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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일기장을 펼치며

등록일 2023-01-12 18:12 게재일 2023-01-13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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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대수필가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해가 바뀌면 새로 마련하는 것이 일기장이다. 예전엔 그냥 대학노트에 썼었는데 약 20여 년 전부터 표지가 고급 양장으로 된 같은 규격의 다이어리를 사용해 오고 있다. 올해는 ‘검은 토끼해’라 표지가 검은 것을 택했다.

처음 다이어리에 쓸 때는 그야말로 계획과 일정을 간단히 적어두고 실행 여부를 첨부하는 일과의 기록이었으나 차츰 아래 여백에 그날그날 느낀 마음을 기록해 두기 시작한 것이 어느덧 나의 인생 기록물이 됐다. 지난해 일기장을 정리하며 몇 장을 넘겨보면 잘 기억나지도 않는 무수한 일들이 적혀있고 설핏 뇌리를 스친다. 또 펜글씨는 글쓰기 훈련이 되어 필력도 향상됐다.

매년 해 오던 대로 새해의 바람과 다짐을 담아 맨 첫 장에 토끼를 그리고, 예측할 수 없는 생활환경 속에서도 마음 흔들림이 없이 내가 선택한 일들에 긍정적 사고를 견지하려는 몇 마디 덕담을 써 본다. 나름대로 새해에 알맞은 사자성어를 골라보는데 올해는 무엇으로 할까? 수처작주(隨處作主)를 하려니 칠순 넘은 나이에 어디 뻗대고 나서는 게 미안하고, ‘토끼해’라고 교토삼굴(狡<FA32>三窟)로 하려니 위기 대책이 크게 필요한 것도 아니니 그냥 수산복해(壽山福海)를 마음에 담고 평안한 생활을 하고 싶다. 새해가 되면 각 지자체나 단체들도 신년 사자성어를 공모하는 곳도 있는데 포항시는 춘색만성(春色滿城) 즉, ‘추운 겨울의 어려움을 이겨내면 따뜻한 봄기운이 세상에 가득하다’는 뜻을 택했으니, 지방소멸과 경제위기 등의 불안함을 이겨내고 밝은 미래의 도시 포항을 만들겠다는 희망찬 표현이다.

책꽂이에 꽂혀있던 50여 년 전 옛 일기장을 정리하며 펼쳐보니 빈칸이 많다. 매일 매일 쓰지 않았고 글의 길이도 몇 줄의 짧은 것에서부터 2페이지가 넘는 날도 있다. 우연히 그중 한 권을 넘기다 보니 시 한 편이 눈에 띈다.

“무엇을 쓸까/ 어떻게 쓸까/ 하루의 끝에 서서/ 하루를 반성하며// 어제의 ‘나’와 함께/ 지금의 ‘나’를 쓰고/ 또 내일의 ‘나’를 위해/ 조금씩 모래성을 쌓아가는 것이다”

또박또박 펜글씨로 쓴 나름의 일기가 사회에 익숙해지기 전의 젊은 나를 마주하게 한다. 이렇듯 일기는 시가 되기도 하고 짧은 수필이 되기도 한다.

매일 밤, 따뜻한 차 한잔 마시고 그날 일정의 결과를 정리하며 일기를 써 내려 가면서 ‘참 잘했구나’하고 칭찬도 하고 ‘이건 해결하지 못했네’ 하는 반성의 표시를 하기도 한다. 수년 전 미국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가 하루 다섯 가지 감사를 적는 것을 10년간 반복했다는 ‘감사 일기’의 사연을 알고 나서부터 나도 그 흉내를 내고 있다. 좋았던 일들, 잘 처리된 일들을 쓰고 나서 그 끝에 ‘….감사’라고 덧붙여 두곤 한다. 그렇게 하다 보니 하루에도 예상외로 감사한 일들이 많이 생기고 경험하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요즈음은 카톡이나 문자 또는 밴드와 같은 SNS를 이용하여 손글씨 보기가 쉽지않지만 나의 일기장엔 붓글씨로 새해 소망을 썼고 또 펜글씨로 정성껏 펼쳐나갈 것이니 올해도 풍요로운 일상들이 가득히 쌓이기를 바라며 작가 이태준의 말을 되뇌어본다. ‘일기는 사람의 훌륭한 인생 자습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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