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동심원

경북매일
등록일 2025-05-18 18:34 게재일 2025-05-19 17면
스크랩버튼
Second alt text
전영숙 시조시인

J는 베트남 어머니를 둔 다문화 가정의 학생이다.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어려운 환경 탓에 베트남에서 엄마와 십여 년을 살다가 13살이 되어서야 한국에 왔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언어였다. 열심히 한국어를 배웠지만 원활한 소통이 어려웠고 쓰기는 더욱 힘든 문제였다. 학교를 다녀야만 했기에 자신의 나이에 맞는 학년보다 두 학년을 낮춰서 들어갔다. 수업 시간에 선생님 말씀을 다 알아들을 수가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한국어가 잘 이해되지 않으니 모든 과목에 문제가 생겼다. 그 학습을 도와주기 위해 처음 만나게 되었다. 낮은 자존감도 큰 문제였다.

문득 중3 때의 일이 생각났다. 도덕 선생님이 다음 시간에 앞에 나와 발표를 시킬 것이라고 하면서 숙제를 내주셨다. 그 당시 난 굉장히 소심하고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학생이었다. 앞에 나가서 무엇을 하는 것이 겁이 났고 자신감도 없었다. 한 마디로 눈에 띄는 학생이 아니었다.

다음 수업 시간에 발표자로 내 번호가 지목되었다. 등에서 식은땀이 나며 온 몸이 떨려왔다. 시선을 어디다 둬야 할지 몰랐고 머리가 하얗게 비어버리는 것 같았다. 쭈뼛거리며 앞으로 나가 덜덜 떨면서 발표를 했다.

그런 내게 선생님은 말을 아주 조리 있게 잘 한다고 이야기하시며 아나운서라는 직업을 추천해주셨다. 나도 놀랐지만 반 아이들은 더 놀란 거 같았다. 다들 ‘늘 말없고 존재감도 없는 애가 할 수 있다고’하는 눈빛이었다.

긍정적인 선생님의 한 마디 말이 동심원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 일 이후 친구가 되고 싶다는 편지를 받는 일이 생겼다. 다가와 말을 시키는 아이들도 있었다. 나 자신도 조금 변하게 되었다. 그 전까지는 어떤 일을 해도 할 수 없을 거라는 부정적인 생각이 많아서 시작도 못한 일이 많았는데. 아주 미세하지만 해 봐도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마음속에 서서히 피어올랐다.

선생님은 별 다른 생각 없이 한 칭찬인지 모르겠지만 그것은 내 삶에서 큰 전환점이 되었다. 여름 방학을 지나면서 미래에 대해 많은 생각과 고민을 하게 되었고 계획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세우며 공부할 수 있게 되었다.

J에게도 긍정적이며 위로가 되는 이야기를 해 주고 싶었다. 어쩌면 나처럼 작은 불씨가 일어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였다. 커서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물었다. 아버지는 연세가 많고 엄마는 자신보다 한국어를 못하니 돈을 많이 벌고 싶고 대학도 가고 싶단다.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했다. 너는 한국어를 앞으로 잘 하게 될 거고 또 베트남어를 할 수 있으니 그런 면에서 유리한 면도 있다고. 더구나 베트남어는 배우기 어렵다고 하는데 두 가지 언어를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 않냐고. 거기다 학교에서 영어도 배우니 열심히만 하면 3개 국어를 할 수 있는 좋은 점을 가지고 있다고. J는 활짝 웃으며 정말 그렇게 생각하냐고 묻는다. 그렇다면 열심히 해 보겠다고 한다. 다음 만남을 가졌을 때 자신의 꿈을 스튜어디스로 결정했다고 한다.

5월은 많은 만남이 주어진 달이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부부의 날 등. 다른 때보다 많은 교제와 관계가 형성된다. 그런 관계를 유지하고 연결하는 것이 말이다.

말은 성능 좋은 자동차와 같다고 생각한다. 목적지를 정하고 도로 규칙을 지켜 운전을 하면 안전하고 편안하게 도착할 수 있다. 그러나 규칙을 준수하지 않고 지나치게 과속을 하거나 거친 운전을 한다면 사고가 나거나 목적지에 도착했다 할지라도 안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 불쾌감을 느낄 수 있다. 우리가 조심하고 상황을 살피며 대화를 하면 그 만남의 시간은 즐겁고 편안한 시간이 될 수 있지만 상대를 배려하지 못하는 대화는 상대에게 큰 상처를 입힐 수 있다.

한 선생님이 툭 던졌던 한 마디 말이 한 아이의 자존감을 높여줬던 것처럼 말은 무한한 힘을 가졌다. 3개 국어를 할 수 있다고 격려했던 말이 그 아이의 마음에 미래를 꿈 꿀 수 있게 한 기회가 되었다. 큰 칭찬이 아니더라도 우리의 입에서 나오는 말의 위력이 얼마나 큰지를 늘 생각했으면 좋겠다.

이 다음 언젠가 당당한 사회인으로 선 J를 만날 날을 상상해본다. 다양한 만남이 있는 이 한 달 오늘도 누군가의 작은 격려의 말이 누군가를 일으키는 하루가 되기를 바라면서.

/시조시인 전영숙

전영숙의 茶 한잔의 생각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