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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公路와 상상력으로 좋은작품 얻어”

윤희정기자
등록일 2023-01-15 18:11 게재일 2023-01-16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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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작가 김만년<br/>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깊은 그리움, 엽서·시·수필 작품으로 탄생<br/>“빛나는 것들은 상처 뒤에 오는가” 신작 ‘사랑의 거리 1.435미터’ 펴내
김만년 작가

“서른다섯 해, 은륜의 세월을 쉼 없이 돌아왔다. 눈이 오고 비가 오고 어느 바람 부는 날에도 기차는 달렸다. 사람들을 떠나보내고 사람들을 기다리던 불면의 시간이었다”

김만년 작가는 철길을 달리면서 딱딱한 철길 위에서 민들레 같은 언어로 문학의 꽃을 피워왔다.

김 작가는 예천에서 태어나 봉화에서 성장했다. 코레일 홍보실을 거쳐 35년간 코레일 기관사로 재직했으며 늦깎이로 동국대 문화예술대학원을 졸업했다. 2003년 수필과 시를 ‘월간문학’에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2015년 ‘경남신문 신춘문예’에 수필 ‘노을을 읽다’가 당선됐다. 근로자문화예술제 시 부문 대통령상, 공무원문예대전 수필부문 국무총리상, 전태일문학상, 독도문예대전 최우수상 외 다수를 수상했으며, 2021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학창작기금수혜작가로 선정됐다. 최근 첫 수필집 ‘사랑의 거리 1.435미터’를 펴낸 김 작가를 14일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글을 쓰게 된 특별한 동기가 있는가?

△역시 어머니다. 그리움도 지극하면 시가 되고 수필이 되더라. 스물 몇 살 어느 남루한 모퉁이에서 문득 놓쳐버린 어머니. 이제는 가고 없는, 만질 수 없는 부표들이 마음의 지층을 오래 떠돌았다. 떠돌던 것들이 엽서가 되고 시가 되고 더러는 수필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 제 문학의 발원지는 어머니이고 또 어머니와의 곡진한 추억이 묻어있던 고향 봉화다. 제 작품에 어머니가 다녔던 청량사란 사찰이 자주 등장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초기작품인 ‘상사화는 피고 지고’에 등장하는 어머니가 지극히 사적인 어머니였다면 후기작품인 ‘기적 소리, 그 멀고 아련한 것들에 대하여’에 등장하는 어머니는 이 땅의 모든 어머니의 곡진한 삶이 노정(路程)된 공적인 어머니라고 할 수 있다.

 

-김 작가가 중요시하는 창작요소에 대해 말해 달라.

△소재 선택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비록 사소한 소재라도 작가의 세계관이나 인생관, 혹은 사회현실에 대한 메시지를 반영할 수 있는 씨앗을 품고 있는가, 즉 확장성이 있는가다. 소재가 사적인 ‘나’를 떠나 세상의 공로(公路)로 흘러갈 때 좋은 작품을 얻을 수 있다고 믿는다. 또 하나는 상상력이다. 수필에서의 상상력은 형상화와 함께 작품성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상상력은 공상, 몽상과는 구별된다. 인과성과 논리성이 획득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수필의 양적 팽창에도 불구하고 수필이 외면당하는 이유가 상상력의 고갈 때문은 아닌지 생각해본다. 저는 모범답안 같은 수필에 일정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물론 해석의 깊이와 형상화가 관건이긴 하지만 작품에 은유나 상징 상상력 같은 시적 기법들을 활용해 보기를 권한다. 나르시시즘이나 생활 소재의 상투성에서 벗어나는 첩경이 상상력이 아닐까도 생각한다. ‘석공은 정으로 돌을 쪼개어 코끼리 상을 만들지만, 시인은 상상력과 직관이란 정으로 코끼리를 끄집어낸다’고 했다. 저는 상상력과 직관이란 정으로 먼 곳의 노을을 쪼개어 보기도 하고 서천 구만리 노을 강에서 빨래하는 옛 엄마를 불러내기도 한다. 또 천 년 전 고대의 왕을 알현하고 월성의 밤거리를 함께 거닐기도 한다. 이렇듯 상상력은 시공을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고 작품의 의미망 확장에도 큰 도움이 된다.

 

-책의 내용을 소개해 달라.

△‘사랑의 거리 1.435미터’는 46편의 발표작을 담고 있다. 1.435미터는 철길의 궤간(軌間)이다. 이 책은 우선 소재의 다양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자연, 철길, 이웃, 가족을 모티브로 서사와 소재의 지평을 넓히고 있다. 동륜에 깎여 반짝이는 철길을 바라보며 ‘빛나는 것들은 언제나 상처 뒤에 오는 것일까’라고 자문하며 철길이란 무정물에 사람과의 관계성을 병치시켜서 따뜻한 피를 돌게 한다. “김만년 작가의 산문은 야무지다. 집주인처럼 늙수그레한 마당이 좋다고 말하지만, 문장이 단단한 정강이 같다. 철길처럼 곡직(曲直)이 선명하다.”라는 문태준 시인의 평처럼 현장에서 길어 올린 탄탄한 문장과 시적 상상력으로 독자들을 깊은 공감의 세계로 이끌 것이다.

 

-어떤 목표가 있나?

△시인으로 출발했지만 시를 놓은 지 십 년이 넘은 것 같다. 사람들이 시집은 언제 내느냐고 물을 때면 저는 ‘딸도 없는데 무슨 시집?’ 하면서 농으로 넘기곤 했다. 기회가 된다면 ‘시집’이란 예쁜 딸을 순산해서 세상이란 강으로 ‘시집’ 보내고 싶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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