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합리적으로 판단하려면

등록일 2024-03-31 18:49 게재일 2024-04-01 18면
스크랩버튼
유영희 작가
유영희 작가

4월 10일, 22대 총선일이 열흘 남짓 남았다. 정당마다 구호를 내걸고 표심을 얻기에 분주하다. 어떤 이는 진작에 마음을 굳혔겠지만, 아직 표를 줄 정당과 후보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는 국민도 많다. 처음부터 판세가 결정된 지역도 있지만,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격전지도 있다. 그러니 투표일까지 유권자는 두 눈 크게 뜨고, 두 귀 활짝 열고 후보의 인물과 정책을 주시해야 한다.

문제는, 인간이 그렇게 합리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점이다. 일반적으로는 정당의 정책과 인물을 보고 자기 이익에 기반해서 투표하는 것이 합리적이므로 당연히 그렇게 투표할 것이라고 기대하지만, 현실에서는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예를 들어, 피지배 집단이 지배 집단을 위해 투표하는 일이 종종 있다. 10여 년 전에 출간된 토마스 프랭크의 ‘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에도 캔자스 등 낙후된 지역 주민들이 공화당에 표를 주는 현상에 주목했다.

이런 현상에 대해 뉴욕대 심리학 교수 존 조스트는 ‘체제 정당화의 심리학’을 통해서 사람들 대다수는 현 상태를 옹호하고, 강화하고, 정당화하도록 동기화 되어 있다고 말한다. 사람의 마음이 이런 방식으로 동기화되는 이유는 많고도 복잡하다. 그중에 내가 관심 있는 방식은 양가감정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지위가 낮은 사람들은, 지위가 높은 집단과 자기 집단에 대해서 모두 양가감정이 높다는 가설이 검증되었다. 양가감정이 높다는 뜻은 긍정 감정과 부정 감정이 모두 높은 수준으로 다 있다는 것이다.

존 포스트가 보여준 여러 실험에서 가난한 사람은 부자를 비난하면서도 선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양가감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자존감도 낮은 편이다. 이런 현상은 빈부 관계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고, 흑인과 백인, 명문대와 비명문대 등 사회적으로 강자와 약자로 구분되는 집단 사이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이렇게 모순된 감정을 가지고 있어서 합리적으로 판단하기 어렵다.

비합리적인 판단을 하게 되는 데에는 문화적인 고정 관념도 중요하게 작동한다고 한다. 존 포스트는, 찰스 디킨스가 ‘크리스마스 캐럴’에 나오는 크래칫 가족을 통해 가난하지만 행복하다는 고정 관념을 만들었다면서 이런 고정 관념이 사회에 널리 퍼지면 약자인 당사자도 그것을 내면화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의 사례일 뿐, 대다수 사람이 양가감정을 비롯한 인지부조화에 휘둘리면서도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일관성이 없고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기도 한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우리가 이런 식의 양가감정에 지배당하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인터넷의 발달이 언제나 민주주의에 기여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전 시대와는 다른 새로운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인터넷을 잘 활용하면 양가감정에서도 자유로워지고 교차검증을 통해 합리적인 사고도 할 수 있게 된다. 그동안 우리는 냉철한 이성으로 정책과 비전에 입각하여 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 능력을 쌓아왔다. 돌아오는 4월 10일에 그 능력을 발휘해보자.

유영희의 마주침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