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서양화가 황옥희<br/>‘In my time’ 주제 계절의 변화에 달라지는 창의적 요소·치유 과정 등 담아<br/> 붓·나이프·맨손 작업으로 자신만의 개성적인 화풍, 독특한 채색 작품 ‘호평’<br/> 4~16일 대구 대백프라자갤러리서 6번째 개인전… 200호 대작 등 작품 선봬
“처음에는 어둡고 강한 이미지를 주는 작품들을 많이 그렸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강한 것들이 부드러워지기 시작하더군요. 다 쏟아낸 뒤에 오는 편안한 비움의 상태라고 할까요. 특히 산을 그리면서 마치 그 산을 닮아가듯이 편안해지고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되어갔지요. 산은 저를 정화시켜주는 매개체였습니다.”
황옥희(64) 서양화가는 20여 년 넘게 산과 강 등 자연을 소재로 개성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한 대구의 중진 작가다. 자연을 소재로 중첩된 색의 조율 작업으로 깊고 풍부한 자연의 풍미를 보여주는 화면이 미술애호가들의 호평을 받으며 회화적 밀도감을 더해주는 조형적 특징을 확장하고 있다.
“우리는 자연을 바라보고 원기를 얻고 세상을 볼 수 있는 지혜를 얻는다. 자연은 우리에게 사회의 무거운 의무를 내려놓고 마음을 정화시키는 안식을 주기도 한다”고 말하는 황 작가를 지난 1일 만났다.
-2013년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In my time’이란 주제로 작업을 하고 있다. 이유가 있는지.
△인류의 오랜 역사만큼이나 수많은 사연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산과 강은 내가 즐겨 다루는 소재들이다. 계절의 변화에 따라 수없이 달라지는 모습 속에 숨겨진 철학적 가치는 미술로 표출해 내는 절제된 회화의 모체다. 삶과 죽음, 자연과 인간, 생성과 소명 등의 근본적인 문제들에 대해 작가들은 수많은 독창적 조형언어를 만들어 왔다. 나는 구상과 추상, 단색과 다색 등 창의적 조형요소가 주는 무한한 가능성을 나만의 감성으로 그려내고자 노력하고 있다.
-‘In my time’은 무슨 의미인가.
△‘예술은 표현이다’라는 말처럼 예술은 무엇인가를 표현하는 활동이다. 즉, 예술은 대상을 그대로 복사하는 재현이 아니라 주관에 의해 다시 구성하고 표현하면서 대상물에서 얻은 감흥, 감동 그리고 조형적으로 창조하고자 하는 의지를 조형적인 소재로 형태를 형성하고자 한다. 내 삶의 기억, 내 시간과 영혼을 담아낸다는 의미라고 하겠다.
-작가의 길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지?
△무작정 그림이 좋았다. 고교 시절 가정 형편상 미술대학에 갈 수 없었다. 결혼 후 큰 아이가 외국어고에 입학한 뒤 내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되어 늦깎이로 그동안 하고 싶었던 그림 공부를 시작했다. 1998년부터 그림을 그렸는데 작업하면서 배움에 대한 욕구가 많았다. 50세에 대구예술대학 2008학번으로 미술대학생이 되었다. 나에게 그림은 끈을 놓을 수 없는 일이다.
-자연을 소재로 작업을 한다. 처음부터 그랬나?
△자연은 수많은 생명의 집합체로 생명과 죽음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과정에서 조화를 이루고 변화를 일으키면서 서로를 지키고 있으며, 형태와 색채는 서로 상호영향을 미친다. 자연은 완전한 미뿐만 아니라 존재의 본질과 삶의 법칙을 깨닫게 하며 그 속에 내재된 질서와 움직임을 선과 면, 색으로 보인다. 나는 산의 형태를 조형의 수단으로 재현하면서 자연에서 오는 미적 질서와 움직임을 생명성을 담아 표현하고 있다.
- 2017년 ‘제18회 대한민국 정수미술대전’에서 최고상인 정수대상을 차지했는데.
△2016년 대한민국 정수미술대전 최우수상(경상북도지사상)에 이어 2017년에는 대상(문화체육부장관상)을 수상하며 화단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나에게 그림은 어린 시절 이루지 못한 꿈이며 나의 삶 속에서 경험했던 수많은 기억의 풍경들이다. 스스로 구축한 사색의 공간에 반복적 형태와 색채를 구현해 냄으로써 본질적 가치를 탐구하려는 긴 여정의 출발이 된 셈이다.
-황 작가 작품의 특징은.
△유화에 비해 광택이 없고 매트한 느낌과 색감의 깊이를 극복하기 위해 나는 아크릴물감을 두텁게 바르고 다시 그 위에 덧칠과 지우기, 쌓기를 반복해 간결하고 따스한 분위기를 조성해 낸다. 그리고 붓 대신 나이프로 흰색과 검은색을 번갈아 가며 조심스럽게 형상을 다듬어 나간다. 정교하고 치밀한 계획보다는 그날의 기분에 따라 기억과 회상의 환유적 확장을 꾀하는 것이다.
-평론가들로부터 독특한 채색 방법을 높이 평가받고 있다.
△추상회화의 창시자인 칸딘스키의 “색채는 인간의 영혼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수단이며, 촉각이며, 작업하는데 연장의 눈이자 영혼이다”라는 말처럼 색채에 나의 영혼을 담기 위해 나는 반복된 노동을 통해 시간의 무게를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평평한 평면 위에 붓과 나이프 심지어 맨손으로 물감의 층을 반복해 올리는 작업형태는 아마도 나의 내면에 응어리진 무언가와 감정의 덩어리를 풀어가는 치유의 과정인지도 모른다.
-최근 작업을 소개해달라.
△4일부터 16일까지 대구 대백프라자갤러리 A관에서 여섯 번째 개인전을 갖는다. 이번 초대전에는 눈 덮인 산등성이를 자유롭게 표현한 대작들이 주류를 이룬다. 200호 대작 등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장엄한 설원 산맥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어머니의 품속에 싸인 듯 포근한 느낌마저 느껴보실 수 있을 것이다. 바쁘시더라도 전시장에 한 번 나와보시길 당부드린다.
-관람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자신의 삶이 투영된 작가의 그림 속에는 관객의 마음을 치유하고 정화시키는 묘한 매력이 숨겨져 있다고 생각한다. ‘In My Time’ 이라는 일관된 주제로 내면의 기억을 깊이 있게 표출해 내고자 하는 나의 작품 속에서 관객들께서 스스로 자신의 모습을 되새겨 보고 정체성을 찾는 계기가 되면 어떨까 한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