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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게 걷는, 문경 돌리네

등록일 2023-10-16 18:20 게재일 2023-10-17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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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 돌리네 습지 탐방로.

문경에는 옛 지명이 돌실 또는 도리실이라 불리는 곳이 있다.

동그랗게 돈다는 뜻으로 마치 접시 모양처럼 지반이 옴폭 내려앉은 지형이다. 이곳은 세계적으로 유래를 찾기 어려운 희귀한 ‘카르스트 습지’ 지형이다. 현재는 굴봉산 둘레길과 생태탐방로가 형성되어 있고 전망대와 홍보관과 데크 탐방로가 놓여 있어 특이지형과 생태 환경을 가까이서 오감으로 느끼고자 방문하는 사람들이 찾아든다. 딱 느리게 걸으며 주변을 둘러보기에 좋은 장소다.

카르스트라는 명칭은 아드리아 연안의 이탈리아와 슬로베니아의 경계에 있는 카르스트 지역의 전형적인 암석 지대를 연구하면서 사용된 용어로, 석회암지대가 빗물이나 산화탄소가 함유된 지하수로 인해 녹아내리면서 형성된 독특한 지형을 뜻한다.

석회암은 다른 암석에 비해 탄산칼슘이 많이 내포되어 있어 물에 더 빨리 용식되는 현상을 보이는데, 주로 깊은 고랑이 패여 울퉁불퉁한 지형을 형성하는 카렌(라피에) 지형과 접시 모양의 돌리네 지형과 그 아래의 종유석 동굴 등이 발달한다.

돌리네·우발라·폴리에·카렌(라피에)·석회암 단구·석회동굴 등 다양한 지형명으로 구분할 수 있다. 돌리네는 동그란 싱크홀과 같은 지형을 말하며 사발형·접시형·깔대기형 등이 있다. 우발라는 여러 개의 돌리네가 연결되어 분지 지형을 만든 것으로 형태가 다양하다. 폴리에는 우발라가 확장되어 거대 평지 형태로 드러나는데, 대체로 돌리네가 경작지로 활용되면서 형태가 온전히 남아있는 곳을 찾아보기 힘들다. 라피에는 석회암지대에서 녹지 않고 남겨져 있는 암석 돌출부를 이르는 말이며 석회동굴은 돌리네에 형성된 싱크홀에서 유입된 물이 동굴 형태를 이루며 녹아내린 석회암지대이다. 고수동굴·성유굴·환선굴 등 오래전부터 관광지로서 사랑받아 온 지형이기도 하다.

카르스트 지형은 석회암의 특성상 물에 잘 녹고 물 빠짐이 좋아 자연적으로 습지가 형성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투수층이 물이 빠지는 속도를 늦춰 습지가 형성되기도 한다.

한국에서는 강원도 평창·정선·삼척·영월 등 일대, 충북 제천과 단양, 경북 문경 그리고 북한의 황해도 서흥군 등에서 발견할 수 있다. 남한은 강원도에서 남서방향으로 길게 이어지는 고생대 오르도비스계 옥천지향사를 중심으로 나타나며, 북한은 평안남도와 황해도 일대의 캄브리아계 평남지향사에 집중적으로 발달되어 있다.

람사르 습지 후보지로 알려진 문경 산북면 굴봉산 돌리네 지형은 대략 해발 200미터 지점에 있는 카르스트 습지 지형이다. 지리적으로 고립된 접시 모양의 단독 분지 지형을 띄는데, 지표면의 하천보다는 지하수가 잘 형성되어 있다. 장마가 지면 굴봉산 돌리네 지형에 내렸던 빗물이나 모여있던 지하수가 세 지점에서 지표면으로 삼출되어 습지의 저수지로 유입된다. 이곳의 토양은 모래의 함량이 높고 암회색 내지는 흑색의 토양이 발달하여 물 빠짐이 좋으나 지하 30~60미터 아래에는 테라로사(붉은 흙)가 불투수층을 형성하고 있어 연중 2개월 정도는 저수지로 물을 유입할 수 있다.

카르스트 지형임에도 물웅덩이가 형성되었다는 점에서 세계적으로도 특이한 케이스에 속한다.

봄이면 양서류가 울고 야생화가 꽃을 피우기 시작하여 여름에는 낙지다리·으아리 등과 같은 희귀 식물과 층층나무·물푸레나무가 어울린다. 가을에는 억새와 버드나무의 조화를 눈에 담을 수 있다. 또한 수달·담비·붉은배새매 등과 같은 희귀 동물을 포함해 약 700종이 넘는 생물의 생명수를 담당하는 곳이기도 하다.

현재는 해설사에게 산중의 생태 습지에 대한 전문적인 설명을 들을 수 있게 프로그램도 마련되어 있다.

문경 호계면 일대에도 석회동굴과 카렌·돌리네·우발라 등 다양한 카르스트 지형이 드러난다. 선암리 일대에서만 11기의 돌리네가 발견될 정도로 돌리네 지형이 집중되어 있으며, 사발형·접시형·깔대기형 등 여러 형태를 확인할 수 있다. 부곡리 일대에서는 돌리네·우발라와 숫굴·암굴 등과 같은 석회동굴도 발견되었다. 숫굴은 부곡리 굴넘재의 돌리네에서 유입된 지표수가 원인으로 추정되며, 암굴은 식수로도 활용되던 곳으로 굴 안에는 호수도 형성되어 있다. 지천리와 우로리 일대에서는 길쭉한 우발라와 우로굴이 발견되었다.

또한 문경대학교에서는 카렌(라피에) 지형의 일부를 남겨두어 빗물에 용식된 울퉁불퉁하고 복잡한 모양을 확인해 볼 수 있다. 작년에는 가은고 지리동아리에서 가은읍 야산의 카르스트 지형인 우발라와 라피에 군락을 발견하기도 했다.

문경은 카르스트 지형 중에서도 국내 유일의 독특한 돌리네를 확인할 수 있는 곳이며, 다양한 카르스트 지형도 집중적으로 분포된 곳이다. 다양한 동·식물이 많아 계절마다 다른 생태 환경을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또한 무엇보다도 걷기 좋은 탐방로가 일반인의 눈높이에 맞춰 자연을 마음에 담을 기회를 제공한다. 오늘도 자연을 둘러보며 느리게 걷기에 여념이 없다. /최정화 스토리텔러

◇ 최정화 스토리텔러 약력 ·2020 고양시 관광스토리텔링 대상 ·2020 낙동강 어울림스토리텔링 대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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