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소설가 김옥주<br/> 중등 교사에서부터 소설가·펜화작가·사회복지학과 박사까지<br/>“이젠 돌봄 제공자들의 숨통 틔울 아파트공동체를 만들고 싶어”
“40년간 중등학교 교사로 재직할 땐, 학생들과의 소통과 교감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이었어요. 그 연장선에서 소설을 쓰기 시작했고 학교가 무대인 첫 소설 ‘따뜻한 학교’가 출간됐죠. 은퇴 후엔 치매엄마와 함께 지내며 사회복지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돌봄 제공자들에게 숨통을 틔울 수 있는 아파트공동체를 만들고자 하는 꿈을 꾸고 있습니다.”
교사로서, 소설가로서, 펜화작가로서, 이제는 사회복지학박사로서 항상 삶에 충실했던 소설가 김옥주(66)는 여전히 맑고 밝은 웃음이 환하다. 학생들의 상급학교 진학 매몰이 안타까워 과감하게 다른 학교와 지역도서관, 대학, 지자체와 연계를 시도했다. 소설가로서 ‘따뜻한 학교’, ‘세종대왕’, ‘반구대 고래길’, ‘박사다요시의 귀향’, ‘AI시대에 만나는 훈민정음’ 등 13권의 소설을 발표했다. 은퇴 후의 행보도 남다른 그와 지난 25일 만났다.
-평범한 교사는 아니었다. 아직도 학생들과의 추억이 있다면
△교사로서 짧지 않은 시간을 보냈으니 할 얘기야 많지만, 현재도 삶을 풍요롭게 하는 건 아이들의 말, 말, 말이다. “선생님 앞에서는 우리 모두가 똑 같아요.”, “선생님을 믿어요.”, “남편 자랑, 자식 자랑 안 하셔서 독신인 줄 알았어요.” 차별하지 않는 교사, 신뢰할 만한 교사, 공과 사를 구분하는 교사로서의 평가서가 아니겠는가.
-‘포항 소재 문학공모전’(2010)에서 ‘호미곶에 가다’로 대상을 수상했다. 교사로 소설가로 동시에 두 가지 삶을 살았다.
△소설을 쓰기 시작한 동기는 교사, 아이들, 학부모와의 소통을 위해서였다. 내가 가장 잘 쓸 수 있는 분야는 학교 이야기일 수밖에 없는 건 순전히 경험치지만 난 철저히 발품과 공부를 통한 취재형 소설가다. ‘세종대왕’은 세종실록을 모두 읽고서야 탄생한 소설이다.‘아오자이에 핀 무궁화’는 베트남 방문기가 바탕이 되었고, ‘반구대 고래길’은 세계전통해양문화연구소의 회원으로서 전통 고래문화에 푹 빠져 탄생했다.
-‘박사다요시의 귀향’의 표지가 이색적이다.
△‘박사다요시의 귀향’은 엄마 얘기다. 내가 직접 엄마를 그려서 표지에 넣고 싶었다. 2019년부터 펜화를 꾸준히 그려 작가로서도 인정받았다. 엄마를 그린 이후 지금까지는 오직 고래만 그리고 있다. 전공을 잘못 선택한 게 아니냐는 주변의 반응을 접할 만큼 펜화에 몰두하지만 소설가임을 잊지 않고 있다.
-은퇴 후 위덕대 사회복지학과 박사학위과정에 입학, 지난 2월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끊임없는 도전, 파격적 변신이다.
△2017년부터 치매 관련 약을 복용하시던 엄마의 병세가 갑자기 악화되어 2020년 퇴직 이후부터 엄마와 같이 지내고 있다. 평생 교사였던 터라 치매엄마랑 지내고 돌보기가 막막해서 노인복지 공부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덕분에 방문요양서비스나 주간보호센터 이용에 빠르게 대처할 수 있었다. 사회복지사와 요양보호사라 자격증 취득도 했다.
- 박사과정과 학위 취득이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지난 2월 학위를 받았다.
△지도교수님 덕분이다. 학술지에 4편의 논문을 게재하고 ‘구술생애사 기반의 세대통합프로그램 개발’이 최종 박사 취득 논문으로 통과되었다. 쉽지 않았으나 성취감도 크다. 박사학위 취득이 엄마의 병 진행을 늦출 것으로 기대했으나 학위수여식의 의미를 통 모르시니 엄마의 병에 별 도움이 되지 못함을 통탄한다.
-현재 생활은 어떤지.
△요즘의 내 생활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엄마와 지내기, 소설 쓰기, 펜화 그리기. 나는 엄마를 돌보지 않는다. 엄마와 함께 지낼 뿐이다. 효녀 코스프레는 사양하고 싶다. 신경 쓰는 건 엄마의 잔존기능 유지다. 하나리 사치코의 ‘노인 수발에는 교과서가 없다’에 동의한다. 엄마가 주간보호센터를 이용하는 동안은 순전히 내 시간이다. 소설을 쓰고, 그를 위해 도서관을 즐겨 찾는다. 펜화를 그리는 생활도 큰 즐거움이다.
-앞으로 계획은.
△엄마와 지내면서 가장 큰 불편은 마음 내킬 때 취재 여행을 떠날 수 없다는 거다. 누구나 이웃의 도움이 필요할 때가 있다. 가장 가까운 이웃인 아파트 한 통로의 주민끼리라도 도움을 주고받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아파트공동체다. 아기 엄마가 볼일 보는 동안 한두 시간 돌봐주거나, 내가 취재여행갈 때, 엄마를 어른을 잠시 돌봐 줄 수 있는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정도다. 사생활은 철저히 보호하되 필요한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면 좋지 않겠는가. 이런 공동체가 활성화된다면 공동체 소식지를 간단하게라도 제작해서 공유해 보리라는 꿈도 꾼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