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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에 산화한 호국영웅, 70여년 만에 가족 품으로

안병욱기자
등록일 2024-07-11 19:49 게재일 2024-07-12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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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서 故 강한찬 일병 귀환행사<br/>2008년 강원도 유해발굴 이후<br/>16년 만에 동생 통해 신원 확인<br/>칠곡군 출신으로 6·25전쟁 참전<br/>춘천전투서 北 막다 장렬히 전사<br/>유족들 “유해라도 찾게 돼 다행”
고 강한찬 일병의 발굴 당시 유해.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제공
6·25전쟁 당시 풍전등화의 위기에서 조국의 운명을 구하다 전사한 호국영웅의 신원이 지난 3일 확인돼, 11일 70여 년 만에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다.

국방부유해발굴감식단(이하 국유단)은 2008년 5월 강원도 춘천시 동산면 일대에서 발굴된 유해의 신원을 6·25전쟁 당시 ‘춘천지구 전투’에서 전사한 고(故) 강한찬 일병으로 확인했다.


이로써 2000년 4월 유해발굴이 시작된 이후 신원이 확인된 국군 전사자는 총 235명으로 늘었다.


고인의 신원확인은 국군 장병들에 의한 유해발굴, 병적자료 검증을 통한 기동탐문, 유가족의 유전자 시료채취 등 다양한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국유단은 전사연구를 토대로 2008년 5월 강원도 춘천시 동산면 일대에서 발굴에 나선 결과, 개인호로 추정되는 곳에서 곧게 누운 자세로 있는 두개골과 정강이뼈 등을 발굴했다.


이후 국유단 기동탐문관이 고인의 병적자료에서 본적지가 경북 칠곡군으로 돼 있는 것을 확인한 후, 해당 지역의 제적등본 기록과 비교해 고인의 여동생 강길순(1940년생) 씨를 지난 5월에 방문, 유전자 시료채취 및 유전자 분석을 통해 16년 만에 고인과 가족관계를 확인했다.


고인은 국군 제6사단 소속으로, 6·25전쟁 최초의 승리를 거둔 ‘춘천지구 전투’에서 치열하게 북한군의 남하를 저지하다 장렬히 전사했다.


고인은 1932년 1월 경상북도 칠곡군에서 2남 3녀 중 셋째로 태어났고, 가정형편이 여의치 않아 부모님을 도와 농사를 지으며 생계를 유지했다.


입대 당시 병적이 확인되지 않아 입대 일자를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정전 이후 1957년 2월경 발급된 전사확인서를 통해 ‘춘천지구 전투’에 참전한 사실이 확인됐다.


‘춘천지구 전투’는 6·25전쟁 개전일인 1950년 6월 25일부터 28일까지 춘천 옥산포, 소양강, 봉의산 일대에서 북한군의 남하를 지연시킨 구국의 전투였다.


고인은 전쟁 발발 3일 만인 1950년 6월 27일, 북한군의 남하를 치열하게 저지하다 18세 꽃다운 나이로 전사했다.


‘호국의 영웅 귀환 행사’는 유가족의 요청에 따라 오늘 대구 서구 달성토성마을에서 열렸다.


이번 행사는 유가족에게 고인의 참전 과정과 유해발굴 경과 등을 설명하고, 신원확인 통지서와 함께 호국영웅 귀환 패, 유품 등이 담긴 ‘호국의 얼 함(函)’을 전달하며 위로의 말씀을 전하는 순서로 진행됐다.


고인의 조카 강영호(69) 씨는 “아버지와 고모께서 평생 삼촌을 찾기 위해 노력하셨는데 이렇게 유해라도 찾게 돼서 다행”이라며 “병환으로 누워계신 고모께서 눈물만 흘리시는데 그 모습을 보고 가슴이 아팠다. 앞으로도 더 많은 6·25 전사자의 신원확인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안병욱기자 eric4004@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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