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밥헌터스 포항 효자시장 ‘그린떡방앗간’ 흰 팥고물 가득 묻힌 떡 한입 베어 물자 몰캉한 식감·달달한 무맛이 입안 가득
오랜만에 김장을 했다. 시어머니가 암 투병을 시작하면서 김장 같은 대소사를 접었었다. 친정엄마의 다급한 연락을 받고 달려가니 거실에 붉은 양념 다라이가 우릴 반겼다. 소금에 절였다 물기를 뺀 배추에 양념을 발라 통에 넣으며 사이사이에 숭덩 썰어서 아이 주먹만 한 무를 박았다. 시원한 맛이 배로 늘어난다.
끝나고 삶은 고기를 싸서 먹으니 겨우살이 준비를 끝낸 기분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손에 친정엄마가 미리 해놨다 들려 보낸 김치 종류는 몇 가지 더 있다. 총각김치, 물김치, 오그락지까지 바리바리 싸 주셨다. 한동안 반찬 걱정 없이 지낼 수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겨우살이 채비로 먹거리 준비가 1순위다. 어린 시절 안동에서는 밭에서 배추 무를 뽑아 일단 밭에 묻어두었다. 날이 따뜻한 날은 양지쪽에서 무를 납작납작하게 썰어 말렸다. 새들하게 시들었다 마르면 광에 따로 보관했다. 그렇게 말린 무를 물에 불렸다가 갖은양념을 더해 꼬들꼬들한 무말랭이를 만든다. 안동에서는 ‘곤짠지’라고 불렀다. 무가 시들하게 골았으니 ‘곤’ 소금에 절인 짠 김치 종류이므로 ‘짠지’를 붙여 곤짠지다. 포항에 오니 ‘오그락지’라 불렀다. 무가 물기가 빠져 모양이 오그라들었으니 직관적인 이름이다. ‘무말랭이’보다 맛있어 보인다.
겨울엔 무가 여러모로 쓰인다. 뒤뜰에 구덩이를 파서 묻어두고 국을 끓이면 달큰한 맛이 났고, 생채로 먹고 긴긴밤 고구마와 더불어 깎아 먹는 간식이기도 했다. 채소가 부족한 겨울에 배추전 무전을 해서 영양의 균형을 맞췄다. 무를 썰어서 앉힌 밥에 양념장을 더해 비벼 먹으면 이가 약한 할머니도 편하게 드셨다.
포항에 무떡이 맛있는 떡집이 있다. 떡 만들기가 어려웠던 어린 시절엔 구경도 못 해서 무떡을 먹어보지 못했다. 지인이 사 와서 먹어보라고 해서 첫 대면을 했다. 흰팥고물을 가득 묻힌 떡을 한입 베어 물자 이가 자동으로 쑥 들어갔다. 몰캉한 식감과 달달한 무맛이 입안에 번졌다. 무떡이 이 맛이구나.
무떡 맛집이 어디냐고 물어 찾아갔다. 효자 시장 안에 자리한 ‘그린 떡방앗간’이었다. 전날 무떡 한 되를 해달라 미리 맞춰 놓았더니 시루에 막 찌는 중이었다. 가게는 기계가 많았지만, 전체 기계를 스테인리스로 만들고 기계 벨트는 차인 벨트로 사용하여 불필요한 실내 공간을 최소화하였으며 도시가스 보일러를 사용하고 있어 실내가 한층 청정했다. 포스코에 다니던 남편이 은퇴하면서 처가에서 운영하던 이곳을 물려받아 함께 운영 중이다. 떡 만드는 아내를 위해 식히는 기계도 만들었고 가게 앞에 무인 판매대도 그의 아이디어다.
이곳은 1970년부터 한결같이 떡방앗간을 운영해 왔다. 처음에는 떡과 참기름, 고춧가루 등 시골 방앗간처럼 운영하였으나 지금은 떡만 전문으로 한다. 주로 단골손님께서 쌀 가지고 떡 하러 많이 오고 오래전부터 맞춤식 떡을 주로 한다. 무떡 말고도 솜씨 좋은 안주인의 손에서 빚어지는 떡이 많았다.
무떡 시루가 김을 술술 풍기며 나왔다. 잘라서 한 개씩 자동으로 포장하는 모습도 재밌다. 포장하는 사이 쑥떡이 다 되어 나오니 한 조각 떼서 맛보라며 건넸다. 주인장이 슬쩍 건네서 가볍게 받으니, 손이 뜨거워서 잡고 있기 힘들었다. 역시 오래 일해서 세월의 굳은살이 박여서 뜨거운 것도 아무렇지 않았나 보다.
겨울 무가 맛나듯이 무떡은 봄이 되면 주문을 받지 않는다. 김장 김치와 함께 먹으면 더 맛나니 지금이 가장 맛있을 때다. 그린 떡방앗간:포항시 남구 효자동길 10번길 6, 054-277-6326, 매일 오전 8~ 오후 5시 30분까지 문을 연다. 토요일과 일요일엔 문을 닫으니 참고하시길.
/김순희 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