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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연극, 그 긴 여정과 도전의 기록

등록일 2025-03-04 20:12 게재일 2025-03-05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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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인 단상 (文化人 斷想)
최일영극단 아라떼(아라떼소극장) 대표
최일영극단 아라떼(아라떼소극장) 대표

20대 중반, 우연히 접한 연극 한 편이 내 인생의 방향을 바꾸었다. 직장 생활 속에서 연극을 향한 창작 활동을 시작한 지 벌써 35년이 넘었다. 그 긴 시간 동안 직업과 취미의 균형을 잡으며 이어온 연극에 대한 열정은 결코 쉽게 얻어진 것이 아니다.

초창기에는 연극 포스터를 붙이기 위해 매장을 찾을 때마다 이방인 취급을 받았다.

연습이나 무대 준비로 직장 회식에 불참했을 때는 동료들의 핀잔과 따돌림을 감내해야 했다. 기성세대 중에 롤 모델을 찾기 어려웠던 당시, 직장과 연극 사이에서 마음고생을 하며 직장인으로서의 시간과 연극인의 시간을 철저히 분리해 관리할 수밖에 없었다.

산업화와 민주화의 격변기를 지나 21세기에 들어서며 문화예술이 화두가 되었다. 포항 지역에서도 학교의 재량 수업과 특별활동에 연극이 편성되었고, 정부의 문화예술교육사 자격 제도를 통해 예술강사가 배출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포항의 연극 인프라는 조금씩 나아졌고, 극단 수도 10여 개로 늘어나며 다양한 색채의 작품들이 무대에 오르게 되었다.

어린이 인형극을 비롯한 다양한 공연이 월 1회 이상 열리면서 지역 문화의 활기를 불어넣었다.

그 당시 소극장을 운영하던 극단들도 하나둘씩 늘어났고, 이는 지역 연극계의 성장 가능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신호였다.

2009년에는 직장 동료들과 함께 극단 ‘아라떼’를 창단하게 되면서 활동에 새로운 활로를 모색했다.

초기에는 기존 극단과 협업을 통해 작은 공연을 제작했지만, 점차 자체 인력을 키우며 무대를 올리게 되었다.

2014년에는 ‘아라떼 소극장’을 개관하며 나만의 색채를 입히기 시작했다.

매년 한두 편의 작품을 꾸준히 무대에 올렸고, 원로 희곡작가 노경식 선생님, 연출가 김성노 선생님, 코미디언 전유성 선생님 등의 방문은 단원들에게 큰 힘이 되었다.

코로나 시기에도 빈 무대를 바라볼 수만은 없었다.

단원들과 함께 지역을 탐방하며 창작 활동을 이어갔고, 그 결과물로 탄생한 작품이 바로 창작극 ‘실루엣’이다.

포항 연극계는 한때 부흥기를 맞이했지만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지 못한 극단들이 문을 닫기 시작했다. 현재는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는 극단조차 공연 소식을 전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연극은 무대라는 특수성을 기반으로 하는 예술이다. 배우는 관객과의 만남 속에서 성장하고, 최소 보름 이상의 공연이 이루어져야 진정한 배우술을 습득할 수 있다.

그러나 경제적 한계로 인해 무대가 한정적이라면 이는 단발성에 그칠 수밖에 없다.

향토연극을 보존하고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생업과 취미 활동 간의 균형 유지가 필수적이다. 경제적 부담을 덜기 위해 공공기관이나 지역사회 차원의 지원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시민들이 향토연극에 관심을 가지고 작은 무대라도 찾아주는 것이 큰 힘이 될 것이다.

긴 시간 동안 이어온 나의 연극 여정처럼, 포항의 향토연극이 다시금 활기를 되찾기를 바란다.

연극은 단순한 공연을 넘어 지역의 문화적 정체성을 담아내는 소중한 예술이다. 그 가치를 지키고 발전시키기 위해 앞으로도 끊임없이 노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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