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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은 꺾어도 봄은 온다

등록일 2024-04-14 18:16 게재일 2024-04-15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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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정 시인
이희정 시인

뒤돌아서서 사진을 태워야

미련을 갖지 않는다고 했다

 

얼굴이 흐려질 동안

두 눈에 담았던 풍경이

재가 될 동안

 

입술에 감추었던 고백과

지상의 영광과 모욕이

애월 봄볕이

진언이 될 동안

 

나는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해 달라고

등으로

봄 햇살을 할퀴며

표범처럼 울었다

― 서안나 ‘재의 풍경’ 전문 (애월, 여우난골)

아름다운 것들은 원하든 원치 않든 아픈 쪽으로 향한다. 시인은 뒤돌아서서 사진을 태운다고 했다. 시인이 태우는 얼굴은 흐려지고 재가 되어간다. 흐려져 가는 그 얼굴을 애월(涯月)이라 쓰고 애절(哀切)이라 불러봄직하다. 서안나 시인에게 봄은 달려들어 햇살을 할퀴어야 할 만큼의 아픈 봄이고, 표범처럼 울어야 할 만큼의 잔인한 봄이다.

누구에게나 몸의 거주지, 마음이 거하는 본적지가 있다. 제주에서 나고 자란 서안나 시인의 애월은 어디로든 애월이어서 손이 시리고 마음이 시리다. 애월은 한자로 풀면 물가(涯)와 달(月)이 합쳐진 말로, 물가에 얼비친 달이다. 달빛의 젖은 풍경이 재가 되는 풍경이라니. 이 얼마나 애잔한 당신인가. 애월이 주는 정감은 언어의 음성과 잔상만으로도 그 수심이 깊다.

이 시에는 제의적 고백이 담겨 있다. ‘재의 풍경’에는 T.S 엘리엇(Eliot)의 전언처럼 잔인한 4월이 서려 있음을 짐작할 수 있는데, 시인이 두 눈에 담았던 풍경은 “재가 될 동안” “진언이 될 동안”의 표현처럼 상태가 아니라 움직임을 나타내는 동태(動態)의 순간으로 그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시에서 ‘재’가 주는 심상과 현재진행형으로서의‘동안’이라는 시어에 천착해 보자. 시인이 미련을 갖지 않겠다고 하는 다짐은 지나온 생의 풍경을 산화시킴으로써 그 선업을 잊지 않겠다는 회향의 염을 내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 태운다는 것, 회향의 행위를 살펴보면. 범어로 ‘회향’은 “우리의 모든 죄를 / 용서해 달라”는 기도의 의식과 같다. 애월의 봄볕은 “입술에 감추었던 고백과 / 지상의 영광과 모욕”을 모두 태우는 진언의 주문과 다르지 않다.

우리가 아는 진언이란 상실이 다시 시작이 되고, 잃음이 새 세상의 문이 되는 간절한 기도처럼 폐허의 재 위에 한 세계가 얹어지는 모습이다. 태우는 것으로 시작한 이 시는 선근의 업을 평화롭게 나누기 위한 또 다른 세계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렇다, 시인의 애월은 잃은 것을 찾고 있는 그 재의 풍경 중에서 그녀가 가장 사랑하는 한 풍경을 잊지 않으려는 참혹한 몸짓이다.

당신의 얼굴이 흐려질 동안 ‘재의 풍경’은 상실의 존재에서 빚어졌지만 더 이상 무력하지 않다. 봄이 형체가 아닌 움직이는 동체인 것은 시인의 의지를 생성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죽은 재의 풍경이 아닌, 살아 움직이는 재의 풍경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까. 시인이 마음에 담고, 눈에 담고 시에 담았던 존재들이 바로 이 고결한 진언에 닿아 있음이리라. 대개 아름다운 것들이 지극한 슬픔에서 오는 것처럼 아픈 곳에서 꽃은 핀다.

“애월 봄볕이 진언이 될 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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