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포항 수도산을 거닐며

등록일 2023-04-25 17:48 게재일 2023-04-26 18면
스크랩버튼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모처럼의 여유로운 휴일 아침, 도심을 가로지르는 철길숲을 따라 걸었다. 폐선된 철도부지에 도시숲을 조성하던 중 분출된 천연가스에 불이 붙어 ‘불의 정원’이 된 불꽃은 6년째 계속 타오르고 있고, 양학동으로 이어지는 비탈진 주말농장 터에는 시민들의 문화·전시·휴양을 만끽할 수 있는 ‘포항철길숲 시민광장’ 조성공사가 한창이다. 줄곧 자전거로만 달리던 철길숲을 한가로이 걸으니 이것저것 보이는 것도 많고, 주변의 상가나 식당 등 달라진 곳도 더러 보인다. 그렇게 한시간여 걸어서 이른 곳은 포항시 북구 덕수·우창·중앙·용흥동 일부지역에 위치한 덕수공원이다.

수도산 자락에 국가보훈처 지정 현충시설인 6·25전몰군경 충혼탑과 반공순국청년동지위령비, 모갈거사(茅葛居士) 순절 사적비 등 호국·보훈시설과 충절·공덕비가 있는 덕수공원은, 관음사 등 3개의 사찰과 포항시 당산(祠堂)을 비롯, 호국감사둘레길·운동시설 등이 조성돼 철길숲과 연결되는 시민들의 행락, 휴식처이다. 산이라기 보다는 78m의 낮은 구릉같이 보이는 수도산을 처음에는 백산(白山)·서산(西山)·모갈산 등으로 불리다가, 일제시대인 1923~1926년에 걸쳐 산마루에 완공된 저수조(貯水槽) 등의 상수도 시설로 인해 현재는 수도산(水道山)이라 불리우고 있다.

40년 이상 포항지역에 살면서 차를 타고 서산터널을 통행하거나 수도산 주변을 수없이 지나치면서도 덕수공원과 수도산을 제대로 둘러보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하긴, 바쁘고 피곤하다는 핑계(?)로 급행열차 같은 일상의 틈바구니에 놓치고 챙기지 못한 일들이 어디 산책이나 산행뿐이랴. 가끔씩 여유롭게 주변을 찾아 문화재나 유적지를 답사하며 자연을 벗삼다 보면, 보이고 느껴지는 것들이 한결 새롭게 깊은 울림으로 스며들텐데 말이다. 그래서 떠남과 스밈은 고금동서와 만나 사유하고 교감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

수도산의 중턱쯤에는 회백색의 콘크리트 육각형 구조물로 일제시대의 건물양식을 띤 돔 형태의 뾰족한 지붕으로 마감된 당시의 배수지가 그대로 남아 있다. 10여㎞ 정도 떨어진 도음산 학천계곡에서 물을 끌어와 고지대의 상수도 시설에 물을 채운 후 당시 중앙동, 덕수동 일대 300여 가구에 급수를 해줬다 하며, 물의 덕은 커서 그 지경이 없다는 뜻의 ‘수덕무강(水德无疆)’ 글씨가 건물에 새겨져 있지만 글씨를 쓴 사람의 이름자는 훼손된 상태다.

초록의 향연이 굽이치고 있는 수도산 일대는 도심 속의 쉼터 같이 아늑하게 다가왔다. 그다지 높지도, 힘겹지도 않은 둘레길을 따라 걸으니 군데군데 아파트 숲과 주택가가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고, 멀리 영일만의 푸른 바다와 포스코가 한눈에 들어오는 전경이 시원스레 펼쳐졌다. 이렇게 가까운 곳에 문화적인 유적이 있고 전망 좋은 경치를 조망할 수 있다니, 공원에서 느껴지는 호젓함보다는 테마가 주는 정겨움으로 위안과 안도감을 주는 편한 곳이 아닐 수 없었다.

몇일 간 심했던 미세먼지가 사라지니 개운하기만 하다. 어쩌면 ‘수도산’ 같은 명칭의 일제 잔재가 미세먼지 마냥 찜찜하게 여겨짐은 필자만의 과민일까, 기우일까?

心山書窓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