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결이 확연히 달라졌다. 불과 몇 일 사이에 8월이 지나고 9월이 시작됐을 뿐인데, 계절의 시계는 기온이며 햇살이며 구름이며 하늘빛까지 모양을 달리하고 있다. 그에 맞춰 풀벌레들의 합창은 기다렸다는 듯이 맑고 또렷한 음조로 봇물 터지듯 가을을 맞이하고 있으니, 소리와 빛깔로 보여주는 계절의 세리머니가 가슴을 한결 넉넉하게 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치열했던 여름날과 선선해지는 가을날이 마주하는 자리에 문학을 사랑하고 영일만을 사랑하는 마음들이 한데 모여 소담스런 잔치를 벌였다. 풀벌레 소리가 반겨 맞고 간간이 파도소리가 추임새를 넣는 구룡포의 언덕배기 한 켠에서, 바다를 노래하고 시 얘기를 나누며 감칠맛나는 시낭송과 열띤 강연, 문인과 시민들의 스스럼없는 만남, 기념사진 즉석인화 이벤트, 축하 공연, 문화재 탐방 등으로 이어지는 어울림의 시간, 이른바 ‘영일만 시인학교’ 가 펼쳐진 것이다.
영일만 일대에서 1박2일로 열린 일련의 문학축제는 포항문인협회의 부설기관인 포항문예아카데미 총동창회가 주최·주관했다. 포항지역의 문학과 문화적인 가치를 재발견하고 함께 만들어가는 문화적인 삶을 공유, 확산시키기 위해 처음으로 열린 ‘영일만 시인학교’는 멀리 제주도 등지에서까지 달려오고 예상을 넘는 참가자, 알차고 다양한 프로그램 등으로 대성황을 이뤘다. 이러한 축제를 통해 바다라는 풍부한 어족자원과 다양한 해양문화를 지닌 포항지역의 역사적·지리적인 문학적 토대 위에 다채로운 해양문화를 접목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스마트폰을 활용한 간편하고 이색적인 디카시 콘텐츠를 창출하는데 많은 관심과 흥미를 유발시킴으로써 포항지역의 문학인구 저변확대와 문예발전에 일조할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학창시절에 한 번쯤은 꿈꿔 봤을 문학소녀·소년들이 가슴 한 켠에 묻어둔 문학의 불씨를 지피며 포항문예아카데미를 통해 문학수업을 받은 중년의 문학지망생들이 ‘영일만 시인학교’에서 다시 만난 것인지도 모른다. 이러한 계기와 수업과정은 포항문예아카데미에서 문학과 문예창작에 관심있는 시민들을 대상으로 시·시조·수필·소설 등 다양한 장르의 문학강좌를 운영하는 것에서 비롯된다. 1999년에 발족해 건전한 시민문화를 육성하고 바른 글쓰기와 독서 풍토를 조성하고자 문학을 사랑하고 지향하는 사람들을 교육, 배출해온 포항문예아카데미는 올해 26기생 50여 명에게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현재까지 졸업한 700여 명의 회원이 ‘포항문예아카데미 총동창회’를 결성, 유대감 조성으로 문학에 대한 사랑과 의지를 돈독히 하고 있으며, 다양한 문학행사를 기획, 개최하는 등 포항의 문학발전과 기반조성에 힘쓰고 있다.
배움에는 끝이 없고 ‘문학의 길’에는 왕도가 없다. 문학을 읽고 쓴다는 것은 인내와 지구력으로 나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할 수 있다. 외롭지만 그 길을 계속 가야 하는 이유는, 문학과 창작을 통해 삶을 변혁하는 작은 사유와 실천의 가능성을 제시해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열린 영일만 시인학교가 자신의 삶을 이롭게 하는 문학적인 감성계발과 새로운 변화의 계기로 삼아 나가며 지속되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