼 생명의 리듬, 삶의 아픔과 기쁨, 한숨과 웃음과 같이 그 삶의 애환이 농축되어 있다. 인고의 세월 흔적인 나뭇결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음각과 결의 입체감을 나타내는 결새김의 바탕 처리를 통한 양각 작품으로 음과 양의 조화로움을 결새김함으로써 나무의 생명을 불어넣어 함께한다.

 

-재료로 즐겨 쓰는 나무는 무엇인가. 또 그 외의 오브제는?

△우리나라 잡목을 많이 사용한다. 나뭇결이 나타나는 작업을 많이 하기에 느티나무, 회화나무, 가죽나무, 대추나무, 산벚나무, 은행나무 등 고유 수목을 애용한다. 보존성이 좋고, 옻이 가진 선영성(빛이 반사되어 보여주는 광택)의 아름다움을 위해 최근 들어 옻칠작업을 한다. 요즘은 나무에 돌을 새겨 박아넣거나, 나무에 쇠를 박기도 하고, 여러 가지 재료를 다양하게 사용하려고 한다.

 

-부유목 서각 작업이 눈에 띈다.

△힌남노 태풍이 지나간 후 어떤 상황인지 포항시 북구 흥해읍 흥환리 바닷가를 갔을 때 부유목이 눈에 들어와 줍기 시작했다. 태평양에서 왔는지, 시베리아에서 왔는지도 모르는, 수종이 뭔지도 알기 어려운 나무들이다. 이런 나무를 나는 ‘버림받은 나무’라고 한다. 어디선가 흘러오면서 ‘상처 난 표면’이 또 다른 나무의 결과 같은 느낌으로 전해졌다. 작품이 되었을 때는 자기의 생명을 다시 꽃피우는 것이 된다.

-서각을 하게 된 계기는.

△어릴 적 마을 골목길을 지나면서 부유한 집 대문에 달린 자개에 호마이카를 입힌 문패나 대리석으로 된 문패를 보면서 언젠가 저런 멋진 집에 문패를 달고 살아야겠다는 꿈이 있었다. 본격적인 각자(刻字)는 교직으로 이직 후 인간문화재이신 철재 오옥진 선생님에게 본격적으로 사사하여 2007년 국가무형문화재 제106호 각자장 이수자가 되었고 2013년 한국예총에서 명인 인증을 받아 현재에 이르게 되었다.

 

-서각을 하면서 보람된 일이 있다면?

△영덕 일직에 있는 조선 문종 조 우부승지와 이조참판을 지내신 이승길 선생의 정자 처호정의 도난 또는 훼손된 현판, 기문, 중수기, 중건기, 이퇴계 선생의 차운시 등 18점을 복원, 보수하여 후손들에게 선대의 가르침을 기리며 이어나갈 수 있게 한 일이 기억에 남는다. 육군3사관학교에 재능기부한 충성대, 청운관 현판을 비롯해 연오랑세오녀 테마공원 내 일월대와 신라마을의 현판과 기문, 영일대 건립 기문 등 포항의 명소에 작품이 있다는데 큰 보람과 자부심을 느낀다.

 

-최근의 포항문화재단 초대 전시 ‘숨 빛 삶’ 전 이후 생각의 변화가 있다면?

△일반 관람하는 분들의 작품 선호도를 파악하게 되었다. 프로라면 구매자의 입맛에 맞는 작품도 만들어야 한다. 관람객들은 그림 같은 글씨, 전서체의 작품을 선호했다. 한자만 되어 있는 작품이 아닌 그 의미를 한글로 요약한 내용이 같이 쓰인 작품을 좋아했다. 한자 세대가 아니기 때문에 한자는 그림으로 보고 한글을 뜻으로 이해했다. 관람자의 입장을 생각하게 되었다.

 

-요즘의 작업 방향은?

△현재 작업 방향은 옻칠에서 전통 교칠(絞漆)을 이용해서 그림과 글씨가 함께 공존하는 작업에 매진하고 있다. 아름다움과 보존성을 함께 가진 옻칠은 나무의 변형도 막아주지만, 한국적인 매력을 가진 재료다.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변화되어야만 한다는 게 작가의 정신이라 생각한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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