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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저편-칼릴 지브란을 회상하며

경북매일
등록일 2025-05-19 18:52 게재일 2025-05-20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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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봉학 변호사

누군가로부터, “행복하세요?“ 라는 질문을 받아 본 적이 있는가. 그랬다면 그때 아마도 대답을 망설였을 것이다. 행복은 드러나는 것이지,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행복은 찾는 순간 사라지는 신기루와 같은 것. 행복을 찾아보라. 찾지 못하는 당신을 발견할 것이다. 행복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경험되는 그 무엇이므로. 존재하지 않기에 찾을 수도, 추구할 수도, 도달할 수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오늘도 항해를 떠난다. 행복이라는 섬을 찾아서. 하지만 지금까지 그 섬에 도착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충분히 만족하여도, 당신의 손은 만족한 몸의 맨살을 직접 만져보고 싶어 안달하며, 충분히 행복하여도, 당신의 귀는 행복한 마음의 소리를 듣고 싶어 견딜 수 없어 한다. 손이 행복의 맨살을 만지는 순간, 행복은 이미 당신의 손아귀를 빠져나가 저 멀리서 당신에게 손짓할 것이다. 귀가 행복을 듣게 되는 순간, 행복은 이미 저 산 너머 메아리로 사라지고 있을 것이다. 만지지 않고, 듣지 않을 때만 온전히 당신에게 머물기에. 행복은 ‘지금 이순간’ 당신에게서 벌어지는 ‘사건’이다. 우주 속 빛의 속도처럼 일정하게 빌트 인(built-in) 된 그 무엇이 아니라, 삶에서 매 순간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사건들의 연속일 뿐.

주위를 둘러보라. 행복이 널려 있지 않은가. 고통이 찾아오면 당신은 행복하지 않다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고통은 행복이 자신을 드러내는 방식이자, 행복으로 인도하는 길. 고통은 당신이 스스로 선택한 행복의 동반자. 고통은 상처받은 행복을 치료하기 위하여 당신의 내면이 내미는 쓰디쓴 약. 행복이라는 의사를 믿고, 고통이라는 약을 안심하고 드시라. 그리고 친구처럼 고통과 대화하시기를.

행복은 고통의 부재가 아니라 고통을 껴안은 존재가 빚어내는 빛이요, 슬픔이 함께한 자리에서 피어나는 꽃이요, 삶의 어두운 골짜기를 걸어가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신의 선물이다. 어찌 받지 않을 수 있겠는가. 현자는 말한다. ‘삶이 그대를 괴롭힐 때에도 그 괴롭힘 속에 감춰진 선물을 찾으라고, 기쁨과 슬픔은 서로를 부르는 이름이라고’ 고통과 기쁨은 하나의 줄기에서 태어난 형제. 고통은 기쁨을 품기 위해 어두운 땅속으로 움추린 씨앗이요, 기쁨은 고통이 껍질을 벗기고 드러낸 맨얼굴이다. 기쁨은 고통의 어깨 위에 핀 꽃이요, 고통은 기쁨의 뿌리 아래 잠든 불씨이다. 기쁨의 눈동자 속에 드리운 슬픔의 그림자를 사랑하자. 우리의 삶이 곧 고통이요, 기쁨이 아닌가.

우리는 행복이란 창을 마음속에 만들어 두고 산다. 가끔씩은 그 창이 닫힐 때가 있으리라. 그러나 걱정하지 마시라. 이 창문이 닫히면, 저 창문이 열릴 것이다. 열리지 않으면 그냥 ”괜챦아“ 라고 말하면 된다. 이것이 행복의 창문을 여는 방식이다. 다만 한 가지 명심할 것은, 그 창을 통하여 들어오는 것이 행복이 아니라는 사실. 다시 열린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것은 밝은 빛과 시원한 바람. 그 빛과 바람은 방안에 웅크리고 있는 당신의 행복을 잠에서 깨울 것이다.

행복의 샘물을 마셔보자! 행복이란 우물에서 두레박으로 길어 올린 시원한 샘물의 맛이 어떤가요. 잊지 마십시오. 그 물속에는 기쁨과 슬픔이 함께 섞여 있다는 사실을. 

/공봉학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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