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사)한옥문화산업진흥원 이사장 변숙현<br/>사재 털어 고향 청도에 한옥학교 설립<br/>20여년간 전문가 3천600여명 키워내<br/>훈련비 전액 무료, 식비·교통비도 지원<br/>최고 명문 ‘한옥학교의 메카’로 손꼽혀<br/>“K-미래 한옥 발전 위해 국가지원 필수<br/>졸업생과 건축경제활동 조직 꾸리고<br/>‘치유 한옥’ 새로운 장르 개척하고파”
“한옥은 우리의 수천 년 역사와 함께 한 한국인의 집입니다. 지난 시대의 삶이 녹아든 한옥은 그 시대의 변화를 반영하면서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담아내는 장한 역할을 해왔습니다. 그런 면에서 오늘날 짓는 주거건축을 넓은 의미로 나는 한옥이라고 부르길 원합니다.”
변숙현(63) (사)한옥문화산업진흥원 이사장은 고향 청도에 한옥학교를 설립해 3천600여 명의 한옥 건축 전문가를 배출한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한옥 전문가다. 청도 한옥학교는 전국에 산재한 5개의 한옥학교 가운데 역사가 가장 깊고 교육환경을 잘 갖추고 있다는 평을 듣고 있다.
변 이사장은 아들 성민 군과 함께 2대에 걸쳐 한옥의 전통을 살려내는 역할을 하고 있다. 한옥에 대한 열정과 우리 전통문화에 대한 뿌리 깊은 사랑 없이는 불가능했을 일이다.
-어떻게 한옥학교를 만들 생각을 했나.
△내가 살았던 집이 한옥이었다. 한옥의 아름다움과 공간에 매료되어 대학원에서 전공했고, 군 제대 후에는 박사과정에 들어갔다. 그 후 몇몇 대학에 강사로 출강하며 한국건축을 가르쳤지만 한계를 느꼈다. 내가 공부하던 당시의 대학 건축학과에는 한옥, 즉 전통건축을 가르치는 커리큘럼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한국건축을 배울 기회는 2~3학점인 한국건축역사 한 과목이 고작이었다.
우리나라의 건축문화를 짊어질 예비건축가들에게 한국건축의 이론적 틀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전통건축을 가르쳐야 한다는 사명감이 들었다. 이론과 실제를 아우를 수 있는 교육기관이 필요하다고 느껴 2002년 10월경에 사재를 털어 경북 청도의 선산(청도군 화양읍 양정길 156)에 한옥학교를 세웠다.
-한옥에 대한 남다른 철학이 있을 것 같다.
△상류계층이 누렸던 고래등 같은 기와집만 한옥이라는 편견을 고쳐야 한다. 이 땅의 수많은 민초들이 삶을 경영했던 집, 바로 그 서민들의 집도 한옥이다. 한옥에는 삶의 지혜가 녹아 있다. 그 시대의 정신과 삶의 방식, 자연환경을 조화롭게 담아낸 선조들의 집에서 오늘날 삶의 그릇인 현대 한옥의 정형을 찾는 일이 나의 업이요, 천직이다. 그리고 “집이 뭣고!”라는 사색거리는 평생 놓을 수 없는 나의 말머리 공부다.
-한옥이 아름답기는 하나 아파트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불편한 주거인 건 사실 아닌가.
△한옥의 가치를 기능, 즉 쓰임에 대한 측면만을 두고 한 말이다. 오늘의 한옥은 진화하고 있고 현재의 삶을 유연하게 수용하고 삶의 질을 더 높이는 현대 한옥의 전형으로 평가되는 한옥도 많다.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내면의 성찰을 통해 더욱 성숙한 행복으로 이끄는 한옥의 공간구성 원리야말로 한옥의 진정한 면목이 아닐는지. 어쩌면 불편하더라도 그것이 유익한 불편함이라면 버릴 것이 아니라 오늘의 한옥 공간에 보존하고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 나의 한옥짓기 문법 중 하나다. 한옥 문화에 대한 뿌리 깊은 이해의 바탕은 체험이다. 한옥은 천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발견하는 만큼 우리의 삶은 더욱 풍요로워진다.
