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시작됐다. 낮의 기온이 점점 오르고 있어 야외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은 지금부터 조심하고 관리를 해야 한다. 강한 햇볕 아래 오래 서 있거나 밀폐된 실내에서 일하는 동안 체온 조절 기전이 무너지면 신체는 마치 증기로 가득 찬 압력솥처럼 내부 열을 배출하지 못한다. 심부 체온이 40℃를 넘어서면 단백질이 변성되고 효소의 촉매 활동이 멈추며 뇌∙간∙신장 같은 장기에 문제가 생긴다. 어지럼, 두통, 피부 홍조와 건조감이 경고 신호인데, 의식 혼미나 경련까지 나타나면 일사병에서 열사병 단계로 치닫는다. 응급조치는 간단하면서도 즉각적이어야 한다. 서늘한 곳으로 옮기고 옷을 느슨하게 풀어 땀 증발을 돕고, 얼음팩을 목·겨드랑이·사타구니에 대어 중심부 혈관을 식힌다. 물을 마실 수 있으면 미지근한 물로 수분과 전해질을 함께 보충하는 편이 안전하다.
한의학에서는 여름철 더위로 열이 치솟고 진액을 소모한다는 관점으로 본다. 열을 식히고 진액을 채워야 장기 손상을 막을 수 있다는 뜻이다. 열이 맹렬하게 치솟을 땐 석고가 주약인 백호탕 계열이 열독을 꺼 주고, 붉고 건조한 피부에 답답함과 초조한 증상은 황련해독탕으로 심화를 내려 해결한다. 땀을 지나치게 흘린 뒤 맥이 약하고 갈증이 계속되면 인삼·맥문동·오미자를 배합한 생맥산을 먹으면 기운이 나고 진액이 차오른다. 노인의 경우 열사와 함께 기혈 손상이 동반되기 쉬워 황기·당귀·백출을 더한 청서익기탕을 써서 체력 회복을 돕는다. 차로 즐기기 좋은 녹두·연교·금은화는 가슴의 열을 내리고 약성이 부드러워 가정 상비 음료로 무리가 없다.
한약 관리 못지않게 생활 관리를 병행해야 치료 효과가 좋아진다. 가장 먼저 수분 섭취를 조절해야 한다. 한 번에 벌컥 마시면 위장만 늘어나고 흡수가 늦어지니, 미지근한 물이나 염분이 약간 섞인 보리차를 15~20분 간격으로 소량씩 나누어 마신다. 몸 안 열기를 빼려면 체표 순환을 원활히 해야 하므로 얇고 땀 흡수가 좋은 면∙마 소재 옷을 선택하고, 모자나 양산으로 직사광선을 차단한다. 한낮 실외 작업은 가급적 오전 10시 이전이나 오후 4시 이후로 미루고, 꼭 밖에 있어야 한다면 그늘에서 10분씩 휴식하는 ‘쿨링 브레이크’를 습관으로 만든다. 실내 온도가 30℃ 가까이 오르면 선풍기만으로는 대기 온도 자체가 내려가지 않으니 에어컨을 26~27℃로 가동해 습도와 열을 동시에 잡는다. 발에 열이 몰리면 수면의 질도 떨어지므로 자기 전 미지근한 물에 발을 10분 담그는 족욕이 도움이 된다.
몸이 보내는 미세한 신호를 놓치지 않는 것이 가장 확실한 예방책이다. 야외에서 평소보다 숨이 가빠지거나 가슴이 두근거리면 즉시 그늘로 들어가 몸을 식히고 물을 마셔야 한다. 이미 열사병으로 진행된 경우엔 응급조치 후 119를 불러 응급실로 가야 한다. 고열과 의식 저하는 생명을 위협하는 응급 상황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여름볕은 누구에게나 무차별적으로 내리쬐지만, 그 열기를 이겨낼 준비를 갖춘 사람에겐 더 이상 공포가 되지 않는다. 자신을 식혀 줄 물 한 모금, 그늘 아래 짧은 휴식, 그리고 진액을 보충해 줄 한방 차 한 잔을 곁에 두면 긴 여름도 충분히 건강하게 보낼 수 있다.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