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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볼 일 없는 세상

등록일 2024-08-08 19:48 게재일 2024-08-09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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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하늘나라 천제(天帝)의 손녀인 직녀는 길쌈을 잘 하고 부지런하였다. 그런데 은하수 건너편의 ‘하고(河鼓)’라는 목동(견우)과 혼인을 하고는 신혼의 즐거움에 빠져 맡은 일을 게을리 하였다. 그것을 알고 크게 노한 천제는 그들을 은하수 양편으로 갈라놓고 일 년에 단 하루 칠월 칠일에만 만남을 허락하였다. 하지만 은하수를 건널 수 없어 만나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까마귀와 까치들이 몸으로 다리(오작교)를 만들어 견우와 직녀가 상봉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오랜 세월 전해져 내려오는 칠석날의 유래다.

이 설화의 발생 연대는 확실하지 않지만, 중국 후한(後漢) 때에 만들어진 효당산(孝堂山)의 석실 속에 있는 화상석(畵像石)의 삼족오도(三足烏圖)에 직녀성과 견우성이 발견되고, ‘시경 (詩經)’의 시구에도 은하수와 직녀성, 견우성이 나온다. 가장 오래된 기록은 진(晉)나라 종름의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에서 발견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고구려 광개토왕 18년에 축조된 대안 덕흥리(大安德興里) 고분 벽화에서 은하수를 가운데에 두고 소를 끌고 가는 견우와 개를 데리고 있는 직녀가 그려져 있는 것이 발견된다. 기록상으로는 ‘고려사’에 공민왕이 몽고인 왕후와 함께 안뜰에서 견우와 직녀에게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다.

선사시대 유적인 암각화에도 별자리가 새겨진 걸 보면, 하늘의 별들이 옛 사람들의 삶에 깊숙이 들어와 있었다는 걸 알 수 있다. 서양에서는 태양이 1년 동안 하늘을 지나는 경로를 12개의 별자리로 나눈 ‘황도 12궁’이 바빌로니아 천문학에서 기원하여 그리스와 로마를 거쳐 점성술의 요소가 되었다. 중국에서도 예부터 천체를 3원 28수로 구분하였고, 우리나라에서도 선사시대부터 천문현상에 관심을 가진 흔적이 여럿 남아있다. 삼국시대부터는 천문관측이 나라의 중요한 업무 중 하나였다는 것을 여러 시설과 기록으로 알 수 있다.

인공의 불빛이 불야성을 이루는 현대의 도시인들에게는 별을 쳐다볼 일이 별로 없다. 간혹 밤하늘을 쳐다보아도 희미해진 별빛이 가깝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그러니 옛 사람들이 늘 별을 쳐다보며 살았다는 걸 실감하지 못 한다. 어쩌다 산간오지 같은 데 여행을 가서 밤하늘을 쳐다보게 되면 하늘에 저렇게 별이 많고 밝다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물론 나이를 많이 먹은 사람들 중에는 마당에 멍석을 깔고 누워서 밤하늘의 별들을 헤아려 본 경험이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무한천공 열려있는 밤하늘의 무수한 별들에 대한 신비로움이 정서의 한 바탕이 되었을 것이다.

현대인들은 현란한 문명의 불빛을 선택한 대신 별빛을 잃어버렸다. 밤하늘의 별들을 쳐다보며 무한한 상상의 날개를 펼치고 신비와 경이로움에 젖는 대신 텔레비전이나 휴대폰을 들여다보다가 잠이 드는 게 현실이다. 문명이 가져다 준 온갖 쾌락과 안락이 그야 말로 ‘별 볼 일 없는 삶’은 아닌가. 밤하늘의 은하수를 건너 견우와 직녀가 만난다는 칠석날을 앞두고 문득 해보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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