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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환영과 불안 사이, 포항이 마주한 감정의 지도

단정민 기자
등록일 2025-12-09 14:38 게재일 2025-12-10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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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환영과 불안 사이, 완벽한 이민은 없다 - 다문화 도시로 넘어가는 포항의 ‘감정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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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을 오가는 사람들의 발걸음. /클립아트코리아

◇ “고맙지만 낯설다”⋯시민 감정은 하나로 정의되지 않는다

포항의 외국인 인구는 어느새 8000명을 넘어 도시 곳곳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산업과 일상을 움직이는 현장에서 외국인은 이미 빠질 수 없는 구성원이 됐지만, 시민들이 느끼는 감정은 단일한 언어로 설명되지 않는다. 고마움과 낯섦, 환영과 불편이 뒤섞인 복합적인 감정의 지도가 지금, 이 도시를 통과하고 있다. 

포항시 북구의 한 재래시장에서 만난 상인은 외국인 손님이 늘어난 걸 반긴다. “장사가 예전 같지 않은데, 외국인 손님 덕분에 버티는 날이 많다”는 이유에서다. 포항처럼 인구 감소가 이어지는 도시에서는 손님이 한 명이라도 더 오는 것이 그에게는 곧 생계다. 

하지만 바로 옆 가게에서는 다른 이야기가 나온다. 이웃 상인은 “외국인 손님과 말이 잘 안 통하면 가격이나 사용법을 설명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그럴 때 서로 조금 어색해진다”고 했다. 불편함이라기보다 ‘설명이 자꾸 빗나가는 상황’에서 오는 피로감에 가까웠다. 

이 두 감정은 서로 충돌하지 않는다. 포항 시민 다수가 비슷한 마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도시의 산업과 인력난을 생각하면 외국인이 꼭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하지만, 정작 일상에서 마주할 때는 여전히 낯설고 조심스러운 감정이 남아 있다. 구조의 변화는 빠른데 사람의 감정은 그만큼 빨리 움직이지 않는 현실. 지금 포항은 그 중간 지점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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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구에서 어민들이 어획물을 선별하고 옮기는 작업을 하고 있다. 수산업은 외국인 근로자 비중이 높은 분야로 현장의 노동력 상당 부분을 이들이 맡고 있다. /클립아트코리아

◇ 마찰은 큰 사건이 아니라 생활의 작은 틈에서 생긴다

포항시 남구 구룡포에서 20년간 조업을 해온 선장 박씨는 현재 외국인 선원 5명과 함께 매일 바다에 나간다. 그는 “일은 잘한다. 문제는 일을 못 해서가 아니라 생활 규칙을 몰라서 생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조업을 마친 뒤 배에서 나온 쓰레기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외국인 선원들이 헷갈려 할 때마다 “이건 분리해야 하고 이건 지정 장소에 버려야 한다”고 다시 알려준다. 사소해 보이지만 거의 매일 반복되는 일이다. 이 같은 경험은 박씨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포항의 수산 가공장·양식장·어선에는 베트남·스리랑카·인도네시아 등 여러 국적의 외국인 근로자들이 다수 일하고 있으며 업무는 익숙해도 지역의 생활 규칙은 여전히 낯선 경우가 많다.

주민들의 일상에서도 비슷한 충돌이 이어진다. 야간작업을 마치고 늦게 귀가하는 외국인 근로자의 생활 리듬은 원룸촌 주민들의 수면 패턴과 자연스럽게 겹치고 분리배출 시간·방법 차이, 공동주택 출입 방식, 주차 질서 등이 충분히 안내되지 않으면 오해가 쌓인다. 포항시 남구 한 원룸촌에서 만난 주민은 “의도는 아니라는 걸 알지만 반복되면 피로가 쌓인다”고 말했다.

외국인 근로자 역시 불안을 느낀다. 스리랑카 출신 근로자 E씨는 “규칙을 따르고 싶은데 어디에서 배워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전했다. 현행 정착 지원 체계는 결혼이민자 중심으로 구성돼 있어, E-9(비전문취업)·H-2(방문취업) 등 ‘노동 중심 체류자’가 생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공식 창구는 거의 없다.

