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겨울 오랜만에 흰 눈이 내렸다. 그동안 우리 지역 동해안에는 메마른 날이 계속되어 겨울 가뭄을 걱정했었는데 우수(雨水)의 절기를 맞아 소복하게 하얀 눈꽃이 핀 설국이 그려졌다. 최근 올들어 가장 강력한 한파가 밀려왔었고 그 한기에 하늘이 얼었는지 포항 지역에 대설주의보가 발령됐는데 15일 오전 8시까지 1cm 정도 쌓여 갑자기 대설특보로 바뀌었다. 청하에 1.6cm 영덕에 11.1cm인데 울진 평해 지역은 20.6cm로 대설경보가 내렸다고 한다. 포항 외곽지로 빠지는 우현동 고갯길에서 차량들은 거북이 운행을 했고 상옥으로 넘어가는 산간지역은 교통이 통제되었으며 마을버스 운행이 중지된 곳도 있다.
새벽부터 안전안내문자가 깜빡댄다. 밤새 내린 눈으로 도로 결빙이 예상되니 미끄럼 등 교통안전에 주의하고 대설주의보도 발효되었으니 가급적 외출을 자제해 달라고 한다. 창을 열고 밖을 보니 바닷가에는 하얀 거품 같은 파도가 밀려오고 하늘은 눈이 계속 내릴 듯이 온통 뿌옇다. 아파트 마당엔 모든 차량이 눈을 덮어쓰고 조용한데, 눈밭 놀이터에서 즐겁게 뛰어노는 아이들의 재갈거림이 사랑스럽다.
며칠 있으면 차가운 대동강도 풀린다는 우수인데 겨울을 마무리 짓는 빗물이라는 의미이다. 녹은 강물을 헤엄치며 수달들은 고기를 잡을 테고 기러기는 줄지어 북녘을 날아갈 것이다. 하얗게 쌓인 눈이 녹으면 땅속에 꿈틀대던 초목의 겨울눈이 깨어나고 코로나로 3년간이나 움츠렸던 우리 마음에도 이웃사랑의 눈이 트이리라. 대지를 녹이는 우수(雨水)에, 근심 걱정에 찬 우수(憂愁)를 털고 농부들은 새해의 농사 계획을 세우고 좋은 씨앗을 고르며 우수(優秀)한 싹을 틔우는 희망을 가지겠지…. 지겹도록 격돌하며 거친 말을 해대는 정치들판에도 흰 눈이 내려 덮이고 그 맑은 빗물에 봄눈 녹듯 서로의 앙금을 녹여 올해는 더욱 따뜻하게 국운을 일으키는 파란 싹을 틔우고 고운 꽃들의 잔치를 열어주기를 바란다.
튀르키예·시리아 지진으로 인해 인류의 마음에 큰 상처를 남겼지마는 이 또한 온 세계가 이웃돕기 성금으로 사랑의 빗물을 모아주고 있다. 지진 피해 아동이 700만 이상이라고 유엔아동기금(UNICEF)은 밝히고 있으며 아동피해에는 사상자뿐만 아니라 집과 부모를 잃고 또 트라우마를 비롯한 질병을 갖게 된 아이들도 있다. 새싹의 눈을 보살피는 심정으로 어린이 구호를 위한 세계 각국의 온정이 메마른 땅을 덮듯 가슴 가득 도와주었으면 한다.
온 누리에 흰 눈이 내리면 세상은 하얗게 물들고 모든 더러움을 덮은 그 백설의 숲길을 걷고 싶어진다. 지인들과의 카톡방에도 눈의 노래가 들려오고 흰 눈 내린 겨울의 정경 속에 매화꽃이 피어나고 있다.
“조그만 산길에 흰 눈이 곱게 쌓이면/ 내 작은 발자국을 영원히 남기고 싶소/ 내 작은 마음이 하얗게 물들 때까지/ 새하얀 산길을 헤매이고 싶소”
창밖을 보며 김효근 작사·작곡의 가곡 ‘눈’을 부르노라면 어느새 숲속으로 난 눈밭을 걷고 있는 마음이 된다.
겨울 막바지에 내린 하얀 눈은 봄을 향한 계절의 알림이고 땅에 물기를 머금게 하는 생명의 물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