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SF평론가 강지우
“SF는 세상을 낯설게 보게 합니다. 지금 이곳이 아닌 다른 세계를 탐험하면서 거꾸로 우리가 사는 세상이 얼마나 이상한지 알게 되는 거예요.”
SF는 최근 한국 문학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장르 중 하나다. 그러나 다양한 스펙트럼의 작품들이 쏟아져 나오는 데 반해, 전문 비평은 턱없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포항에서 활동 중인 강지우(35) SF 평론가를 지난 26일 만났다. 그는 전국에서 몇 안 되는 SF평론가다. 포스텍과 동 대학원에서 생명과학을 전공한 그에게서는 새로운 길을 만들어가는 사람 특유의 신선함과 에너지가 감돌았다.
10년동안 한국 SF소설 판매량은 5.5배로 급성장 했습니다
문학이 그리는 인간의 삶에서도 과학은 무시할 수 없는거죠
급변하는 현대사회서 과학기술은 만능의 해결책이 아니라
인간의 고민과 조율이 필요한데 SF는 그 점에 주목합니다
-SF 평론이라는 장르가 익숙하지는 않다.
△SF 비평을 꾸준히 공부해 오고 있지만, 등단하거나 책을 낸 것은 아니어서 ‘SF 평론가’로 소개하기는 아직 민망하다. SF 비평에는 SF라는 장르 자체에 대한 이해와 과학과 사회의 관계에 대한 성찰이 드러난다. 더불어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한국 SF계를 분석하고, 어떤 작품이 왜 좋은 작품인지를 이야기하는 다양한 목소리가 담긴다. 결국에는 작품을 둘러싼 담론을 만들어 SF를 더 깊고 재미있게 즐길 수 있게 된다. 우리나라에 더 많은 SF 비평이 필요한 이유다.
-SF 평론가가 된 계기는.
△과학커뮤니케이션에 관심이 많았다. 다만 과학을 쉽게 전달하기보다는 과학과 사회의 연결을 탐구하고 알리고 싶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과학은 과학자들이 하는 것이고 일반의 실생활과는 상관이 없다는 인식이 강한데, 실제로는 과학과 사회는 밀접하게 영향을 주고받는다. 눈에 먼저 들어온 것이 즐겨 감상하던 SF였다. SF는 대중 친화적이면서도, 과학과 사회의 얽힘을 궁리하는 장르이기 때문이다.
-한국 SF가 급성장 중이다. 그 현주소는?
△포스텍 출신 김초엽 작가의 SF 소설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20만 부가 넘게 팔렸다. 수록작 ‘스펙트럼’을 ‘벌새’의 김보라 감독이 영화화 중이다. 온라인 서점 알라딘의 통계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SF 소설 판매량이 5.5배 증가했고 구매층의 20% 정도를 20대가 차지했다. SF 작가 수가 늘어난 것은 물론, 기존 순문학(문단 문학)계 작가가 SF 작품을 발표하기도 한다. 문학이 그리는 인간의 삶에서도 과학은 이제 무시할 수 없는 요소가 된 것이다.
-평론은 작품뿐 아니라 작품과 사회, 작품과 독자가 맞닿아 있는 부분까지 관심을 갖는 일이다. 어려운 점은 없는지.
△SF 비평을 위해서는 과학의 발전 양상에도 안테나를 세워야 하는데, 요즘에는 그 발전 속도가 워낙 빠르다 보니 따라가기 벅찰 때가 있다. SF를 읽는 사람이 늘어나긴 했지만 스스로를 ‘SF 독자’로 정체화하는 그룹은 아직 형성 중이라 취향이나 선호를 예상하기 힘들 때도 있다. 다만 그렇기에 더 재미있고 흥미진진한 분야기도 하다.
-챗GPT 등 첨단 기술이 일상에 자리 잡는 한편 ‘이상 동기 범죄’가 발생하는 등 세상의 양상이 급격히 바뀌고 있는데, 오늘의 현실을 이야기하는 SF 작품이 많이 나와야 하지 않겠나.
△필립 K. 딕의 소설을 영화화한 ‘마이너리티 리포트’와 SF 애니메이션 ‘사이코패스’에서는 첨단 과학기술을 활용해 범죄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은 인간을 사전에 검거한다. 그러나 결백한 사람을 잘못 검거하거나, 극단적인 감시 사회를 만드는 등의 문제점도 작품 속에 그려진다. 결국 과학기술은 만능의 해결책이 아니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수없는 고민과 조율이 필요한데 오늘날의 SF는 그런 면에 주목한다.
-가장 감명 깊게 읽은 SF 소설은 무엇이었나?
△개인적으로 김보영, 배명훈 작가의 SF를 정말 좋아하지만, 지금의 우리에게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면서 많이 알려지지 않은 작품을 소개하고 싶다. 기시 유스케의 소설 ‘신세계에서’다. 유전자 돌연변이로 염력을 갖게 된 인간이 염력이 없는 인간을 밟고 서서 어떤 사회를 만들게 될지 생물학, 사회학 관점으로 치밀하게 구성해 낸 역작이다. 인간이 다른 인간을, 또는 다른 종의 생명을 어떻게 대하는지 소스라쳐 되돌아보게 한다.
-6년째 ‘서바이벌 SF 키트’라는 팟캐스트와 유튜브를 운영하고 있는데 소개해 준다면.
△포스텍 동문인 ‘공상주의자’와 함께 SF라면 영화, 소설, 게임, 애니메이션을 가리지 않고 소개하는 방송이다. ‘단신’ 코너에서는 SF 신작과 관련 행사 소식, 최신 과학 뉴스도 소개한다. 화려한 편집은 없지만, 라디오처럼 들을 수 있는 편한 방송을 지향한다. 방송 목록을 훑어보다가 좋아하는 작품을 다룬 에피소드를 우선 골라 들어보시는 건 어떨까.
-앞으로 꼭 이루고 싶은 소망이나 바람이 있다면.
△SF를 매개로 과학이 우리의 삶을 상상 이상으로 바꾸고 있다는 것, 또한 과학도 사회와 동떨어져 있지 않다는 것을 알리고 싶다. 우리가 현실을 제대로 인식할수록 세상은 더 살기 좋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