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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으로 몰아붙이는 폭염의 참상 낱낱이 기록

윤희정기자
등록일 2024-06-13 19:21 게재일 2024-06-14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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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 살인’<br/><br/>제프 구델 지음·웅진지식하우스 펴냄<br/>환경
신간 ‘폭염 살인’(웅진지식하우스)은 미국의 기후과학전문기자 제프 구델이 ‘열국 열차’를 타고 한 바퀴 돌아본 달궈진 지구의 모습에 대한 폭염 르포르타주다. 대폭염 시대를 맞아 세계 방방곡곡이 해마다 ‘역대급 더위’를 경신하는 가운데 지구는 점점 더 빠르고 더 뜨거운 멸종을 향해가고 있다.

20년간 기후 저널리스트로 활동해 온 저자는 지구촌 곳곳의 폭염 실태를 토대로 기후 변화가 몰고 오는 파국적인 결과를 경고한다. 원제목이 ‘더위는 당신을 먼저 죽일 것이다’(The heat will kill you first)인 책은 기후 변화의 영향은 점진적인 것이 아니라 살인적인 폭염으로 이미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이 책은 산업혁명 이후 가장 더운 해로 기록된 2023년을 예견한 책으로 미국 사회에서 큰 화제를 일으키며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저자는 평균기온 45도를 웃도는 파키스탄부터 시카고, 사라져가는 남극에서 파리까지 가로지르며, 우리 일상과 신체, 사회 시스템을 극한으로 몰아붙이는 폭염의 참상을 낱낱이 기록한다.

2019년 기준 48만9000명에 달하는 전 세계 폭염 사망자는 허리케인과 태풍, 수해 등 모든 자연재해로 인한 사망자의 합계를 훨씬 웃돈다. 그중 자신이 ‘더워서’ 죽음을 맞이할 것이라 상상한 사람이 몇이나 될까. 저자는 폭염이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쉽고 빠르게 우리를 죽이고 있다고 경고한다.

저자는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이 ‘더위’가 여름의 낭만이 아니라 지구를 끓어오르게 만드는 ‘열’ 그 자체라는 점에 주목한다. 대기와 해류뿐 아니라 인간을 비롯한 지구의 모든 생명체는 일종의 ‘열 관리 시스템’이며 열역학의 원칙에 따라 열은 사라지지 않고 다른 형태로 변환된다. 열을 내는 유기체인 인간의 몸은 한계치인 습구온도 35도를 넘으면 고체온증을 겪다가 순식간에 열경련과 열사병으로 치닫는다.

열은 우리의 사회 시스템마저 붕괴시킨다. 통계에 따르면 지구 기온이 1도 올라갈 때마다 자살과 유산(abortion)이 늘어난다. 혐오 발언과 강간 사건을 비롯한 각종 강력범죄 빈도가 높아진다. 저자는 지구상 모든 존재의 생존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정치 경제적 문제가 골딜록스 존(Goldilocks zone), 즉 생존 가능 영역 밖으로 한 발짝 내디뎠다며 우리의 폭염 불감증에 경종을 울린다.

저자는 한때 풍요의 땅이었으나 이제는 죽음의 땅으로 변모한 ‘매직 밸리(Magic Valley)’, 리오그란데 계곡과 수확량이 절반으로 줄어버린 텍사스 옥수수 경작지를 찾아가 절망하는 농부들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전한다.

우리가 받아든 폭염이라는 청구서에 자비는 없다. 이 책에 따르면, 평균기온 1도씩 상승할 때마다 미국의 GDP의 약 1퍼센트인 3000억 달러(약 4조 원)가 증발한다. 이 손실액은 2050년 5000억 달러까지 증가할 것으로 추산된다.

더위를 피하기 위한 야생의 대탈출도 벌어지고 있다. 육상 동물들은 현재 10년마다 약 20킬로미터씩 북상하고 있으며, 대서양대구의 경우 같은 기간 동안 160킬로미터, 산호마저도 매년 약 32킬로미터씩 북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따뜻해진 해류로 해수면이 상승하며 해안 도시의 주민들도 집을 버리고 이주를 택한다. 인천, 부산 등 한국의 해안 도시들도 전 지구적 기후 이주 대열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저자가 만난 수많은 기후과학자가 입을 모아 말하는 것은 지구 열탕화의 원인이 ‘화석연료 사용’에 있다는 사실이다. 전 세계 화석연료 사용 비중은 2024년 현재 82%로 여전히 증가세다. 2023년 미국의 주요 석유 및 가스 생산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는 사실은 충분히 절망적이다. 저자는 특히 폭염을 피할 수 없다면 그 위험을 적극적으로 알리기 위해 허리케인 ‘카트리나’처럼 폭염에 이름을 붙이고 이미지화하는 ‘브랜딩’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불과 20년 뒤면 전 세계 인구 70%가 살게 될 도시의 모습에도 리모델링이 필요하다. 아스팔트와 콘크리트, 강철 그리고 실외기로 가득 찬 도시는 열을 가두는 찜통 그 자체다. 뉴욕시는 100만 그루의 나무를 심어 도시에 그늘을 만들었고, 세비야는 지하수로 기술을 활용해 도시를 식혔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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