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냥꾼이라면 누구나 호랑이와 멧돼지 두 마리 모두를 잡아 의기양양 산을 내려오길 바란다. 그러나, 쉬운 일이 아니다.
대부분의 시인들은 자신의 시 안에서 ‘서정’과 ‘서사’ 모두가 조화롭게 표현되기를 꿈꾼다. 하지만, 그건 사냥꾼의 ‘호랑이 잡기’보다 더 어렵다. 신(神)은 두 가지 재주를 한 인간에게 전부 선물하는 경우가 드문 법이므로.
2018년 국제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늦깎이로 문단에 나온 김형로(66)의 세 번째 시집 ‘숨비기 그늘’(삶창시선)을 펼쳐 본다.
시인에게 ‘서정’이란 자신의 개인적 감정을 객관화시켜 보편의 정서로 만들어내는 작업이 아닐까? 만약 그렇다고 인정한다면 ‘숨비기 그늘’의 첫머리에 실린 다음의 시를 읽어보자.
“哭을 꽃으로 읽은 적 있다/한참을 그렇게 읽었다/뜻이 커졌다 오독이 은유가 되었다//그 후로 꽃을 보면 우는 것 같았다//꽃을 哭이라 한들/哭을 꽃이라 한들//꽃을 哭으로 읽으면/꽃은 세상을 위한 곡쟁이가 되고//哭을 꽃으로 읽으면/우는 세상이 환한 서천꽃밭 같다….”
-위의 책 중 ‘우는 꽃’ 부분
죽음과 절멸 앞에서 흔히 하는 哭(곡)과 희망과 새로움을 은유하는 꽃 사이에는 아주 먼 간극이 있는 듯하다. 그러나, 천만에. 김형로는 시를 통해 울음과 희망은 결국 하나라는 시적 진실을 포획해낸다. 재론할 필요 없는 빼어난 서정이다.
김형로의 ‘서사’는 시집의 2부와 3부에서 발현되고 있다. 제주 4·3과 1980년 광주 5·18에 문학적 촉수를 가져다댄 시인은 목적을 가진 이야기를 재료로 독자를 예술적 감흥에 이르게 한다. 예컨대 이런 대목이다.
“강이 흐르기 시작했다/높은 곳 아닌/낮은 곳, 가장 어두운 곳에서/어머니의 강이 흘렀다/광주를 광주답게 만든 것은 어머니들이었다….”
-위의 책 중 ‘내 새끼를 왜 이러냐고’ 부분
5·18광주항쟁의 비극을 어머니의 통곡과 쏟아진 눈물이 만들어낸 강으로 형상화한 김형로는 그 비극의 극복 또한 어머니들이 해낼 것임을 낙관적으로 노래하고 있다. 서사시가 가진 드라마적 요소를 그림처럼 보여주는 것이다. 이 역시 작지 않은 성취다.
한 권의 시집 속에 서정과 서사를 불화 없이 담아낸 ‘숨비기 그늘’을 접한 선배 시인 이승철은 “역사의 그늘에 감추어진 사람들의 신음 소리를 새롭게 발굴해냄으로써 이즈음 한국시가 잃어버린 서사를 복원하고 있다”는 격려의 말을 전했다.
경남 창원에서 태어난 김형로는 부산일보와 경향신문에서 기자로 일했다. 현재는 한국작가회의, 부산작가회의, 민족문학연구회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이번 시집에 앞서 ‘미륵을 묻다’ ‘백 년쯤 홀로 눈에 묻혀도 좋고’라는 시집을 냈고, 2021년엔 제주4·3평화문학상을 받았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