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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없는 마음이 있어

경북매일
등록일 2025-06-08 18:54 게재일 2025-06-09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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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정 시인

새벽에 ㅁㅇ이라는 문자를 받았다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왜 어떻게

그런 것보다는

자음(子音)만을 떠나보냈을 모음(母音)의 안부가

어쩐지 궁금했다

 

그게 마음이었다면

ㅁㅇ이 떠나가며 버린 자리엔 ㅏㅡ만 남아서

아으:[감탄사]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심하게 아플 때 나오는 소리.

명치 끝에 얹힌 녹을 닦으며 쭈그려

앉아 있지는 않을까

 

마음의 미안으로

미안의 마음으로

(···.)

 

ㅁ과ㅇ의 뚫린 입을 텅 빈 중심을 허방을 실족을 부재를

낯설어하는 내가 낯설기만 한 나는 누구일까

(···.)

거꾸로 돌려봐도 무엇 하나 설명 못하는 막연은

 

그런 것보다는

살기 위해 한 숟갈 미음을 억지로 삼키는 것처럼

한 마음을 입가로 흘리며 떠먹은 적 있었던가

 

새벽에 ㅁㅇ이라는 말을 보냈는데

ㅇㅇ이라는 답장이 돌아온다

아으, 라는 말을 발음하려거든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응응, 나도 잘 지내

―이현호,‘ㅁㅇ’부분 (‘아름다웠던 사람의 이름은 혼자’, 문학동네)

초성 놀이를 해본 적 있는가. 이현호 시인의 시‘ㅁㅇ’을 무어라 읽어야 할까.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언표가 마음이라는 생각에‘마음’으로 읽어본다. 기실 저 뚫린 네모와 동그라미의 기표 속에는 퍽 많은 마음이 살았거나 다녀갔을 것이다. 도대체 마음이란 무엇이기에 마음에 들어서, 마음에 안 들어서 혹은 가지거나 버리거나 가졌다가도 버리고 버렸다가도 욕망하는 것일까.‘마음’한 단어에 수많은 변덕이 있다.

시인에게 마음은 빈집이며 부재 하는 사랑으로 볼 수 있겠다. 가령 에로스(Eros)는 애초에 하나의 둥근 원이었으나 둘로 쪼개어졌기에 언제나 부재의 형식이 된다. “그리스 항아리 그림의 관례가 시적 뉘앙스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항아리의 에로스적 장면들을 보면 승리한 에로스보다는 유예되거나 가로막힌 에로스가 선호되는 주제였음이 분명히 드러난다.”(앤카슨, 에로스; 달콤 씁쓸한)

무릇 사람의 생애는 성공보다는 실패가 많다. 사랑이란 애초에 결함으로부터 시작하기에 소설가나 시인들이 쓰는 서사는 대개가 실패에 관한 것들이다. 삶의 복잡성을 알려주고 사람의 궤적이 우리의 마음만큼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인생이라는 사실, 그것을 인정하게 만드는 것이 문학이라고‘그 개와 혁명’을 통해 소설가 예소연은 말한다. 비인간인 존재가 인간 세상의 부조리와 차별의 질서를 훼방함으로써 드러내는 것처럼 말이다. 시인 이현호의 인용되지 않은 시‘인간성’에도 이런 구절이 있다.

“내가 이걸 또 하면 사람이 아니다/다짐하고, 다음 날/사람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없는 세상을 써 나가는 신이 있다면/필요 없는 글자를 뺄 때 쓰는 교정부호를 내게 그렸겠지요”

마음을 내어주는 일에 골몰해 본 적 있는가. 적어도 이현호 시인은 사람에 대하여, 마음에 대하여 진심인 시인이다. “자음만 떠나보냈을 모음의 안부가 궁금하다”는 언술에서 짐작할 수 있듯 이 시인에게 마음은 헐하지 않다. 마음이 어디로 갔는지, 누구에게 갔는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마음이 쓰이는 것이다.

정들면 지옥이라고 했다. 시인의 인용되지 않은 언술“세상에는 사람 수만큼의 지옥이 있어”처럼“살기 위해 한 숟갈 미음을 억지로 삼키는 것처럼 한 마음을 입가로 흘리며”시인에게 뚫린 마음은 “미안으로, 미움으로, 막연으로”게다가 남은 모음은 고통의 감탄사가 된다. “아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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