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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장례식은 웃음이 많았으면 좋겠다

등록일 2025-06-12 18:16 게재일 2025-06-13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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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병철 수필가

소대(燒臺)에서 연기가 나는 것을 보니 막재가 있었나 보다. 절집에서 망자의 옷가지나 소지품을 태우는 장소를 ‘소대’라고 한다. 검은 옷을 입은 유족들이 분주하게 움직인다. 이제 집으로 돌아갈 시간인 모양이다. 슬퍼하는 이도 있고 서로 장난치며 웃는 이도 있다. 생전 어디선가 한번 지나쳤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뜩 들어 법당에 차려진 망자의 영정 사진을 힐끗 쳐다봤다. 생전 처음 보는 얼굴이다. 늙지도, 젊지도 않은 남자다. 영가단에 합장하여 예를 표했다.

요즘은 찾으래야 찾기 힘든 곳이 장의사 간판이다. 길을 걷다 보면 동네마다 관을 잔뜩 쌓아놓은 가게가 보이곤 했다. 당시엔 집에서 장사를 지내는 풍습이 있었다. 객사하면 시체가 원혼이 붙은 채 구천을 떠돈다고 생각했고 악귀로 변해 사람들에게 해코지한다는 말을 찰떡같이 믿었기에 어떻게 해서든 시신을 집으로 모시려고 애썼다. 병원에 있다가도 죽을 때가 되면 집으로 모시게 된다. 수구초심(首丘初心)이라고 여우도 죽을 때 제가 살던 굴이 있는 언덕 쪽으로 머리를 둔다고 하지 않는가.

예전에는 돌아가시기 전에 집으로 모셔가면 좋으련만 세상살이가 다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갑자기 숨을 거두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그땐 병원에서는 시신 입에다 수동식 인공호흡기를 물리고 열심히 공기를 손으로 주입하면서 집으로 모셨단다. 그러고는 마치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는 표정으로 한마디 한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돌아가셨습니다. 집에 돌아오신 줄 아셨나 봅니다.” 망자의 가족인들 이미 돌아가셨는지 알지만, 편하게 집에서 돌아가신 것으로 치부하고 장례 절차를 밟게 된다. 전화로 장의사 부르고 곧이어 염한다고 가족들은 시신 곁에 모여야 한다. 이때부터 집안에 곡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정이 많았던 할머니셨고 많이 따랐지만, 이상하게 그날은 무서웠다. 아마 정을 떼고 가시려고 했나 보다.

세상이 바뀌었다. 요즘은 거의 다 객사한다. 집에서 장례 치르는 집이 없다. 옛날엔 상을 당하면 상주는 삼일을 불식(不食)한다고 하여 음식을 먹지 않는다. 그래서 상주에게 미음이나 죽 같은 것을 가져와서 먹이곤 했다. 요즘은 상주도 잘 먹고 잘 자고 샤워 시설까지 갖춘 방에서 잘 씻는다. 아버지 돌아가셨을 때 씻는 것은 고사하고 양치도 못 해 입에서 군내가 진동한 기억이 난다. 슬프다고 너나없이 술을 권하던지 정신은 해롱거렸고 속은 거북했다. 삼베옷에 살갗이 쓸려서 밤엔 따갑고 쓰라렸다. 지금은 삼베옷과 대나무가 사라졌다. 서양처럼 검은 양복 빼입고 있으면 된다. 모든 것을 상조회에서 와 조금도 불편함 없이 해 준다.

서세원 장례식장에서 개그맨 김정렬이 선배의 마지막 가는 길에 춤을 춘 것이 화제였다. 세상 구경 제대로 하는 기안84라는 친구는 마다가스카르라는 나라에서 기이한 장례문화를 소개한다. 다 같이 춤을 추는 축제 같은 장례문화였다. 지금까지 변화된 장례문화를 볼 때 내가 언제 죽을지는 모르지만, 그때는 장례문화가 지금보다는 확연하게 달라져 있지 않을까. 내 장례식에는 슬픔보다는 웃음이 더 많았으면 싶다. 그리고 제사상 차림 같은 것은 없이 그냥 하늘로 가고 싶다. 많이 먹으면 무거워 잘 날지 못할지도 모르니 말이다. 마지막에도 웃고 싶을 뿐이다.

/노병철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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