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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늘

경북매일
등록일 2025-06-10 20:15 게재일 2025-06-11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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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늘.

무더위가 막 시작되던 초여름 어느 날이었다. 간단히 점심을 때우려고 컵라면을 먹었는데 좀처럼 소화가 되지 않아 산책을 나섰다. 자동차로 다닐 땐 보이지 않던 많은 풍경들이 걸음을 늦추었고 기온이 많이 오른 탓에 자신을 돋보이려 강렬하게 빛을 뿜어대는 햇빛 덕분에 걸음은 더욱 더뎌졌다.

차들이 다니는 길목에서 지인 부부를 만났다. 딱히 약속한 것도 아니었다. 서로의 삶이 바쁘다는 이유로 자주 만나지 못하던 지인이었는데 산책길에서 오랜만에 만났다. 정형적인 약속이 아니라 우연한 만남이라는 이유만으로 우리는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걸음을 멈췄고 말문이 트이자 금세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서로의 일상을 쏟아냈다.

무심히 서 있던 그 자리는 나무 그늘이 드리워진 곳이었다. 그곳에 서서 우리는 서로의 안부를 묻고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건강은 어떠한지, 지난번 만남에서 들었던 직장에서의 힘든 부분은 잘 해결되었는지, 왜 이 시간에 걷고 있는지, 가족은 잘 있는지 같은 일상적인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처음에는 몇 마디로 그칠 줄 알았지만, 이야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박수를 치며 웃기도 하다가 심각한 이야기도 하다 보니 두 시간 가까이 서서 이야기를 했다. 그렇게 오래 서 있었던 줄은 나중에야 알았다. 그 시간 동안 우리는 지친 줄도 몰랐고, 다리가 아픈 줄도 몰랐고, 햇살이 따가운 줄도 몰랐다. 그들과 함께 서 있었던 자리가 그늘 덕분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여름이 시작되면 사람들은 저마다의 그늘을 찾는다. 태양이 너무 뜨겁고 강렬해서 그늘 아래서야 숨을 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햇볕은 생명을 키우는 존재다. 식물이 광합성을 통해 자라듯 우리도 햇볕 아래서 활기를 얻는다. 하지만 햇볕은 오래 머무르면 탈이 나기도 한다. 너무 강한 햇볕은 자라게도 하지만 시들게도 한다.

그래서 그늘이 필요하다. 그늘은 빛이 없는 곳이 아니라 빛이 닿지 않아도 편히 쉴 수 있는 곳이다. 생명을 직접적으로 키우지는 않지만 지친 생명이 회복될 수 있도록 숨을 고르게 해준다. 햇볕과 그늘은 서로 반대편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생을 균형있게 만들어 주는 두 개의 축이다. 햇볕이 생명을 키우는 존재라면 그늘은 생명을 쉬게 해주는 공간이다. 햇볕이 ‘살게 하는 힘’이라면 그늘은 ‘살아낼 수 있는 숨’이다.

나는 스스로 햇볕을 좋아한다고 생각해 왔다. 환하고 따뜻하고 삶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으니까.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알게 된다. 햇볕만으로는 살 수 없다는 걸. 때로는 그늘에서 머무르며 숨을 고르고 내 안의 조용한 소리에 귀 기울이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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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아 작가

그날 만난 지인 부부는 나에게 그런 존재였다. 내 안의 답답함이 말 한마디에 풀리는 그냥 그늘 같은 사람들이었다. 말에 말을 더하지 않고 듣고 웃어주는 그들은 마치 더위에 지쳐 찾아간 여름날 나무 그늘 같았다. 강하지 않지만 깊었고 말없이 서 있어도 충분했다.

요즘은 그늘 같은 사람이 그립다. 함께 있으면 내 마음이 쉴 수 있는 사람, 조용히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때론 말이 없어도 괜찮은 사람. 세상은 빛나는 것에만 주목하라고 말하지만 나는 빛나지 않아도 좋은 그늘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누군가가 잠시라도 기대어 숨을 돌릴 수 있는 그런 존재가 되고 싶다. 그들 부부같은.

산책길에서의 그 짧은 만남이 나에게는 긴 여운으로 남았다. 그날의 햇볕도, 그늘도, 그리고 그늘처럼 나에게 다가와 준 지인도. 사람 사이에도 그런 그늘 하나씩 있었으면 좋겠다. 벤치처럼 앉을 수 있는, 나무처럼 기대설 수 있는, 쉼표 같은 존재 말이다.

그늘은 단지 햇빛을 피하는 공간이 아니다. 마음이 머무는 자리다. 그리고 그날 나는 내 마음도 잠시 그곳에 쉬어 갔음을 알았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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