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 6·25 한국전쟁 칠곡 다부동 전투서<br/>‘지게 부대원’ 숨겨준 느티나무 노거수
요즘 단체 카톡방에 79주년 8·15 광복절에 관한 논쟁의 불이 타오르고 있다. 광복절에 기모노와 기미가요가 흐르는 오페라 ‘나비부인’을 방영한 방송국을 지탄하고 있다. 물론 오페라 장면 중의 하나에 불과하지만, 그 오랜 일본 강점기 시대를 끝내고 해방을 맞은 날을 기념하는 날에 방영되었으니 어떤 변명이라도 이해하기 어렵다. 독립기념관 관장 인사에 반발한 광복회장은 숭고한 8·15 광복절 국가 기념식에 불참하고 따로 기념행사를 개최하여 국민 분열 행위로 손가락질 받고 있다. 이 또한 어떤 명분을 내세우더라도 광복절 기념행사와는 무관한 일로써 수긍하기 어렵다. 조선 왕조시대 당파 싸움 같은 소모적인 정쟁 같아 또다시 주변국이 얕잡아 야욕의 불꽃을 피울까 우려스럽다.
군번·계급장 없는 무명의 지게 부대원
식량과 탄약 40~50kg씩 짊어지고
유학산 고지 오르며 부상병도 날라
아홉번 뺏고 뺏기는 55일간 전투서
2800여 명 주민들 전장서 목숨 잃어
키 18m·가슴둘레 7m·앉은 폭 18m
전투 승리 제 몫 다한 500살 노거수
주변 잡목 베어내고 철책 둘러 보존
환경 어지럽히는 외부인 출입 막아
노거수 옆 돌탑도 옛원형 그대로 남겨
장훈(張勳) 선수를 일본 야구인들은 영웅이라 부른다. 생애 홈런 504개와 안타 3085개를 치는 등 기록적인 선수 생활을 했다. 하지만 당시 프로선수 등용문인 고시엔 대회에는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한 번도 나가보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누구도 무시하지 못할 실력으로 1990년 일본 야구의 전당에 입성했다. 또한 전 일본 고등학교 야구대회 2024년 고시엔(甲子園) 대회에서 한국계 고등학교인 교토국제고(京都国際高)가 우승배를 거머쥐면서 한국어로 된 교가를 우승할 때마다 일곱 번이나 일본 전국에 울려 퍼졌다. 이처럼 교포들의 뭉친 하나 된 단결의 힘과 우수한 능력만이 반일을 뛰어넘어 극일로 나아감을 우리는 보았다.
광복절에 대한 논쟁은 광복절에 대한 추모와 국민의 자긍심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내부 분열의 씨앗이 될 뿐이다. 교포 장훈 선수와 교토국제고의 활약이 국민의 자긍심을 높이고 일본인들에게 우리 민족의 우월성을 보여주어 과거와 같은 불행한 역사가 되풀이하지 못하도록 하나의 쐐기를 박는 극일의 길이다. 우리는 일본의 침략에 국권이 빼앗겨 나라 잃은 슬픔을 경험해 보지 않아도 그 고통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할 수 있다. 러시아가 이웃 나라 우크라이나를 침략하여 일부의 영토를 빼앗아 점령하고 통치하고 있다. 세계 각 국가가 국제법상 불법이고 나쁜 짓이라고 하면서도 응징하지 못하고 있다. 유엔 평화군이 있지만, 무용지물인 것 같다. 약소국인 우크라이나는 각국의 도움을 요청하지만, 원하는 만큼의 지원을 받지는 못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국민은 억울하게 지옥 같은 고통의 삶에 시달리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런 침략자의 땅따먹기는 도대체 어디에서 비롯된 심보일까.
생명체가 지향하는 본성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 서식처를 확보하는 것이고. 둘째, 번식한 개체들이 살아가 위해 서식처를 넓히는 것이다. 이는 ‘동물의 왕국’이라는 다큐멘터리에서 많이 보아 왔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자손이 점점 늘면서 씨족에서 부족으로 그리고 부족이 모여 국가로 발전되었다. 대부분 민족 단위로 국가가 탄생했다. 주변국을 침략하여 삶의 터전을 넓히고 재물을 빼앗아 끝없는 욕망의 배를 불렸다. 이렇게 불변의 진리처럼 역사는 되풀이되고 있다. 평화 공존을 부르짖으면서도 극단적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밑바탕에는 생명체가 지향하는 유전자, DNA 본능에 따른 행위를 자행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를 보면 스스로 강해지는 것만이 나라를 지키고 평화 공존의 번영을 누릴 수 있다.
