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전 대통령이 헌법재판소 헌법재판관 8명 전원일치 의견으로 파면됐다.
4일 헌재 재판관들은 윤 전 대통령 탄핵 소추에 대해 8명 전원일치 의견으로 인용했다. 이날 문형배 헌재소장 권한대행은 국회가 소추한 탄핵 사유를 조목조목 짚으며 재판관들의 판단을 밝혔고 11시 22분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고 주문했다. 낭독했다. 이에 따라 주문 낭독 즉시 윤 전 대통령은 직을 잃었다. 12·3 비상계엄을 선포한 지 122일만이며 지난해 12월 14일 탄핵소추안이 접수된 때로부터 111일 만이다.
헌재는 국회가 소추한 5개 탄핵 사유를 모두 인정했다.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헌재는 “헌법과 계엄법에 따르면 비상계엄의 실체적 요건 중 하나는 ‘전시·사변 및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라며 “(계엄 선포 이유로 주장한) 국회의 탄핵소추, 입법, 예산안 심의 등 권한 행사가 계엄 선포 당시 중대한 위기 상황을 현실적으로 발생시켰다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윤 전 대통령 측이 주장하는 사정을 모두 고려하더라도 해당 판단을 객관적으로 정당화할 수 있을 정도의 위기 상황이 계엄 선포 당시 존재했다고 볼 수 없다고도 했다.
헌재는 윤 전 대통령이 국무회의 심의·부서 등 비상계엄 선포의 절차적인 요건도 위반했다고 봤다. 헌재는 “피청구인이 (국무위원들에게) 계엄의 구체적인 내용을 설명하지 않았고, 다른 구성원들에게 의견을 진술할 기회를 부여하지 않은 점 등을 고려하면 계엄 선포에 관한 심의가 이뤄졌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국무총리와 국무위원이 선포문에 부서하지 않았는데도 계엄을 선포했고, 그 시행 일시, 시행 지역 및 계엄 사령관을 공고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또 윤 전 대통령이 군경을 동원, 국회를 봉쇄하려 한 정황도 헌법과 법률 위반으로 판단했다. 헌재는 “피청구인은 국방부 장관에게 국회에 군대를 투입할 것을 지시했다”면서 “(곽종근 전) 육군특수전사령관 등에게 ‘의결 정족수가 채워지지 않은 것 같으니, 문을 부수고 들어가서 안에 있는 인원들을 끄집어내라’는 등의 지시를 했다”고 윤 전 대통령 측 주장을 정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피청구인이 군경을 투입해 국회의원의 국회 출입을 통제하는 한편 이들을 끌어내라고 지시함으로써 국회의 권한 행사를 방해했다”며 “국회에 계엄 해제 요구권을 부여한 헌법 조항을 위반했고, 국회의원의 심의·표결권, 불체포특권을 침해했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헌재는 ‘포고령 1호’에 담긴 국회와 정당의 정치 활동 금지 등 내용을 지적했고, 중앙선관위원회에 대한 압수수색, 법조인에 대한 위치 확인 시도 등도 모두 위헌·위법이라고 인정했다.
이같은 판단을 통해 헌재는 윤 전 대통령이 헌법 수호 책무를 저버렸고, 국민 신임도 배반했다고 밝혔다. 헌재는 윤 전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하고 국회에 군경을 투입한 행위 등이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것”이라고 지적했고 “헌법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반 행위”로 규정했다.
또 국민주권주의 및 민주주의를 훼손하려고도 했다고 질책했다. 헌재는 “피청구인은 국회와의 대립 상황을 타개할 목적으로 계엄을 선포한 후 군경을 투입시켜 국회의 헌법상 권한 행사를 방해함으로써 국민주권주의 및 민주주의를 부정했다”며 “병력을 투입시켜 중앙선관위를 압수․수색하도록 하는 등 헌법이 정한 통치구조를 무시하였으며, 포고령을 발령함으로써 국민의 기본권을 광범위하게 침해했다”고 설명했다.
법치국가 원리와 민주국가 원리의 기본 원칙들을 위반한 것이라 지적한 헌재는 “그 자체로 헌법질서를 침해하고 민주공화정의 안정성에 심각한 위해를 끼친 것”이라고 밝혔다.
