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만지다 보면 결이 느껴진다. 결을 따라 쓰다듬으면 부드럽지만 거슬러 만지면 손끝이 걸린다. 말도 그렇다. 결이 맞으면 대화는 잘 닦인 포장도로처럼 부드럽지만 결이 다르면 말끝마다 사각거린다.
요즘 나를 지치게 하는 한 사람이 있다. 그녀는 보편적인 기준에서 벗어난 가치관을 가지고 있고 자신의 말을 정답이라 믿는다. 그녀의 말은 늘 선을 긋고 그 선 위에서만 옳고 그름을 가른다. 처음엔 설명도 했고, 우회해서도 말했고, 직진으로도 해보았으나 여러 각도의 내 노력이 무색할 만큼 그녀와의 대화는 언제나 제자리로 돌아왔다. 내가 어떤 말을 해도 들리지 않는 듯 했다. 그녀와의 대화는 소통이 아니라 그녀의 확신을 확인하는 절차처럼 느껴졌다. ‘허수아비의 오류’에 빠진 그와의 대화는 나의 에너지를 너무 많이 앗아갔다.
거리를 두고 싶었다. 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피할 수 없는 관계는 늘 존재한다. 그러다 보니 내 말의 결도 거칠어졌다. 나도 모르게 방어적이고 냉소적인 말들이 튀어나왔다. 나를 지키려고 뱉어낸 말들이 나를 더 무겁게 만들고 나만의 틀에 가두어 헤어나오기 힘들게 만들었다. 잘 말하고 싶어 대화창 속에 만들어 낸 언어의 조합을 지우고 삭제하고 감정을 절제하고 최선을 다해 담담하게 보내도 그녀의 답은 가시가 백만 개쯤 붙은 날카로운 검이 되어 내게 돌아온다.
말이 거칠어질수록 내 안의 불안도 커졌다. 그녀와의 소통에는 너무 많은 틈이 벌어져 그 어떤 강력한 본드를 붙인다 한들 틈을 메우기는 힘들었다. 그녀와의 대화는 진심이 아니라 방어였고 넘지 못할 벽을 넘는 일이었다. 잘못된 결을 풀어내야 할 의지조차 희미해졌고 이해 대신 비난만이, 신뢰 대신 의심만이 활어처럼 팔딱거렸다.
그럴 때마다 떠오르는 얼굴들이 있다. 설명하지 않아도 나를 이해해 주는 사람들, 내 말에 틈을 만들어 주는 사람들, 그들과의 대화는 정답을 찾지 않아도 괜찮다. 어떤 날은 나보다 더 흥분해주고 어떤 날은 나보다 더 차분하고 어떤 날은 조용히 말을 놓아둔다. 그런 사람들 곁에서는 말이 자라난다. 나도 조금씩 부드러운 결을 회복하게 된다.
말이란 결국 마음의 결이다. 서로 다른 결을 억지로 맞추려 애쓰기보다 다름을 인식하고도 멀어지지 않는 연습이 필요하다. 나는 최근에 더 깊이 알아가고 있다. 꼭 잘 맞는 사람만이 고마운 것이 아니라 맞지 않아도 상처 주지 않으려 애쓰는 사람의 배려와 마음의 결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말의 결을 따지지 않고 내 마음의 결을 맞춰주는 사람들은 여전히 주위에 많다. 무심코 흘리듯 내뱉은 하소연 하나를 기억하고 먼 길을 달려와 미역국 한 냄비와 갈비찜을 두고 가며 밥 잘 챙겨 먹어라 말을 건넨 사람, 바쁜 일상 속에서도 내 표정의 그늘을 읽고 조용히 안부를 물어오는 사람, 내 이야기에 해답 대신 눈물을 건네며 함께 울어주는 사람, 그들은 말보다 마음을 먼저 건네는 이들이다. 그들의 말은 내 안에 스며들어 날카로워진 결을 다듬고 상처 난 마음의 결을 천천히 봉합한다. 나는 그런 이들 앞에서야 비로소 ‘말을 잘하는 법’이 아니라 ‘잘 들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진다. 서로의 결을 존중하고 아껴주는 이 관계들 속에서 나는 말보다 더 깊은 대화를 배운다.
대화의 결이 좋은 사람들과의 소통은 내 안의 부정적인 감정을 비워내게 해준다. 내 말이 누군가의 쉼이 되어주기를, 내가 누군가에게 에너지를 빼앗는 존재가 아니길 바라게 된다. 나의 말이 가까운 이들의 마음을 베지 않기를, 내가 꺼낸 말로 누군가가 결을 다시 세울 수 있도록 마음을 기울이게 된다.
말은 결국 마음을 데우는 그릇이기도 하고 때로는 마음을 다치게 하는 칼날이 되기도 한다. 어느 쪽으로 말을 쓸 것인가는 나의 선택이다. 관계는 언제나 뜻하지 않게 엇갈리고 말 한 줄에 멀어지기도 한다. 나의 입을 통해 던져진 말이 누군가의 마음에 닿았을 때 무엇으로 기억될지를 생각해 본다. 나의 말이 누군가의 상처가 아니라 지친 하루의 등불이 되고 웃음이 되기를 다시 복기해 본다. 말의 결이 마음의 결임을 오늘도 새겨본다.
/김경아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