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타인에게 올바르게 인식되기를 바란다면 스스로 누구인지를 솔직히 말해야 한다.”
카뮈의 문장처럼, 인간 존재가 마주한 부조리와 진실의 문제를 정면으로 묻는 연극이 연말 대구 무대에 오른다.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극단 온누리는 심리스릴러극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를 오는 23일부터 27일까지 예술극장 온(대구 중구 경상감영길 294)무대에 올린다.
제22회 ‘호러와 함께, 2025 대구국제힐링공연예술제’ 공식 초청작으로, 카뮈의 첫 희곡을 현대적 시각으로 재해석했다.
연출은 이국희, 출연진은 신숙희·김수정·신동우·박은솔·김선동이 무대를 이끈다.
작품은 음산한 지방 마을의 여인숙을 배경으로, 20년 만에 돌아온 아들 쟝과 그를 알아보지 못한 채 여행자라 여기는 어머니, 그리고 살기 위해 살인을 반복해온 여동생 마르타의 뒤틀린 관계를 통해 인간 존재의 모순과 허무를 그려나간다.
태양과 바다의 기억을 들려주는 손님 쟝을 제거하려는 순간까지 이어지는 긴장 속에서, 관객은 각자가 짊어진 ‘운명의 바위’가 어디로 굴러갈지 끝내 예측할 수 없는 삶의 아이러니와 마주하게 된다.
이번 작품의 기획 의도는 ‘왜 다시 시지프스인가’라는 질문으로 요약된다. 치솟는 집값, 계급 고착, 기대조차 사치가 된 오늘의 청년 세대는 ‘아무리 밀어도 굴러 떨어지는 바위’를 앞에 둔 시지프스와 닮아 있다.
포기는 무기력이 아니라 사회가 정한 성공 기준을 따르지 않겠다는 선택이며, 이는 카뮈가 말한 ‘반항’의 출발점이다. 남이 아닌 스스로 정한 기준으로 의미를 구성해나가는 삶의 방식, 그것이 오늘의 관객에게 작품이 건네는 메시지다.
극단 온누리는 1992년 창단 이후 지역 창작극 활성화와 전문 스태프 양성에 힘써온 대표 극단이다. 대구연극제 대상 5회·연출상 6회 등 최다 수상 기록을 보유하고, 2007년에는 예술극장 온을 개관해 작품 레퍼토리 구축에 힘써왔다. 이번 신작 역시 인간 조건의 본질을 묻는 카뮈의 질문을 스릴러적 긴장감 위에 올려 현대적 감각으로 풀어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연출을 맡은 이국희는 “카뮈가 말한 ‘반항의 윤리’를 무대 위에 실현하고자 했다”며 “허무로 귀결되는 비극 같지만, 작품은 끝내 “살아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의미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집념을 이야기한다”고 설명했다.
죽음의 그림자 속에서도 행복을 향해 멈추지 않는 비극적 의지, 그것이 이 연극이 관객에게 건네는 가장 깊은 울림이 아닌가 싶다.
/한상갑기자 arira6@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