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말경이 되자 기온이 들쭉날쭉하고 바람도 강하게 불어 환절기임을 느끼게 한다. 이때쯤 되면 어릴 때 할머니가 ‘영등 할매 내려온데이’ 하시며 장독대에 물 한 그릇 떠놓고 고사를 지내셨던 기억이 있다. 영하의 반짝 추위도 뒷걸음질하며 물러가고 평균온도가 높아질 것이라고 예보하니 이제 곧 초봄의 3월, 만물이 새롭게 생동하는 환희의 계절이 펼쳐질 것이다. 가슴을 열어 생명의 기운을 받아들이고 우리의 일상에도 희망을 불어 넣어보자.
3월 첫날은 삼일절, 104년 전 일제로부터의 독립을 위하여 태극기를 흔들며 외쳤던 ‘대한독립 만세’를 입속에서 부르며 태극기를 베란다 밖으로 걸고는 옆 아파트를 둘러보니 태극기의 물결은 거의 없다. 국민의식도 희미해가는 것 같아 마음 아프다.
봄이 오는 길목을 찾아 마장지로 갔더니 아직 쌀쌀한 날씨 탓인지 조용한 연못가에 물오리들이 날개를 접고 앉아 봄을 기다리고 있었고, 입학식을 앞둔 각급 학교 교문에는 ‘입학을 축하합니다’ ‘우리 학교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경북교육청 발표를 보면 신입생 없는 초등학교가 32개 교, 1명뿐인 곳이 30개 교이며 전국적으로 147개 교라 하니 저출산으로 인한 학령인구 절벽이 봄에 느끼는 또 다른 겨울이다. 마스크 벗고 입학식을 한다니 아이들은 불안해하고 부모들은 마스크 벗는 연습을 시키고 있다고 하니 코로나의 어둠이 크다.
3월이면 꼭 맛보고 싶은 것이 있다. 죽장 산골에서 채취하는 고로쇠 물이다. 올해는 겨울 날씨도 좋았고 비와 눈이 적당히 내려주어 당도가 높고 품질이 우수하다고 한다. 뼈에 이롭다고 골리수(骨利水)라 하니 다음 주말에 4년 만에 열린다는 고로쇠 축제에 가서 고로쇠 한 그루에 한 번만 채취한 첫물을 찾아서 마셔봐야겠다. 봄나물도 나왔다. 어제 식탁에 냉이나물 무침이 올라왔기에 ‘아! 벌써 봄이구나’하면서 그 연초록 잎사귀와 하얀 뿌리의 상큼한 맛을 음미했다. 옛날 달래 냉이 캐러 밭둑을 뛰어다녔던 어린 시절의 추억이 마음의 약이 되고 시골집 화단 틈에 파릇하게 돋아나는 통통한 돌나물 한 줌 뜯어 무쳐 먹으며 술 한잔하려니 요즘 소줏값 인상이 말썽이지만 어쩌랴! 그런데 내가 좋아하는 막걸리값 다툼은 없으니 다행이다.
이제 봄이 오는가 보다. 웃자란 나뭇가지들이 눈에 걸리고 낙엽 밑 새싹들의 숨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하니 화단도 가꾸어줘야겠다. 날이 좀 풀리면 배롱나무의 쭉 뻗어 나간 가지들을 자르고 담장을 넘어가는 뽕나무 가지도 쳐서 모양을 잡아주면 좋겠지. 베란다에서 숨죽여온 난들도 분갈이를 해주어 예쁜 난꽃이 피어나면 난향만당(蘭香滿堂) 그윽한 향기를 맡고 싶다.
이제 두꺼운 겨울옷은 빨아서 정리해 넣고 가볍고 밝은 옷차림으로 산뜻한 봄을 맞자. 어느덧 1년이 지난 우크라이나의 전운(戰雲)은 아직도 걷히지 않고, 튀르키예 지진은 계속 땅을 흔들며, 여의도에서는 불협화음이 잦아지는 듯하더니 또 티격태격 싸우고 있다.
시골집 처마 밑을 떠난 후 벌써 몇 년째 소식이 없는 제비가 언제 다시 찾아오려나…. 이제 화사한 봄의 계절, 춘3월을 맞이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