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이 왔다. 장마는 지나갔지만 남아있는 저기압의 영향으로 전국에 비가 오고 경북 북부는 호우주의보가 내려져 맑은 9월의 시작은 아니지만, 천천히 달려본 시골 길가에는 코스모스와 들국화가 계절을 노래하고 골목길 흙담 너머로 노란 해바라기들이 벙긋벙긋 웃는다. 가을이 온 것이다.
8일은 백로(白露), 하얀 이슬이 내리기 시작하면 과일이 익고 벼가 고개를 숙인다. 황금 들판에는 키다리 허수아비가 한낮에도 꾸벅꾸벅 졸고 빨간 고추밭에는 고추잠자리가 짝을 찾아 날아다니고 강둑과 산기슭에 핀 하얀 구절초는 붉은 부전나비들을 불러 모은다. 먼바다에서는 10호 태풍 ‘담레이’는 소멸됐지만 9호 ‘사올라’는 또 동생 몇몇을 꼬드겨 올라올 것이라며 가을장마가 예보되기도 한다.
지난 30일은 음력 7월 15일, 백중(百中)날이다. 세벌 김매기가 끝난 후 편한 마음으로 농민들의 두레놀이가 열리곤 했는데, 100가지 곡식 씨앗을 늘어놓고 호미도 씻어 걸고 일 잘한 머슴들을 소에 태워 마을을 한 바퀴 돌았다는 ‘머슴날’이며 ‘풋굿’도 즐긴 중원(中元) 날이다. 남아있는 폭염과 가을장마 우려에 농민들의 얼굴은 밝지 않겠지만 그래도 황금빛 벼 물결은 우리의 마음을 풍요롭게 한다. 불교계에서는 1년에 한 번 지옥문이 열린다는 우란분재(盂蘭盆齋) 날로서, 정성껏 백중기도 드리고 혼령들의 극락왕생을 발원하는 5대 명절 중 하나이기도 하다.
백중에는 달과 해와 지구가 일직선상에 위치하여 서로의 인력이 커서 해수면이 높아지는 ‘백중사리’ 현상이 발생한다지만 동해안 바닷가에는 영향이 적다. 그러나 이 백중사리보다 더 염려된다는 것이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방류로 인한 생태계 파괴와 어민들의 생계에 대한 분노이다. 해양 오염의 런던협약에 따라 삼중수소 농도를 허용치 이하로 처리하여 방류하겠지만 벌써 해양수산물을 기피하고 거래도 격감하고 있어 정부는 오염수 유입감시와 방사능 검사를 대폭 확대하여 해양계 손상을 막을 계획이다. 그러나 ‘핵 오염수 방류를 중단하라’는 외침과 ‘위험한 일은 없다’는 태도로 여야 공방은 국민 마음을 두 동강 내고 있지만 과학적 자료와 전문가 견해도 참고해야 한다. 공기 중 자연 방사선보다 훨씬 적다는 처리수 농도는 더 오염된 정치문제로 이어질 듯하다.
8월의 끝날, 지구에 가장 가까워진 보름달이 크고 밝게 웃으며 9월을 맞이했다. 8월 초 유둣날에 떴었고 또 월말에 떠서 한 달에 두 번 뜨는 보름달이라 ‘블루문’이기도 하여 ‘슈퍼 블루문’이 된다. 저녁 7시 반경에 떠올라 3시간 후 최대 크기로 되었다가 다음 날 아침 7시경에 끝난다. 다음엔 14년 후에야 볼 수 있고 토성도 달 바로 위에 나타나는 진귀한 모습을 보려고 경주 첨성대와 여러 천문대에서는 ‘달 보기’ 행사도 열린다.
9월에는 결실의 계절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나라의 걱정거리도 추수하면 좋겠다. 나도 집 뒤 언덕의 대나무 숲도 정리해야겠다. 나팔꽃들이 푸른 가을을 연주하고 잎들은 하늘에 하트를 그리고 있다. 나도 가을을 타나 보다. 비발디의 ‘사계-가을’을 들으며 손편지를 써서 가족들에게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