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가지고 있는 휴대전화와 경쟁하듯 빠름을 추구하는 인터넷은 가뜩이나 낮은 독서율을 더 끌어내린다. 그렇지 않아도 ‘일 때문에, 공부 때문에’는 어쩌면 우리나라에서만 듣는 책 읽지 않는 자의 항변인지도 모른다. 문제는 독서율이 낮아도 너무 낮다는 데에 있다.
책을 읽지 않아도 즐길 거리가 너무 많다. 게임을 하거나 영화를 보거나 텔레비전에서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우리의 시간을 너무나 쉽게 빼앗는다. 넷플릭스나 각종 OTT 플랫폼은 늘 새로운 프로그램으로 우리를 유혹한다. 핸드폰 하나만으로도 잠시도 쉴 틈이 없을 만큼 다양한 게임과 볼거리, 흥밋거리를 제공한다.
하루에도 쏟아지는 정보가 얼마인가. 날아드는 수많은 정보를 감당하기도 힘이 드는데 책까지 읽으라고 하면 무리인가. 현실을 완전히 무시하고 책만을 보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러한 상황을 챗GPT에 물어보면 무어라고 답할까.
과학기술의 발달은 너무나 속도가 빨라 따라가기도 버겁고 잠시만 한 눈을 팔면 뒤처지고 만다. 이것을 만회하려면 ‘빨리’를 외치며 하루하루를 살아야 한다. 세상이 이렇게 바쁜데 베짱이처럼 책을 읽으라면 무리가 될까. 돌아보면 노을을 언제 보았는지 까마득한데 책을 읽으라는 소리는 사치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그러면 책을 읽지 않고 완전히 담을 쌓고 살아갈 수가 있을까. 한마디로 말하면 불가능한 일이다. 세상이 복잡해질수록 우리는 책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챗GPT가 활개를 치는 세상에 책을 통해 관련 내용에 대해 전혀 모른다면 우리는 챗GPT의 노예가 될 것이다. 우리가 만든 문명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책을 읽어야 한다. 책을 통해 기본적인 삶의 진리는 깨달아야 한다.
책을 읽음으로써 얻는 좋은 점은 굳이 말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책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 책을 읽는 것은 능동적인 행위이다. 그냥 책을 펼쳐놓으면 저절로 읽히지 않는다. 글을 읽으며 생각하고 손은 책장을 넘겨야 한다. 삶은 늘 그렇지만 능동적인 행동을 통하여 얻어지는 게 대부분이다. 우리 삶을 윤택하게 하는 것도 그렇다.
논리보다 감각적인 디지털 자료는 순간순간 쉽게 읽히고 그냥 지나친다. 나타내는 방법이나 표현은 다양하고 풍부하지만, 개인이 무분별하게 자료를 올림으로써 틀리거나 해를 끼치는 자료도 많다. 언제나 수동적인 생활을 강요하며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지 않는다.
책은 액면적인 가치만을 탐하거나 순간적인 생각에만 머무는 것을 막는다. 책장을 넘기며 생각하는 시간을 갖게 하는 아날로그적인 연속된 삶 속에 우리를 둔다. 책은 필요한 것만 가져다주는 디지털이 아니라 삶의 기본을 보여주며 인간다움을 잃지 않게 한다.
일회적인 물질문명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책을 가까이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쳇GPT가 판을 치는 세상이 될지라도 이를 조정하는 자는 늘 사람이기를 바란다. 인류의 지식을 간직한 책이 있었기에 오늘의 우리가 있음을 잘 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 주변에서 책을 가까이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늘어나기를 소망한다. 삶의 주위에 책이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