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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러시아’ 역사의 귀환

윤희정기자
등록일 2024-10-03 18:35 게재일 2024-10-04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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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br/><br/>세르히 플로히 지음<br/>글항아리 펴냄·인문

발발 2년을 훌쩍 넘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교량을 폭파해 보급선을 끊는가 하면, 드론을 띄워 군사시설을 요격하는 등 재래전과 첨단전이 복합적으로 펼쳐지면서 앞날은 안갯속의 혼전 양상으로 빠져들고 있다.

우크라이나 역사의 최고 권위자로 꼽히는 우크라이나계 미국인 역사학자인 세르히 플로히 하버드대 교수가 최근 펴낸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글항아리)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전반을 전문가적 식견으로 정리한 책이다.

저자는 책의 서두를 전면전의 전날인 2022년 2월 23일 빈에서 먹구름이 몰려오는 것을 예감하며 쓴다. 24일 아침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이 시작됐다는 뉴스를 접하고 그는 정장 차림부터 했다. 전쟁의 한가운데인 2022년 3월부터 2023년 2월 사이에 그는 이 책을 집필했다.

저자의 강점은 세 가지로 꼽을 수 있는데, 그 셋이 과거-현재-미래라는 관점에서 두드러진다. 첫째, 저자는 현재의 사태를 역사적으로 그려볼 수 있게 ‘과거’의 연대기를 서술한다.

러시아는 키이우 기원 신화에 뿌리를 두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를 ‘떨어질 수 없는 하나’로 여기는데, 이는 1462~1505년 이반 3세의 통치에서 기원한다. 러시아 작가 솔제니친의 사상 그리고 이를 이어받은 푸틴의 머릿속 지도도 모두 여기서 나왔다. 제국주의 권력을 향한 투쟁의 맥락에서 우크라이나의 정체성을 알려면 20세기에 우크라이나가 소비에트 연방에서 얼마나 빠르게 벗어났는지를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다. 둘째, 이 책은 ‘현재’ 전장에서 벌어지는 전투를 묘사한다. 저자의 주요 관심사는 푸틴의 핵 위협을 분석해 패턴을 찾는 것이다. 셋째, 국제관계를 사회과학적으로 고찰해 ‘미래’의 지정학적 재편을 그려낸다. 핵 정치와 군사 등 안보 정치 분야에서 뛰어난 저자이기에 신뢰할 만한 분석이다. 서방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결속력이 더 단단해졌고, 러시아는 중국 옆에 붙어 조연으로서 존재의 빛을 꺼뜨리고 있다. 한편 사태의 향방을 좌우할 가장 강력한 존재로 떠오르고 있는 곳은 중국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2022년 2월 24일에 시작되지 않았다. 이 점은 매우 중요하다. 2014년 크림반도 병합(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에서 최초로 이뤄진 영토 합병)과 돈바스 국지전에서 이미 싹은 텄고, 이후 8년간 하이브리드 전쟁이 지속됐다. 전쟁은 언제나 불확실성에 관한 것이므로 현재진행형인 이 전쟁을 정확히 예측할 순 없지만, 그럼에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현대 러시아 민주주의의 실패’와 ‘우크라이나 민주주의의 확립’이 부딪치며 일으킨 갈등이다. 그리고 저자는 이것을 우크라이나의 독립 전쟁이라고 부른다.

이 책의 전반부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역사를 짚는다. 부제가 ‘역사의 귀환’이듯 러시아가 수백 년 동안 구축해온 ‘하나의 러시아’에 대한 신화를 분석해야 그 제국주의적 집착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 최대의 지상전으로 이어진 원인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푸틴의 왜곡된 역사의식이 어떻게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이어졌는가를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푸틴은 “키이우는 러시아 도시의 어머니다. 우리는 서로가 없이는 살 수 없다”고 말했다).

책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확장이다. 푸틴이 전쟁을 일으킨 이유도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전면 침공 이후 젤렌스키 대통령 및 우크라이나 군대와 시민들의 대응에 대해 저자는 탁월한 전문가의 감각으로 이야기를 들려준다. 특히 군사행동과 외교 정책, 전쟁의 전략 전술을 오가는 해석 가운데서도 우크라이나인들이 보여준 인간적인 면모 또한 놓치지 않는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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