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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불 위령제를 보며

등록일 2023-06-08 17:57 게재일 2023-06-09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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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현충일 아침, 베란다에 조기(弔旗)를 달고 가슴에 손을 얹었다. 영일만 건너 포스코가 조용하고 아파트엔 태극기의 일렁임도 없다. 또 그냥 놀아버리는 국가추념일이 된 듯하다. ‘화산불 위령제’에 가는 길, 태극기가 펄럭이는 모습은 보지 못해 허탈한 마음으로 화진해수욕장으로 내려갔다.

예전에는 50사단 해안훈련장이 있었던 곳, 지금은 모든 건물이 철거되어 모래밭이 적막하다. ‘썩은 숭이네 고랑’이라는 이곳에서 매년 현충일에 임진왜란 때 왜구들과 싸웠던 병사들의 원혼을 달래기 위하여 ‘임란 화산불 전몰호국영령 위령제’가 열린다. 2005년부터 향토 애림(愛林)단체인 노거수회(老巨樹會)가 정성껏 모셔오고 있는데 올해는 김인술 회장을 비롯한 15명의 회원들만 모여 조촐하게 제상을 차렸다. 초창기만 하더라도 지방 국회의원, 시장과 교육장, 군 장병 등 많은 인사가 모여 지역 문화예술단체의 살풀이춤 등 고전무용과 헌다례(獻茶禮)가 풍성하게 치러졌었다.

초대 회장이었던 이삼우 기청산식물원장의 해설을 들어보면 80년대 초부터 몰두해온 향토사 발굴과정에서 이곳 모래더미에 묻혀있는 기록에 남겨지지 않은 전쟁사를 알게 되었단다. 임진왜란 무렵 이곳 대진항에 진을 친 왜군이 노략질을 일삼자 송라찰방(옛 역참관원)이 월포 수군만호군과 의병 등 300여 명을 이끌고 화산불 남쪽의 큰 숲인 대동수(大東藪)에 모였다가 야간에 기습 공격하여 싸운 결과 양쪽 모두 전멸 상태가 됐고 지휘관들은 도망가버려 역사의 기록 없이 잊혀진 전투가 되어 구전으로만 전해온다는 것이다. 수차례 유적지로 만들려고 했지만 ‘기록에 없다’란 이유로 아직도 연초록 갯방풍의 줄기가 기어 다니는 모래밭으로 남아있다는 것이다. 예전엔 화살촉도 발견되고 바람이 모래를 날려버리면 유골도 곳곳에 노출되어 골곡포(骨谷浦)라 했고, 일제시대 때 송라초등학교의 일본인 교장이 고요한 달밤에 이곳을 찾아와 제물을 바치고 통곡을 했다는 주민들의 말도 전해진다.

역사의 한 모퉁이에서 사라져버려 수백 년 거들떠보지도 않던 무명용사들의 원혼을 기리기 위하여 노거수회는 매년 해당화를 심고 동해안 최남단 자생지로 복원하여 전몰장병들의 혼령이 붉은 해당화로 피어나는 아름다운 해변 풍경을 꿈꾸면서 가꾸어 왔다. 간단히 음복하고 소나무 숲 사잇길을 걸으면 드문드문 붉은 해당화가 낮게 피어있고 주황색 열매가 곱다. 매년 캠핑카들이 진을 치던 이곳을 철조망으로 막아두었으니 그나마 숲은 안도의 한숨을 쉬며 푸른 동해의 바람을 맞으며 해변을 지키고 있다. 모래밭에서 새끼를 돌보고 있는 멸종위기 2급의 쇠제비갈매기 부부를 찍고 있는 사진작가들도 보인다. 화진해수욕장의 또 다른 가치를 발견한다. 언젠가 이곳에 위령비를 세우고 소담한 생태공원으로 꾸민다면 일본인들도 오지않을까?

7번 국도로 오다가 보경사 입구 광천리에 있는 한미해병충혼탑에 올라갔다. 84, 89년 팀스피리트 훈련 중 헬기 추락으로 사망한 한미 해병 52명의 영혼을 지키려 89년에 건립한 탑 앞에 서서 동해의 파도 소리를 들으며 현충일 호국의 마음을 다잡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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