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재래시장 상인들 울상<br/>기업·기관·개인 지갑 닫으며<br/>택배·단체주문 예년 ‘반토막’
포항에서 수산물 판매업을 하고 있는 자영업자 김 모(58)씨는 매년 명절 때면 전복 200여 박스를 주문받아 왔다. 10여 년째 거의 변함없었던 일이어서 올 추석에도 그럴 것이라고 보고 어촌계와 예년의 양만큼 공급 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김 씨는 추석 택배 마감을 앞둔 현재 주문을 예년의 1/3도 받지 못했다. 김 씨는 급한 나머지 지인들에게 남은 전복 처리를 부탁하는 등 골머리를 앓고 있다.
그는 “뒤늦게 주변 수산물 취급 상인들에게 물어보니 대부분 한숨을 쉬고 있더라”면서 나만 그런 것이 아님을 알게 됐다고 전했다.
올 추석을 앞두고 선물 주문이 격감하는 등 추석경기가 실종됐다. 상인들은 판매액이 예년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면서 울상이다. 지속되는 경기 영향으로 기업이나 개인들이 지갑을 닫아버린 결과다.
씀씀이를 줄이는 것은 기업 쪽에서 더 두드러진다. 포항 철강공단의 한 기업은 지난 설까지만 해도 주변 전달 또는 직원들을 위해 10만 원 상당의 선물 150여개를 주문했었으나 올 추석엔 5만 원 짜리 70개만 주문했다. 이 회사 관계자는 “지금 철강경기가 꺾여 너무 어렵다”면서 이번에는 직원들에게만 흉내 내는 선에서 마무리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추석경기 하강은 재래시장에서도 확인된다. 포항의 대표적 상설시장인 죽도시장 상인들은 이구동성으로 경기를 실감한다고 밝혔다. 실제 4일과 5일 둘러 본 시장은 대목 전임을 고려하면 한산한 편이었다. 거의 평일 정도로, 장바구니를 들고 있는 주부들이 대다수였다.
문어를 팔고 있는 한 상인은 “이번에는 단체주문이 확 줄었다”면서 장사를 한 이후 가장 어렵다고 털어놨다. 제수용품과 과일가게 주인들도 “물건이 안 팔려 코로나 당시보다도 힘들다”며 당국에서 추석 필요 제품은 재래시장에서 구매하기 운동이라도 벌여줬으면 한다고 제안했다. 이런 가운데 전반적으로 물가마저 올라 향후 더욱 구매 발길을 옥죌 전망이다.
지난해 가격폭등 현상을 보였던 사과의 경우 올해는 같은 기간보다 30%가량 떨어졌으나 바나나, 파인애플은 가격이 두 배나 뛴 채 거래됐다.
물가 상승은 정부 조사에서도 나타난다. 통계청이 3일 발표한 ‘2024년 8월 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114.54(2020년=100)로 1년 전보다도 2% 상승했다. 호박과 배추가 10% 오르는 등 농축수산물은 2.4% 상승했다. 배는 무려 120.3%나 가격이 뛰었다.
밥상 물가와 관련 있는 신선식품지수도 1년 전 보다 3.2% 올랐다. 특히 생활물가지수는 지난해 8월 3.9% 오른 이후 지난 6월에만 2.8%를 기록했을 뿐, 1년 내내 줄곧 3~4% 대의 높은 인상폭을 기록하며 전체 소비자물가보다 높은 수준을 유지, 추석 대목 앞에도 선뜻 지갑을 열지 않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각계각층에서 재래시장 경기 부양을 위한 발길도 이어지고 있으나 여전히 역부족이다. 해양수산부와 경북도는 ‘온누리 상품권’ 환급행사를 실시했으며 포항시청 직원들과 포항시의원 등도 재래시장 장보기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이는 언 발에 오줌 누는 것에 불과하다. 명절을 앞두고 큰 손들인 기업과 기관들의 구매력이 반토막 나면서 반짝 경기를 기대했던 상인들은 속이 타들어 가고 있다.
죽도시장상인회 측은 “올해 같은 경기는 처음”이라면서 당국의 실질적인 지원과 도움이 더 필요하고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김채은 수습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