-청도한옥학교는 ‘한옥학교의 메카’로 불린다. 소개해 준다면.
△올해 개교 21년째로, 장인의 혼과 실력을 겸비한 한옥전문가 양성을 목표로 하는 평생직업교육학원이다. 현재 한옥대목수 양성과정(5개월), 한옥소목수 양성과정(5개월), 그린홈 한옥시공, 주말을 이용한 한옥대목수 (토·일 8주), 한옥소목수과정(토·일 8주)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한옥학교의 교훈은 학예상장(學藝相長), 지덕겸수(知德兼修)다. 옛것을 익혀 새것을 창조하는 직관의 공부에다 더하여 풍부한 지식과 원만한 인격을 함양한다는 취지다. 전국 한옥학교 가운데 한옥사관학교로 불리는 가장 명문으로 손꼽히고 있다. 개교 이래 3천673명의 졸업생이 한옥학교를 거쳐 갔다. 고용노동부지원 ‘국가기간전략산업직종’ 훈련기관으로 인정받아 해당 직종은 훈련비가 전액 무료이며 식비와 교통비도 지원된다.
-2년 전 아들 성민 씨에게 한옥아카데미 교장 자리를 물려주었다.
△아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한 해에 본교 대목수 과정을 55기로 수료하였다. 대학에서 건축학을, 대학원에서는 전통건축을 공부하고 한옥학교 직원으로 다년간 근무하면서 교육훈련 전반을 경험하는 등 미리 준비한 결과를 실행에 옮긴 것뿐이다. 한옥학교의 훈련시스템을 더욱 온전하게 가다듬어 새로운 도약의 물꼬를 텄으면 좋겠다.
-한옥이 나아갈 길에 대한 생각을 말해준다면.
△한옥을 직간접으로 체험한 사람이면 대개는 한옥에서 삶을 경영하고 싶어한다. 그들과 한옥에 대한 다양한 담론이 필요한 때다. 한옥짓기는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궁리요, 즉답이어야 한다. 한옥 주거문화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건축주의 집에 대한 식견과 한옥 설계자의 직관과 시공자의 한옥 시공 전문성 등 세 박자의 조화로운 호흡이 필요하다. 나는 그것을 통틀어 한옥 영건조직이라고 즐겨 부른다. 한옥문화를 누릴 국민들의 건강한 삶을 위하여 국가 지원시스템이 가동되어야 한다. 한옥은 살아있다. 지속 가능한 녹색 대안건축으로, 그리고 우리 전통 주거문화를 세계 속의 K-미래 한옥으로 거듭나게 해야 한다.
-통찰과 직관을 겸비한 목수 공부를 모토로 했는데.
△불광불급(不狂不及), 세상에 미치지 않고 이룰 수 있는 큰일은 없다. 나를 온전히 잊는 몰두 속에서 빛나는 성취를 이룰 수 있다. 좋아하는 일에 1년, 3년, 10년만 미치게 몰두하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다. 목수(木手)의 길은 목수(木修)의 길이며, 통찰(通察)의 눈으로 보고, 생명 살림의 가슴으로 느낄 때 비로소 목수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통찰과 직관을 겸비한 온 목수이며, 한옥학교 졸업생의 공부 덕목이다.
-앞으로의 계획과 꿈이 있다면.
△청도한옥학교는 명실상부한 이 땅 최고의 한옥목수 양성 직업학교로 거듭날 것이다. 그리고 한옥학교 밝은 터에 지역과 시대, 계층을 아우르는 한옥 노천박물관을 꿈꾸고 있다. 한옥학교 졸업생들의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한 한옥 영건조직을 꾸려 그들에게 실제적인 건축경제 활동의 주역이 될 수 있도록, 모교로서 가교역할을 다하고자 한다. 그리고 (사)한옥문화산업진흥원 이사장으로서 치유 한옥의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여 웰니스관광산업에도 일조하고자 준비하고 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