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은 추워야 제맛이다. 북풍한설에 개울과 무논은 하얗게 얼어붙고 한낮에도 처마 끝에 고드름이 자라며 솔숲에 이는 바람소리는 가슴 속까지 파고들며 오싹 시리게 했다. 물기 묻은 손으로 문고리를 잡으면 물기가 순간적으로 얼면서 쇠고리가 손에 쩍쩍 달라붙기도 하는 등 혹독한 추위가 있어야 겨울 맛이 나는 듯했다. 변변찮은 방한장구도 없이 구멍 난 양말에 벙어리장갑을 끼고 언 손을 호호 불어가며 하루 종일 무논의 얼음판에서 노는 것이 뭐가 그리 신나고 즐거웠던지, 지금 되새겨보면 동화 같은 겨울풍경이 아닐 수 없다.
모든 것이 어렵고 빈한하던 시절, 겨울철의 강추위가 찾아오면 먹고 입는 것조차 모자라고 허술할 수밖에 없었다. 날씨가 아무리 추워도 또래들과 곧잘 어울려 얼음을 지치거나 자치기, 팽이치기를 하다가 배고파지면 간식으로 먹는 것이 호주머니에 조금씩 넣어 온 땅콩이나 생고구마가 전부였다. 그마저도 넉넉지 않아 친구들에게 좀 얻어먹거나 즉석에서 닭싸움이나 구슬치기 내기판(?)을 벌여 어쩌다가 이기게 되면 쾌재를 부르며 맛있게 배를 채우곤 했었다. 그러다가 심심해지면 언덕 위에 올라 매운 바람 속에 연날리기를 즐기며 하늘 높이 날아오르는 가오리연에 작은 꿈을 실어 보내기도 했었다.
맹추위에 놀이만 즐기는 것이 아니었다. 보일러가 없던 때라 동절기가 되면 땔감을 마련하는 것이 일상의 중요한 일이었다. 소달구지를 끌고 나무하러 가시는 아버지를 따라 나서거나, 또래들과 함께 지게를 지고 마을 주변의 산비탈로 나무하러 숱하게 다니곤 했었다. 키 높이 두배 이상의 검불을 지게에 수북하게 지고 오거나 베어낸 나무 밑동 장작을 한가득 바지게에 지고 오면, 어머니께선 애썼다며 으레 고방의 단지에서 살얼음이 낀 식혜를 한 대접 퍼주시곤 했었는데, 달금 시원하고 쌉싸래한 그 맛은 세상 어디에도 견줄 수가 없을 듯하다.
그렇게 산과 들에서 해온 나무로 쇠죽을 끓이거나 군불을 지핀 온돌방에 밤이면 둘러 모여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거나 윷놀이를 하면서 기나긴 겨울밤의 무료함을 달래기도 했었다. 트랜지스터라디오에서 울리는 ‘전설 따라 삼천리’를 함께 듣거나 등골이 오싹해지는 귀신 이야기며, 어느 마을의 처녀총각 연애담을 시시덕거리며 듣다가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깔깔거리며 짓궂은 장난질을 해대기도 했었다. 그렇게 설설 끓는 온돌방에서 정담과 재미로 한겨울을 보내며 차츰 성장했던 것 같다.
‘문풍지엔 바람 쌩쌩 불고 문고리는 쩍쩍 얼고/아궁이엔 지긋한 장작불/등이 뜨거워 자반처럼 이리저리 몸을 뒤집으며/우리는 노릇노릇 토실토실 익어갔다/그런 온돌방에서 여물게 자란 아이들은/어느 먼 날 장마처럼 젖은 생을 만나도/아침 나팔꽃처럼 금세 활짝 피어나곤 한다’ - 조향미 ‘온돌방’ 중
추위에 떨며 손발을 동동거리면서도 겨울놀이를 즐기던 동네 꼬마들은 혹독한 추위에 맞서며 또래들과 어울려 끈기를 배우고 인내심을 키워왔던 것 같다. 그렇게 찬바람과 혹한 속에 내성(耐性)을 길러 풍파의 세상을 맵차게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