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시대의 제방 조성, 수리 사실 등이 기록돼 신라의 정치 및 사회·경제사 이해에 귀중한 역사 유물
경북 전역에 산재한 많은 문화유산 가운데 ‘영천 청제비’가 국보로 지정 예고됐다.
2일 국가유산청이 신라의 자연재해에 대한 대처와 관리 과정을 보여주는 ‘영천 청제비’를 국가지정문화유산 국보로 지정 예고했다.
‘영천 청제비’는 신라시대부터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는 ‘청못’에 세워진 두 개의 비석을 말한다. 1기는 청제건립비<앞면>·청제수리비<뒷면>로 청제의 건립과 수리를 기록하고 있고, 또 1기는 청제중립비다. 2기의 비석은 이 지역의 수리(물의 관리)와 관련한 제방의 조영과 수리를 비롯해 자연재해를 극복하는 당시의 토목 기술과 국가의 관리체계를 보여주는 사회·경제사적 사료로서도 가치가 높은 문화유산이다. 비석은 일반적인 받침돌(碑座)과 덮개돌(蓋石)이 없고 자연석에 내용(碑文)을 새긴것이 특징이다.
청제건립비와 청제수리비는 모양을 가다듬은 형태가 아닌 자연스러운 형태로 돌의 앞면에는 청제 건립내용을 담았고, 뒷면에는 청제 수리의 비문을 각각 새겼다. 위쪽이 얇고 아래쪽이 두꺼운 형태로, 두 면의 비문 대부분이 판독할 수 있을 정도로 양호하게 보존되고 있는 상태다.
청제건립비(앞면)는 536년(법흥왕 23년) 2월 8일, ▨탁곡(▨乇谷)에 처음 큰 제방을 준공한 사실과 공사 규모, 동원인원, 공사 책임자, 지방민 관리자에 대한 기록을 담고 있다. 서체는 예스럽고 비정형적이며 자유분방한 전형적인 6세기 신라 서풍을 띠고 있다.
청제수리비(뒷면)는 798년(원성왕 14년) 4월 13일 제방 수리 공사를 완료했다는 사실과 제방의 파손·수리 경과 보고 과정, 수리 규모, 공사 기간, 공사 책임자, 동원 인원 등의 내용을 담고 있으며 청제건립비와 260여 년의 세월이 지난 시기지만 비문은 신라 고유 서풍을 계승하고 있다.
자연석 하나에 앞뒤로 나뉘어 새겨진 청제건립·수리비는 신라 역사에서 홍수와 가뭄이 가장 빈번했던 6세기와 8세기 후반~9세기에 신라가 자연재해 극복을 위해 국가적 차원에서 추진했던 토목공사의 단면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문화유산으로 시사점이 크다.
그 옆의 청제중립비(사진 원내)는 1688년(조선 숙종 14년) 묻혀 있던 청제건립·수리비를 다시 일으켜 세운 사실을 담고 있다. 무엇보다도 청제중립비는 900여 년 뒤에 건립된 비석인데도 역시 조선시대의 일반 서체가 아닌 신라의 예스러운 서풍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도 특이하다. 올바른 역사적 가치를 보존하겠다는 당시 건립자의 뜻이 반영되었을지도 모른다.
‘영천 청제비’는 청제의 건립 및 수리 과정, 왕실(국왕) 소유의 제방 관리와 보고 체계 등을 담고 있어, 신라의 정치 및 사회·경제적 내용을 연구 확인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다. 게다가, 한 비석에 시기를 달리하는 비문이 각각 기록된 희귀한 사례와 함께 조성 이래 지금까지 원위치에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는 점 등도 역사적·학술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문화유산국 문화유산정책과 이연재 연구관은 “국가유산청은 이번에 지정 예고한 ‘영천 청제비’에 대해 30일간의 예고를 통해 각계로부터 의견을 수렴·검토한 후, 문화유산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국보로 지정할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조규남기자 nam8319@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