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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는 언제든 연주할 최고의 무대죠”

윤희정기자
등록일 2023-05-08 20:09 게재일 2023-05-09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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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신라천년예술단 이사장   이성애<br/>국가중요문화재 대금 산조 이수<br/>2009년 예술단 꾸려 매년 음악회<br/>대중가요·팝 등 퓨전무대도 연출   <br/>다양한 변주로 국악 대중화 앞장<br/>“경주서 신라예술 잇는 건 행운 <br/>  만파식적 이을 딸도 있어 감사”
이성애 신라천년예술단 이사장.

“천년도시 경주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무대예요. 특별한 무대 장치가 없어도 언제 어디서든 연주가 가능한 도시죠. 천년 역사에 또 그 세월만큼이나 귀한 문화유적지가 많은 도시가 우리나라 어디에 또 있겠어요? 첨성대, 월정교, 경주읍성, 연꽃단지 등 어디든지 대금 들고 가서 그냥 서서 연주하면 되지요. 대금 연주자로서는 최고의 무대가 바로 경주입니다.”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45호 대금산조 이수자인 이성애 신라천년예술단 이사장은 경주에서 나고 자라 경주에서 연주활동을 왕성하게 하는, 경주를 사랑하는 경주지킴이 국악인이다. 경주시립국악원을 졸업하고, 신라국악예술단 수석단원 등 경주에서 착실한 이력을 쌓았다. 2001년 경상북도무형문화재 제19호 가야금병창 이수자, 2008년 국가무형문화재 제45호 대금산조 이수자로 지정받았다. 전국국악대제전 기악 부문(관악부) 최우수상(1998년), 한국예총경상북도연합회가 수여한 경북예술상(2020), 제8회 선덕여왕대상(문화·교육 부문, 2021년) 외에도 많은 수상 경력이 있다. 현재는 연주뿐만 아니라, 경주와 인근 도시에서도 강의가 쇄도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이 이사장을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많은 국악기 중에 어떻게 대금을 하게 되었는지?

△오빠와 언니가 많은 형제 중 막내다. 오빠 친구분들 중 서울의 국립국악원에 근무하신 분들이 있었다. 주말이면 경주에 놀러왔고, 우리집에서 묵었다. 그들의 국악 연주를 자주 보고 친숙해졌다. 대금을 불어봤는데 소리를 잘 낸다고 칭찬 들었고, 적성에도 맞아 자연스럽게 대금을 하게 되었다. 마침 경주에 시립국악원이 있어 입학하였고, 훌륭하신 김경애 선생님에게서 사사받으면서 나의 대금 인생이 시작됐다.

 

-경주에서 활발한 연주활동을 하였다. 어떤 심경으로 연주에 임하는가?

△경주에서 태어나고 자랐고, 경주를 떠나지 않았다. 50년 동안 대금연주와 공연, 그리고 후학양성에도 애쓰고 있다. 1982년부터 보문야외상설공연장에서, 1998년부터 열린 세계문화엑스포에서도 빠짐없이 공연했다. 나는 대금을 입에 대면 천년 전 신라인이 된 심경이다. 신라시대에도 누군가 이곳에서 대금을 불었을 거라는 생각에 젖는다. 신라의 온갖 근심을 잠재운 만파식적을 부는 느낌, 또는 아름다운 피리 소리에 지나던 달조차 멈추게 한 신라의 음악인 월명사를 떠올린다. 요즘은 신라천년예술단원들과 함께 이 아름다운 신라의 명소에서 연주하니 감회가 더 크다. 경주의 음악인으로서 경주를 위한 역할, 신라의 예술을 잇는다는 자부심에 무대는 항상 행복하고 설렌다.

 

-신라천년예술단을 창단하여 많은 활동을 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

△2009년 신라천년예술단을 설립했다. 2019년부터는 사단법인으로 재정비하였다. 현재 경주는 물론 대구, 구미, 영천 등지에서 활동하고 있는 단원 약 20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중 저 외에도 2명의 국가무형문화재 45호 이수자가 더 있다. 전문 분야와 악기 구성도 다양하다. 대금, 소금, 피리, 가야금, 거문고, 심지어 신디사이저와 무용 전문가도 있다. 2017년부터 우리소리음악회를 기획, 매년 개최해왔다. 경주시와 함께 해외공연을 많이 다녔다. 그때마다 느낀 것은 경주에 대한 자긍심이다. 경주에서 왔다고 하면 정말 부러워하고 존중해준다. 내가 경주를 지키는 국악인이 되는데 더 단단한 이유가 되었다.

 

-최근의 활동을 말해 달라.

△코로나19 이전에는 경주의 역사 명소에서 정기적으로 공연했다. 2019년에는 6월부터 10월까지 매주 토요일마다 경주읍성과 월정교에서 공연했다. 코로나19로 3년간 공연을 할 수 없어 정말 힘들었다. 손으로 연주하는 현악기나 타악기는 마스크를 써도 연주가 가능하지만 대금은 마스크를 쓰고는 절대 할 수 없는 악기가 아닌가. 3년간 공연이 전혀 없었다가 최근에 마치 봇물 터지듯 공연 요청이 쇄도하고 있어 다시 신바람을 내고 있다. 가장 최근의 해외공연은 일본의 우사시에서 열린 동아시아문화도시 폐막식 공연이었다.

 

-전통국악 연주는 물론 대중가요나 외국의 유명 팝음악 등도 연주하고 있다. 그 이유는?

△연주자는 무대와 관객을 가리지 않아야 한다는 철학을 가지고 있다. 전통악기로 얼마든지 다양한 음악의 연주가 가능함도 보여주고 싶었다. 전통 국악의 재현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국악의 대중화다. 양악기와의 협연도 자주 한다. 무엇보다도 관객과의 소통이 중요한데, 연주자의 고집보다 관객들에게 친숙한 음악을 연주하는 것이 연주자의 덕목이라는 생각이다.

 

-앞으로의 바람이 있다면?

△딸 곽수지가 나의 후계자이고 연주동반자이다. 천년 악기 만파식적의 대를 이어준다니 고맙다. 경주의 여러 문화유적지 중 가장 연주하고 싶은 곳이 월지의 임해전이다. 그만큼 탐나는 공연장이 없다. 유형문화재와 어울리는 무형문화재의 공연은 관광객을 위해 더없이 훌륭한 문화콘텐츠가 아닐까 생각한다. 문화재의 훼손이 아니라 가치를 고양시킨다는 유연한 사고가 필요한 지점이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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