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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의 출판왕, 츠타야 쥬자부로

이경재(숭실대 교수)
등록일 2025-04-29 19:00 게재일 2025-04-30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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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타야 쥬자부로 관련 행사 안내문과 서적.

지난번에도 말씀드렸듯이, 일본 만화는 전세계에서 1년 동안 대략 10억 부가 출판될 정도로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만화 이외에도 일본은 ‘출판 대국’이자 ‘독서 대국’으로 불릴 만큼 책으로 유명한데요. 지하철 안의 모든 이가 책을 읽고 있다는 이야기는 전설이 되었지만, 여전히 출판 문화가 발달하고 독서 인구가 많은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책과 친한 일본 문화를 낳는데 커다란 역할을 한 이로 ‘에도 시대(1603-1867) 출판왕’ 츠타야 쥬자부로(蔦屋 重三郎, 1750-1797)를 빼놓을 수는 없습니다. 

 

NHK에서 2025년 대하역사드라마로 츠타야 쥬자부로의 일생을 다룬 ‘べらぼう-蔦重栄華乃夢噺(베라보-츠타쥬의 파란만장한 꿈 이야기)’를 방영하면서, 작년 연말부터 도쿄 시내 곳곳에는 츠타야 쥬자부로 관련 문화 행사가 펼쳐지고 있습니다. 츠타야 쥬자부로와 관련된 우키요에나 주변 인물들에 대한 행사가 열리고, 일본을 대표하는 출판사들이 빠짐없이 츠타야 쥬자부로에 대한 책을 출판해 놓고 있는 겁니다. 심지어는 자료를 찾으러 간 일본국회도서관에서도 츠타야 쥬자부로에 대한 전시를 하고 있을 정도였는데요. 4월 22일부터 6월 15일에는 일본 최대의 박물관인 도쿄국립박물관에서도 츠타야 쥬자부로(줄여서 츠타쥬)가 유통시켰던 우키요에를 대거 전시하는 특별전이 열리고 있습니다. 

 

에도 막부의 유일한 공인 유곽인 요시와라에서 태어나 자란 츠타쥬는 일곱 살에 부모의 이혼을 경험하고, 아무런 배경도, 재산도 없이 오직 타고난 독창성과 감각만으로 ‘에도의 출판왕’이 된 인물입니다. 에도 막부에 밉보여서 재산의 절반을 압수당하는 처분을 받으면서도, 자신이 원하고 꿈꾼 문화 콘텐츠를 끊임없이 만들어간 츠타쥬는 그야말로 시대를 앞서간 ‘베라보’였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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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와라 터에 복원된 츠타야 쥬자부로의 서점 고쇼도((耕書堂).

츠타쥬가 활약한 18세기 후반에는 목판인쇄로 책들이 출판되었으며, 그 책들에는 대부분 그림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하나의 콘텐츠가 탄생하기 위해서는 작가, 화가, 조각가, 판화가가 협업할 수밖에 없었는데요. 이를 전체적으로 기획하고 제작하여 출판 및 판매하는 역할이 필요했으며, 이러한 역할을 가장 훌륭하게 수행한 이가 바로 츠타쥬입니다. 그가 활동하던 18세기 말 에도(江戸, 도쿄의 옛날 이름)는 인구 백만의 세계 최대 도시였습니다. 우에노 국립박물관 전시 포스터에는 “잠재고객은 에도사람 100만인(潜在顧客は、江戸の衆、百万人.”이라는 문구가 크게 새겨져 있는데요. 츠타쥬는 날카로운 감각과 창의적 안목으로 대중들의 욕망을 읽어내고, 그에 바탕해 수많은 문화 콘텐츠들을 만들어 냈던 것입니다. 

 

츠타쥬는 1773년에 요시와라 정문 앞에 고쇼도(耕書堂)라는 서점(本屋)을 내고 처음에는 책 대여를 했지만, 곧 본격적인 출판에 나섭니다. 그는 거의 모든 문화 콘텐츠를 만들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요시와라 안내서, 쿄카에혼(狂歌絵本), 기뵤시(黄表紙), 우키요에(浮世絵) 등을 꼽을 수 있습니다. 그는 대중이 읽고 싶은 책과 보고 싶은 그림을 대중보다 먼저 알아채고서는 이를 콘텐츠로 구체화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츠타쥬는 최고의 연출자처럼 당대 최고의 재능들을 조합하여 멋진 무대를 만들어 냈던 것인데요. 츠타쥬의 손발이 되었던 천재들로는 산토 교덴, 기타가와 우타마로, 가쓰시카 호쿠사이, 도슈사이 샤라쿠, 교쿠테이 바킨 등을 들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츠타야는 단순히 책만 편집하여 만든 것이 아니라, 재능을 편집하여 최고의 콘텐츠와 시대를 창조해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주목할 것은, 츠타쥬가 새로운 예술가들을 발굴하여 그들의 창조적 재능을 장려하고, 그들의 후원자 및 멘토 역할을 하였다는 점입니다. 미인화의 대가 기타가와 우타마로, 일본 역사에 남는 인기작인 ‘南総里見八犬伝’을 남긴 교쿠테이 바킨, 골계본이라는 장르를 낳은 ‘五十三次膝栗毛’의 짓펜샤 잇쿠처럼 무명의 재능을 발견하여 일본 문화의 상징으로 우뚝 일으켜 세우기도 했습니다. 츠타쥬는 그들에게 의식주를 보장해주었고, 창작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감사의 표시로 선물과 접대 정도가 전부였던 시대에, 원고료를 지불한 것도 츠타쥬가 처음이라고 합니다. 수많은 명작은 물론이고 새로운 장르와 미디어를 낳은 츠타쥬는 새로운 유행을 창출하고 시대와 문화를 선도해나갔습니다. 이러한 츠타쥬의 활약이 오늘날 세계에서 인정받는 일본 망가나 출판의 기본적인 밑거름이 되었음은 분명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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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재(숭실대 교수) 

츠타야 쥬자부로는 채 오십이 되지 않은 1797년 5월 6일 저녁에 파란만장한 삶을 마감합니다. 한 인간의 본질은 삶의 마지막 순간이나 유언에 압축되어 나타나는 경우가 많은데요. 츠타쥬는 연극이 끝났음을 알리는 박자목(拍子木) 소리를 기다리며 죽었다고 합니다. 이 대목에서 그가 자신의 인생을 하나의 연기로 보며 살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니체는 ‘비극의 탄생’에서 자신을 활발하게 창조하고 또 창조하는 사람들은 진정으로 자유로운 정신의 소유자이며, 자기 삶을 대상으로 한 예술가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츠타쥬는 수많은 명작과 예술가들을 낳았지만, 그가 창조한 최고의 콘텐츠는 아마도 츠타야 쥬자부로 자기 자신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글·사진=이경재(숭실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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