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를 물들이며 붉은 동심원이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낸다. 드넓은 영일만에 오직 태양만이 살아 움직이는 듯하다. 두 손을 모아 복을 비는 사람들. 구복을 통해 무엇을 바라며 또 무엇을 이룰 수 있을까. 구복은 비단 현재만의 일은 아니다. 옛사람들도 인지만으로 알 수 없는 자연 현상에 주술적 의미를 부여하고 기원의 대상으로 삼았다. 포항 영일 ‘연오랑세오녀(延烏郞 細烏女)’ 설화에는 태양숭배의 흔적이 남아있다. 신라 아달라왕 즉위 4년(157년) 연오와 세오가 일본으로 건너가게 되자 일월이 빛을 잃었는데, 세오의 비단으로 제사를 지내자 다시 빛을 회복하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이때 제사를 지낸 곳은 영일현이었다.
옛이야기 속에는 역사적 진실을 짐작할만한 모티프가 숨겨져 있다. ‘연오랑세오녀’ 설화에서도 영일에 살며 태양을 숭배하고 철기와 방직 기술을 가진 세력이 아달라왕 시기에 일본으로 거주지를 옮겼음이 드러난다. ‘연오랑세오녀’의 오(烏)는 삼족오(三足烏)와 같이 태양신을 뜻하고, 연오는 철기 기술을 가진 집단의 제사장, 세오는 방직 기술을 가진 여성 사제자를 뜻한다. 또 영일의 지명에서도 태양숭배의 흔적은 쉽게 발견된다. 영일현은 신라의 근오지(斤烏支)현으로 해를 맞이하는 곳이란 뜻을 가진다. 신라 때 제사로 되살린 햇빛이 제일 먼저 비췄다는 광명리, 고현성터가 남아있는 옥명리, 세오녀의 비단으로 제사를 지내자 광명 가운데 위치했다는 중명리, 햇빛의 힘이 등불처럼 약해지는 곳에 위치한 등명리, 일월지가 있는 일광리, 하늘에 제사를 지내자 용이 승천했다는 용덕리, 천제당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 세계동(世界洞), 달이 뜨는 벌판이란 의미의 이두식 표현인 도기야(都祈野, 지금의 도구동). 이곳에서는 고분군과 지석묘, 성혈 등이 발견되었고 청동기 시대에 마을이 형성되어 군락을 이뤘음이 밝혀졌다.
기원전 2~3세기는 한반도와 일본 모두 소국들이 난립해 확장되던 시기로 세력들의 이주가 빈번하게 일어났다. 한반도에서는 북에서 철기를 가진 세력이 남부로 이주하여 정착하거나 다시 해류를 타고 일본으로도 이주한다. 당시 포항은 사로국이 세력을 확장하면서 영일을 중심으로 다스리던 북방 예족의 후예인 근기국과 불화가 발생하였다. 근기국은 영일을 떠나 일본 이즈모나 쓰루가 지역으로 이주한 것으로 추정된다. 정월초에 일월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의례가 점점 동해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형식으로 변화하는 기록에서 국가와 지역의 불화를 짐작할 수 있으며, 천일창이라는 신라계 왕자가 일본에 귀화한 ‘일본서기’의 기록을 통해 한반도와 일본의 교류가 활발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아달라왕 4년이란 명확한 시기가 설화에 적힌 것으로 당시의 불안정한 정세를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아달라왕은 석씨에게 왕위를 넘겨주는 마지막 박씨로서 천변현상을 불길한 미래에 대한 예고로 해석했다. 왜의 침략을 방어하는 사도성을 순행하고 영일에서 제천행사를 열어 국가의 우환을 해결하고자 노력한다.
영일은 태양을 맞이하는 장소이자 과거에서 현재까지 안정적인 항구로서 기능하고 있다. 일본과의 인적·물적 교류는 해류나 지류를 이용하고 계절풍의 도움을 받았다. 북방 한류가 홋카이도에서 갈라져 리만한류가 되고, 남방 난류가 올라오다 영일만과 울진에서 마주쳐 일본 쪽으로 방향을 돌린다. 남동풍이 부는 4~6월에 규슈나 대마도에서 배를 띄우면 해류를 타고 울산·포항 등 동해 남부에 쉽게 도착할 수 있다. 삼국사기의 기록에도 왜의 침략은 4~6월이 절정이었다. 반대로 겨울철 북서풍을 타면 영일에서 일본으로 갈 수 있다. 동해에서 리만해류를 타고 남하하다가 대한해류를 가로지르면 일본의 서안에 도착한다. 한반도 동해와 일본 서해 이즈모 지역은 음력 12~1월을 제외하고는 바람의 도움을 받아 쉽게 이어지는 것이다. 쉽게 도항이 가능한 동해안 항해는 영일을 떠나 일본에 이주하는 일에 도움이 되었다.
포항은 ‘연오랑세오녀’의 자취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과거에는 자연물을 주술적 해석을 통해 경의와 두려움을 이겨내고 공동체의 안녕을 기원했다면 현재는 주술적 해석을 문화로 승화시켜 지역발전과 경제적 이익을 바란다. 과거의 재림으로 현재의 영광을 바라는 마음은 고스란히 포항 곳곳에 녹아들었다. 연오랑세오녀 테마파크에서는 귀비고·일월대·쌍거북바위에서 설화를, 신라와 일본의 과거 뜰·오늘날 제철기술을 표현한 철예술뜰에서 포항을 소개한다. 일월문화공원에서도 일월문화기념관·일월지·암각화·선돌·고분 등을 조성해 일월신앙을 드러낸다. 해양레포츠·해안둘레길·일월문화제 등과 함께 대륙의 산업 및 경제가 영일로 흘러들기를 기원하는 것이다. 또한 영일만을 국제항으로 개척하여 환동해문화권에서의 성장동력과 경쟁력 강화의 발판을 마련한다. 해양공간을 입체적으로 개발하고 미래형 해양산업을 육성하여 대륙과 해양을 잇는 중심을 꿈꾸며 태양이 떠오르는 포항의 바다로 나아간다. 지금 이 순간도 포스코의 전경과 어우러진 영일정이 태양을 배경으로 환히 빛나고 있다. /최정화 스토리텔러
◇ 최정화 스토리텔러 약력 ·2020 고양시 관광스토리텔링 대상 ·2020 낙동강 어울림스토리텔링 대상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