칠곡군 가산면 유학산 자락 학산리 1034번지 다부동 전투에서 ‘지게 부대원’을 숨겨준 느티나무 노거수를 만나러 갔다. 이곳 유학산은 6·25 한국 전쟁 때 낙동강을 사수하기 위하여 수많은 남과 북의 젊은 군인과 경찰, 주민들이 전사한 곳이다. 이곳에서 1950년 8월 1일부터 9월 24일까지 55일간 유학산 고지 점령 전투에서 아홉 번이나 빼앗고 뺏기는 싸움이 전개되었다. 이 과정에서 적군과 아군을 포함하여 2만7500여 명의 인적 손실 피해를 보았다. 당시 참전한 대대장은 전투의 절반은 지게 부대원이 수행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회고를 남기고 있다. 승리를 이끈 지게 부대원의 몸을 숨겨주고 휴식하게 장소 제공해 준 것은 바로 500살 먹은 느티나무 노거수라고 한다. 키 18m, 가슴둘레가 7m, 앉은 자리 폭이 18m나 되는 거인 느티나무 노거수가 지금도 계곡가에 주민들의 보호를 받으며 온전히 살아가고 있다. 비처럼 쏟아지는 폭탄과 총탄이 하늘을 덮고 땅이 진동할 때도 느티나무 노거수는 꼼짝하지 않고 현장을 지키며 지게 부대원들을 숨겨주고 전투를 목격한 역사의 산증인이다. 지난 역사를 나이테에 고스란히 기록하여 먼 훗날 우리의 후손에게 전해 줄 것이다. 참혹한 동족상잔의 전쟁이 가장 치열했던 이곳에 느티나무 노거수에 아내와 함께 머리 숙여 경외감을 표했다.
김만섭 학산리 마을 이장으로부터 6.25 전쟁 당시의 치열한 전투 상황과 ‘지게 부대원’의 활약상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들었다.
“다부동 전투에는 군인도 아닌 무명의 사람들이 있었다. ‘지게 부대원’이라고 하는 생소한 이름의 부대로 군번도 계급장도 없었다. 주민들로 군복을 받지 못해 평상복으로 식량과 탄약 등 40~50kg 짊어지고 가파른 유학산 고지를 올라가 전쟁물자를 날랐다. 그리고 내려올 때는 부상병을 업고 내려왔다. 오직 대한민국 국군과 나라를 지켜야 한다는 신념 하나로 죽음의 전장 속을 누비다 하루 평균 50여 명 지게 부대원이 전쟁 동안 모두 2800여 명이나 희생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주민들의 애국 애향심에 숙연한 마음이 들었다. 느티나무와 함께 있는 돌탑이 희생된 지게 부대원의 영혼을 추모하는 위령탑으로 다가왔다.
예전에는 마을 동제를 지내고 있었으나 지금은 중단되었다. 무속인들이 이곳을 찾아 제를 지낸 음식을 그대로 방치하는 등 주민들의 생활에 불편을 주고 있어 노거수에 근접하지 못하도록 철책을 둘러쳐 놓았다. 주민들은 주변에 경쟁하는 음나무를 베어내고 정자를 철거하는 등 환경 개선에 정성을 다하고 있었다. 느티나무 노거수와 함께 있는 돌탑을 없애 공간을 넓게 확보하려 했으나 마을 할머니와 어르신들이 극구 반대하여 옛 원형 그대로 잘 보존하고 있었다. 참으로 다행한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느티나무가 여성이라면 돌탑은 남성으로 상징되기 때문이다. 양과 음이 함께 마을 수호신으로서 역할을 더 잘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파란 하늘 아래 유학산과 마을, 느티나무 노거수 모두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풍성하고 평화로운 가을맞이를 하고 있다. 귀가하는 도중에 유학산 자락에 있는 다부동 6·25 전적기념관에 들러 희생자를 추모했다.
다부동 전적기념관은…
1950년 8월 l일에서 9월 24일까지 55일간 전개된 낙동강 방어선 전투의 최대 격전지인 칠곡군 가산면 유학산 혈투의 현장에 세워져 있다. 암벽을 오르며 9번에 걸친 백병전 끝에 결국 유학산 고지를 점령함으로써 전쟁의 최대 위기를 넘기고 인천상륙작전에 성공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전사한 희생 장병을 1994년 9월부터 1997년 1월까지 8차례에 걸쳐 육군 제50사단 장병들이 유학산 일대에서 발굴한 259기의 유해가 ‘구국용사의 묘’에 합장되어 있다. 구국용사충혼비, 구국경찰충혼비도 세워져 있다.
격전지였던 유학산 자락에 적진을 향해 진격하는 전차 형상으로 지어진 다부동전적기념관 상단에는 기념 조형물이, 기념관 주위로 국군이 사용했던 무기와 북한군 노획 무기가 함께 전시돼 있다. 백선엽 장군, 이승만, 트루먼 대통령의 동상도 함께 서있다.
/글·사진=장은재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