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규선-風·景 -Scenery’전<br/>대구 봉산문화회관 기억공작소
“특정 소재나 주제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선택해 붓 가는 대로 마음껏 그리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스스로 만든 형식이나 틀, 기존 미술의 양식들 안의 자유이기 때문에, 오늘도 나는 도달하지 않은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를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차규선 작가의 말)
대구 봉산문화회관 4전시실(2층) 기억공작소는 오는 4월 15일까지 ‘차규선-風·景 -Scenery’전을 열고 있다.
그 곳에 들면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눈 날리는 산속의 풍경, 어둠의 끝을 부여잡고 있는 산등성이의 실루엣, 쉽게 밟고 지나칠 수 있는 흙바닥 등 작가가 머물고 품어낸 작고 소박한 자연을 담은 작품들과 맞닥뜨리게 된다.
가장 먼저 높이 4m의 작품이 압도적 공간감으로 긴장감을 조성하며 시선을 끈다. 그러나 관람객이 전시장 내부로 들어서 전체를 둘러보면 큰 작품 외 나머지 3점으로 덩그러니 전시실을 구성하고 있어 어떻게 보면 황량하고 쓸쓸한 풍경으로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찬찬히 하나씩 작품을 살펴보면 익숙하고 편안함 속에 잔잔하게 밀려드는 미묘한 감정들이 묻어나는 조형 언어들로 구성돼 각기 다른 이야기로 기억을 소환할 수 있는 구조다.
일명 ‘분청회화’라 불리는 독특한 질감의 풍경화로 유명한 차규선(55)의 풍경은 서구적 회화기법으로 동양의 정신성을 담고 있다고 평가받는다. 25년 가까이 풍경이라는 하나의 주제에 대해 탐닉하며 서정적 정취를 표현하는 것은 작가의 마음속에는 언제나 그러한 장소와 공간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차규선이 그린 매화는 난만히 가지가 뻗어있고 점점히 뿌려진 물감들이 꽃인지, 눈발인지, 혹은 풍경 속에 있었던 작가의 마음인지 알 수 없다. 번잡하고 비현실적인 선은 온통 풍경을 증거하고 있지만 그것의 단단한 주제는 보이질 않는다. 그러므로 차규선이 그리고 있는 매화는 한겨울 등걸 터진 가지에 한 줄기 늠늠하고 신선한 향기를 품는 고고한 이념에 무게를 둔 것이 아니다. 그것보다는 매화가 있는 풍경 전체를 묘사하고 싶은 욕망에 대한 기록에 가깝다. 멈출 수 없는 마음이 바람에 날리듯, 흐르는 물 같은 풍경의 연속이 화면 가득 나타나 있다. 차규선의 풍경은 필선을 줄이고 줄여 대상을 최대한 간략히 부각시키는 동양화의 기법과 이념은 존재하지 않는다. 차규선은 풍경 안에 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