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의 바람은 싱그럽다. 연록의 잎새들은 날로 짙어져 꿈결처럼 암록이 흐르고, 풋보리가 익어가는 들판엔 초록의 바람이 분다. 화사한 꽃들이 져버리자 초목은 더욱 무성해지며 생명력을 드러내는 때, 그래서 우거진 그늘과 향기로운 풀들이 꽃필 때 보다 낫다(綠陰芳草勝花時)고 했던가. 거기에 도심 속을 길게 가로지르는 숲길 한 켠에는 녹음방초 보다 더 진하고 그윽하게 묵향(墨香)을 피우며 지나가는 시민들의 발길을 멈추게 하고 있다.
올해 14회째를 맞은 ‘포항서예연합전’이 걸개 형태로 만든 다양한 깃발작품들을 길거리에서 전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100여 년 동안 열차가 다니던 옛 철길을 획기적으로 개선, 복원하여 시민들이 즐겨 찾는 열린 공간인 ‘포항철길숲’ 한 켠에서 형형색색의 깃발 서예작품들이 유월의 바람에 나부끼고 있다. 도심 속의 복합 힐링공간으로 탈바꿈하여 전국적인 명소가 된 포항철길숲 모퉁이에서 피어나는 은은한 묵향이 푸른 초목과 어우러져 눈부시게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산책하거나 가벼운 운동을 하면서 바로 곁에서 깃발 서예작품을 만날 수 있다니, 일상과 접목되는 ‘거리예술’의 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서예작품이 전시장이나 갤러리가 아닌 길거리나 공공장소에서 쉽고 편하게 접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서예가 일반 대중들에게 가까이 다가가고 자연이나 일상 속에 스며들게 함으로써 사람과 자연, 예술과 삶을 어우러지게 하는 새로운 문화적 향유를 선사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전통을 살리면서 자연 속에서 예술과 생활을 이어주는 문화적인 소통으로 ‘문화도시’의 품격과 기치를 한층 높이게 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도 여겨진다.
특히 이번 연합전은 서예 동호인이나 서예작가·출향작가 뿐만 아니라 포항시민이면 누구나 함께할 수 있는 열린 문화행사로서, 유치원생에서부터 100세 어르신까지 남녀노소의 시민들이 참여해 눈길을 끌고 있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붓을 잡고 한 점 한 획 또박또박 꿈과 희망을 쓰거나, 세월의 깊이가 느껴지는 거북등 같은 손으로 떨리는 붓을 진정시키며 자손들에게 사랑과 염원의 글귀를 쓴 작품 속에서 순수하고 진솔함이 느껴져 눈시울을 붉게 만들기도 한다. 연령과 세대, 계층과 지역을 아우르는 문화 예술적인 소통과 어울림으로 전통문화예술의 현대적인 계승 발전과 서예인구의 저변확대를 꾀하기도 한다.
‘도심을 넘나들며/만남과 이음으로//소통이 숨을 쉬고/여유가 살아나네//가뿐한 몸놀림 속에/활기참이 묻어나네//테마가 어리고/예술이 피어나는//철길숲 둘레마다/쉼과 삶이 어우러져//깃들고 품어주는 뜻/공생의 문화 흐르네’ -拙시조 ‘선로의 변신’ 중
구체적인 의미 표현의 수단이나 상징성을 드러내는 깃발에 곱게 스며든 350여점의 시서화(詩書畵) 작품들이 창공에 휘날리며 한결같이 문화예술을 외치는 것 같다. 묵향으로 수놓아진 아름다운 철길숲을 마실 가듯이 거닐며, 길가에서 환호하듯이 반기는 깃발 서예작품으로 잠시 풍요롭고 품격 있는 문화생활을 즐겨보면 어떨까? 철길숲과 예술작품이 조화를 이루고 시민들이 공감하며 상생하는 포항에는 문화의 향기가 피어난다. 예술과 문화는 시대를 초월하여 융화와 공감, 감동의 울림으로 도시의 활력과 지속가능성을 담보해준다.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