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수업이 끝나갈 즈음, 하늘이 어두워지고 바람이 불면 아이들은 잰걸음으로 집을 향해 뛰었다. 하지만 나는 알았다. 뛰어도 옷은 이미 젖는다는 것을. 누구 하나 우산을 챙겨줄 여유가 없었던 어린 시절의 우리 집, 생계를 책임지느라 바쁜 엄마 덕분이었다.
학교가 파할 무렵 소나기가 내리면 하나 둘 모여드는 엄마들 틈에 우리 엄마는 늘 없었다. 우산이 없는 것이 부끄럽기도 했지만 이미 너무나 익숙해져 있던 나였다. 옷이 젖고 신발이 질척거려도 소나기를 맞으며 귀가하는 건 나의 일상이었다.
그 날도 소나기가 내렸다. 아이들은 하나둘 우산을 폈고 엄마와 어깨동무를 하며 보폭을 맞춰 걸었다. 나는 언제나처럼 어깨를 웅크린 채 교문을 나섰다. 그때였다. 뒤에서 다가온 누군가가 나의 어깨를 툭 건드렸다.
“이 우산 써.”
선생님이었다. 하늘색 작은 우산을 내미시며 오늘은 빌려주시겠다고 하셨다. 순간 나도 모르게 가슴이 두근거렸다. 나는 우산을 받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처음으로 소나기를 맞지 않았다. 그리고 처음으로 비가 내리는 그 길을 당당하게 고개를 들고 힘차게 걸었다.
그 우산은 평소보다 무겁고 따뜻했다. 선생님의 손길이, 말없이 내민 그 배려가, 어린 내게는 유년의 수많은 소나기를 막아주는 커다란 지붕이 되었다. 나는 그날 처음으로 비에 젖지 않고 걸었지만 그보다 더 강하게 마음 깊이 스며든 건 누군가가 나를 챙겨 준다는 안도감이었다. 지금도 문득 빗소리를 들으면 떠오른다. 그날의 나의 표정과 어설프지만 힘차던 발걸음, 그리고 우산 위로 또르르 흘러내리던 빗줄기 소리, 세상 가장 조용한 위로는 그렇게 내 머리 위에 조심스럽게 내려앉았다.
세월이 흘러 나도 어느덧 어른이 되었다. 문득 5월을 보내며 스승의 날이 다가오면 하늘색 우산이 떠오른다. 삶은 여전히 예기치 못한 소나기를 퍼붓고 나는 가끔씩 젖고 때로는 비를 피할 곳을 찾아 헤맨다. 하지만 어린시절의 기억 덕분인지 나는 믿는다. 세상 어디엔가 나를 생각해 주는 따뜻한 마음이 있고 누군가의 조용한 배려 하나가 삶의 큰 위로가 된다는 것을. 그 따뜻한 마음과 배려는 세상 골목골목 어딘가에 스며들어 있다는 것도.
점심을 먹고 부른 배를 부여잡고 산책을 나섰다. 하늘이 잔뜩 심술을 부려 접이 우산을 하난 들고 나갔다. 아파트 입구 쯤에서 두둑두둑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했다. 우산을 펼쳐 쓰고는 부지런히 발걸음을 디뎠다. 아이들이 하교 중이었다. 거의 집에 다다른 아이들은 뛰기 시작했지만 학교 쪽으로 다가갈수록 아이들은 비에 젖어 있었다. 한 여자 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뛰지도 않고 오롯이 비를 맞으며 걸어갔다.
“같이 가자.”
그 아이의 어깨 위로 조심스레 우산을 씌웠다. 아이는 놀란 눈으로 나를 보았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바짝 붙어 걸었다. 작은 우산 아래 둘이 들어가기엔 좁았지만 마음만은 넉넉했다. 나의 젖은 소매가 아이의 팔에 닿아 있었지만 아이는 춥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유년의 나처럼 따뜻함을 느꼈을 것이다.
빗소리는 여전히 컸지만 우산 아래에서는 우리 둘의 조용한 이야기들이 오고갔다. 학교에서 있었던 일, 좋아하는 간식, 엄마 이야기, 우리는 천천히 집으로 걸었다. 나의 유년 시절 하늘색 우산은 지금 또 누군가에게 투명 우산이 되어 비를 함께 피하고 이 아이도 언젠가 또 누군가의 우산이 되어주리라 믿는다.
작은 우산 하나가 내게 알려준 것은 비를 피하는 방법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세상을 살아가는 태도였고,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우산이 되어야 한다는 다짐이었다.
어쩌면 인생은 끊임없이 소나기를 만나는 여정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누군가의 우산이 되어주는 것도, 누군가의 우산을 기억하며 살아가는 것도, 누군가에게 마음 한 자락을 내어주고 받는 일이라는 것을.
비는 언젠가 그치겠지만 마음을 내어준 기억은 오래도록 남는다. 소나기는 잠깐이지만 우산 아래 나눈 온기는 오래도록 누군가의 삶의 눈부신 햇살을 밝혀줄 테니까.
/김경아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