그간 윤 전 대통령 측은 “2시간짜리 내란이 있느냐”라며 경고용·평화적 계엄이라고 주장해왔다. 헌재는 이 역시 받아들이지 않았다. 국회가 신속하게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시민들의 저항과 군경의 소극적인 임무 수행 덕분이었고, 때문에 이것이 윤 전 대통령의 법 위반에 대한 중대성 판단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봤다.
헌재는 사회적 혼란을 일으킨 점을 지적하면서 “피청구인은 헌법과 법률을 위반해 계엄을 선포함으로써 국가긴급권 남용의 역사를 재현하여 국민을 충격에 빠트리고, 사회·경제·정치·외교 전 분야에 혼란을 야기했다”며 “국민 모두의 대통령으로서 자신을 지지하는 국민을 초월하여 사회공동체를 통합시켜야 할 책무를 위반했다”고 했다.
이어 “군경을 동원해 국회 등 헌법기관의 권한을 훼손하고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침해함으로써 헌법 수호의 책무를 저버리고 민주공화국의 주권자인 대한국민의 신임을 중대하게 배반했다”며 “피청구인의 법 위반행위가 헌법질서에 미친 부정적 영향과 파급효과가 중대하므로, 피청구인을 파면함으로써 얻는 헌법 수호의 이익이 대통령 파면에 따르는 국가적 손실을 압도할 정도로 크다고 인정된다”고 질책했다.
다만 헌재는 윤 전 대통령이 계엄선포로 든 야당 전횡에 대해 질책하며 ”협치했어야 했다”고 민주당도 비판했다.
헌재는 “피청구인이 취임한 이래 야당이 주도하고 이례적으로 많은 탄핵소추로 인해 여러 고위공직자의 권한 행사가 탄핵 심판 중 정지됐다”며 “피청구인이 수립한 주요 정책들은 야당의 반대로 시행될 수 없었고, 야당은 정부가 반대하는 법률안들을 일방적으로 통과시켜 피청구인의 재의 요구와 국회의 법률안 의결이 반복됐다”고 민주당의 권력 남용 문제를 꼬집었다.
그러면서 “피청구인은 야당의 전횡으로 국정이 마비되고 국익이 현저히 저해되어 가고 있다고 인식해 이를 어떻게든 타개하여야만 한다는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게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며 “피청구인이 국회의 권한 행사가 권력 남용이라거나 국정마비를 초래하는 행위라고 판단한 것은 정치적으로 존중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야당의 권력 남용이 윤 전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에 타당한 근거가 되는 사유는 될 수 없다는 것이 헌재 판단이다. 헌재는 “피청구인과 국회 사이에 발생한 대립은 일방의 책임에 속한다고 보기 어렵고, 이는 민주주의 원리에 따라 해소되어야 할 정치의 문제”라며 “이에 관한 정치적 견해의 표명이나 공적 의사결정은 헌법상 보장되는 민주주의와 조화될 수 있는 범위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국회는 소수 의견을 존중하고 정부와의 관계에서 관용과 자제를 전제로 대화와 타협을 통하여 결론을 도출하도록 노력했어야 한다. 피청구인 역시 국민의 대표인 국회를 협치의 대상으로 존중했어야 한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청구인은 국회를 배제의 대상으로 삼았는데 이는 민주정치의 전제를 허무는 것으로 민주주의와 조화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질책했다.
한편 헌재 탄핵심판 과정 내내 논란이 됐던 국회의 내란죄 철회와 관련해 헌재는 절차적 문제가 없다고 언급했다. 추후 있을 분열과 논란을 불식시키기 위한 조처로 보인다. 탄핵 심판 과정에서 국회 측이 형법상 내란죄 위반 주장을 소추사유에서 뺀 것과 관련해 헌재는 “기본적 사실관계는 동일하게 유지하면서 적용법조문을 철회·변경하는 것은 특별한 절차를 거치지 않더라도 허용된다”고 설명했다.
‘소추사유에 내란죄 위반이 없었으면 의결정족수를 충족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윤 전 대통령 측 주장에 대해서도 “가정적 주장에 불과하고 객관적으로 뒷받침할 근거가 없다”며 인정하지 않았다.
/박형남기자 7122love@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