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복에 즈음하여 바람의 결이 조금씩 달라지는 것 같다. 아침 저녁으로 느껴지는 공기는 차츰 선선함을 더하는 것 같고, 풀벌레 울음소리조차 한결 또렷하고 명징하게 들리고 있다. 하지만 한낮의 노염(老炎)은 아직도 맹렬해 쉽사리 수그러들지 않으면서 매미들의 열창(熱唱)을 부추기는 듯하다. 만고불변의 청산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지만, 햇살과 바람과 물소리 매미소리가 스며들면서 차츰 계절의 옷을 갈아 입을 채비를 하고 있는 듯하다.
하늘에선 해가 땅위에선 가슴이 타는 정열의 달 8월은, 그야말로 타는 듯한 목마름으로 무엇인가를 갈구하고 추구하며 깊어지기에 타오름달이라고도 한다. 푹푹 찌는 듯한 열기와 눈부신 햇살로 들판의 곡식을 익게 하고, 날씨만큼이나 뜨거운 가슴으로 집중하고 몰입하여 열정을 사르면서 목표를 향한 줄기찬 도움닫기를 하게 된다. 그렇게 가슴이 탈 정도로 뜨겁고 목마르게 갈망하고 혼신을 다하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동동거리는 것 같아 ‘동동팔월’이라고도 하는 걸까?
하지만 8월은 잠시 쉬어가는 달이다. 연중 가장 무덥고 뜨거우며 또한 습하고 꿉꿉하며 비도 많이 내리기에 몸도 마음도 지치지 않게 보전하며 보신(補身)으로 건강한 여름날을 나도록 알려주는 달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바다나 산으로 피서를 떠난다거나 휴양지에서 휴가를 보내기도 하고, 보양식으로 기력을 채우기도 하는 등 여름날의 다채로운 풍속도에 젖어들고 있다.
‘8월은/오르는 길을 멈추고 한번쯤/돌아가는 길을 생각하게 만드는/달이다.//피는 꽃이 지는 꽃을 만나듯/가는 파도가 오는 파도를 만나듯/인생이란 가는 것이 또한/오는 것/풀섶에 산나리, 초롱꽃이 한창인데/세상은 온통 초록으로 법석이는데//8월은/정상에 오르기 전 한번쯤/녹음에 지쳐 단풍이 드는/가을 산을 생각하는/달이다.’ - 오세영 ‘8월의 시’ 전문
사람도 기계도 계속 일만 할 순 없는 일이다. 쳇바퀴 같이 반복되는 일상의 틈바구니에서 바쁘고 숨차게 달려가기만 한다면 이내 지치고 기력이 쇠잔해질 것이다. 일터에서의 휴식이 중요하듯이 삶터에서는 쉼의 시간이 무엇보다도 필수불가결한 요소라 할 수 있다. 즉, 쉼이란 하던 일이나 동작, 집중을 멈추고 몸과 마음을 이완시켜 느슨하고 편안하게 몸을 두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또한 긴장되고 경직된 상태에서 벗어나 아무런 생각없이 멍때린다거나 곤한 잠을 자는 등의 방식으로 몸 속에 쌓인 피로를 풀고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일이다. 이와 같이 일 못지 않게 쉼이 중요함은, 여가시간이 있어야 어떤 일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기반이 생기게 된다. 쉼의 시간을 통해 몸과 마음이 재충전되기 때문이다.
당연하고도 자명한 휴식의 의미와 필요성을 인식하고는 있지만, 그러나 늘 일에 쫓기고 시간에 발목 잡힌 현대인들이 제 때 쉬거나 여유로운 휴가를 제대로 가질 수 없는 경우도 많다 보니 딜레마에 빠지는 것도 사실이다. 일과 삶의 균형 즉, 워라밸이 강조되고 삶의 질을 높이는 다양한 대안들이 제시되지만, 현실적으로 유연하게 적용하기엔 다소 한계가 있어 보인다. “잘 놀아야 잘 산다”는 말이 새삼스럽게 여겨지는 8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