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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과 소설, 그리고 진실

등록일 2024-10-24 19:41 게재일 2024-10-25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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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사실(fact)이란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나 현재 진행 중인 일을 말한다. 객관적으로 검증이 가능한 현상이나 사건으로 논쟁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그것으로 항상 진실에 도달하는 것은 아니다. 편향된 저널리즘이 그렇듯, 부분적으로는 사실일지라도 순서나 빈도수, 취사선택 등에 따라서 얼마든지 왜곡이나 조작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소설은 허구(fiction)라고 한다. 사실이 아닌, 작가가 지어낸 이야기란 뜻이다. 사실을 소재로 한 소설이라도 캐릭터들의 구체적인 언행이나 사건의 디테일 등은 작가가 상상으로 꾸며낸 것이다. 그것은 사실이 가진 진실을 보다 절실하게 전달하기 위한 수단이다. 그래서 실체적 진실에 배치되는 이야기를 만들 수는 없는 것이다.

시인이자 소설가인 한강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해서 한국문학의 체면을 살렸다. 세계 10위권의 국력과 문화·전통을 자랑하는 대한민국이 여태껏 노벨문학상을 받지 못했다는 것은 적잖이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노벨문학상은 문학을 통해서 정치·사회·문화적 문제를 조명하거나 인간의 보편적 진실을 탐구한 점과 특정지역에 국한되지 않은 세계적인 공감을 얻거나 영향을 미친 성과 등을 감안해서 주어지는 상이라고 한다. 물론 우리나라도 노벨상 수상에 손색이 없는 문학인들을 여럿 꼽을 수 있다. 다만 그동안은 국력이 약한데다 언어적 한계 때문에 세계적인 공감을 얻을 통로가 제한되어 있었다.

한강이란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은 것은 기뻐할 일이지만, 그의 작품세계나 언행에 대해서는 유감을 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무엇보다 역사적인 사건을 보는 시각이 다분히 편향적이라는 것이다. 우리민족의 최대 비극은 일제의 식민지배에 이은 분단과 6·25전쟁이다. 동족상잔으로 수백만의 희생자를 낸 6·25전쟁은 김일성의 적화통일 야욕이 일으킨 참극이었다. 그것을 남의 대리전이라고 하는 것은 민족 살상의 원흉인 김일성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다.

제주도 4·3사건이나 광주 5·18사태를 소재로 한 소설도 이념적인 편향성이 두드러진다는 것이다. 작가가 목격을 했거나 검증이 되지 않은 유언비어성 소문들을 집중 부각해서 증오와 적개심을 극대화하는 식의 표현은 소설적 픽션을 넘어 사실과 진실의 왜곡이 아닐 수 없다. 제주도 4·3사건은 공산주의자들의 반정부 폭동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참사였고, 광주 5·18사태도 무장시위대와 진압군의 대치에서 벌어진 비극이었지 양민을 무차별 살육했다는 건 진실이 아니다.

노벨상 수상 작가의 작품으로 세계에 널리 알려지는 것은 좋지만, 그 때문에 공산주의자들의 침략으로부터 반쪽이나마 나라를 지켜내고, 한강의 기적을 이뤄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대한민국이 걸핏하면 양민이나 학살하는 야만적인 나라로 인식될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도 기아와 폭정에 허덕이고 죽어가는 북한 주민들이야말로 민족 최대 비극의 현주소다. 올바른 역사관과 인간애를 가진 작가라면 무엇보다 우선 그것에 남다른 관심과 아픔을 가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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