결국 ‘몰라서 생긴 행동’은 주민에게는 불편으로 외국인에게는 불안으로 쌓인다. 문제의 핵심은 문화 차이가 아니라 초기 정보 제공의 부족이다. 이 틈이 좁혀지지 않는 한 비슷한 마찰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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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기관에서 상담받는 외국인 환자 모습. 언어 장벽과 의료 접근의 어려움은 많은 외국인이 한국에서 겪는 대표적 불편으로 꼽힌다. /클립아트코리아

◇ 외국인에게도 포항은 쉽지 않은 도시⋯의료·언어·행정이라는 높은 벽

여성가족부의 ‘2023 다문화가족 실태조사’에서는 외국인이 한국에서 겪는 어려움으로 의료 이용과 언어 장벽 등이 지목됐다. 이는 포항에서 만난 외국인 유학생과 근로자들의 체감과도 정확히 맞아떨어진다. 증상을 설명하기 어렵고 의사의 말을 이해하지 못할까 두려우며 통역 지원도 충분치 않다. 의료비 확인 과정 역시 부담이 된다. 결국 많은 외국인이 병원 방문조차 누군가의 동행을 필요로 한다.

언어 장벽은 의료를 넘어 행정·주거·교육 전반에서 반복된다. 각종 서류 신청, 학교 상담, 계약서 검토 등 대부분의 제도적 절차가 한국어를 기준으로 설계돼 있기 때문이다. 외국인은 “틀릴까 봐 걱정되는 상태”로 일상을 지내야 하고 이는 도시와의 관계에서 지속적인 긴장감을 만든다. 각기 다른 환경에서 살아가는 계절근로자와 유학생조차 언어·제도·고립이라는 공통된 장애물 앞에서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 포항은 다문화 도시의 초입에 서 있다

포항은 이미 고령인구가 23.5%를 넘어선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생산가능인구는 꾸준히 감소하고 있지만, 제조·수산·물류·농축산업의 여러 현장에서 외국인은 사실상 ‘없으면 공정이 멈추는’ 핵심 노동력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경제적 필요성과 정서적 거리감은 서로 다른 속도로 움직인다. 산업은 외국인을 요구하지만, 생활권에서는 여전히 익숙함보다 낯섦이 먼저 작동하는 순간이 많다. 그 결과 외국인은 도시 경제의 필수 요소이면서도 동시에 ‘새로운 이웃’으로 인식되는 이중 구조가 형성된다.

이 같은 상황은 포항만의 특수성이 아니라 다문화 사회로 넘어가는 도시들이 공통으로 경험하는 전형적 단계다. 문제는 감정의 복잡성 자체가 아니라 그 복잡한 감정을 안전하게 흡수할 제도가 충분히 갖춰져 있지 않다는 점이다. 고마움과 불편, 환영과 조심스러움은 자연스러운 감정이지만, 그 사이의 빈 공간이 제도적으로 메워지지 않으면 오해가 반복되고 거리감이 누적된다.

도시가 필요로 하는 인력 구성의 변화와 시민이 변화를 받아들이는 속도가 맞물리지 않는 지금, 포항은 다문화 도시로 넘어가는 첫 관문 앞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다.

◇ 공존은 저절로 오지 않는다⋯감정을 받쳐줄 구조가 필요하다

포항이 다문화 도시로 성숙하기 위해서는 외국인과 시민 모두가 불안을 덜 느낄 수 있는 기반이 필요하다. 분리배출, 응급 상황 대응, 주거 규칙 등과 같은 기본 생활 정보는 단순 번역을 넘어 ‘이해할 수 있는 형태’로 전달돼야 한다.

또 각 부서와 기관에 흩어져 있는 외국인지원 기능을 연계해 체류 목적이 다르더라도 ‘삶 전체’를 아우르는 지원이 가능해야 한다.

지역사회 경험의 통로도 넓어져야 한다. 단기 노동자에게도 지역의 일원으로 존재감을 느낄 기회가 제공될 때 낯섦은 줄고 관계는 자연스럽게 확장된다. 주민 역시 일상의 작은 접촉을 통해 자연스럽게 감정의 폭을 넓혀가야 한다. 공존은 선언이 아니라 경험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포항은 지금 다문화 도시의 초입에 서 있다. 외국인 없이는 산업과 인구 구조가 유지되기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공존은 숫자로 자동 생성되지 않는다.

환영과 불안, 고마움과 낯섦이 동시에 존재하는 이 복잡한 감정의 지도는 포항이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말해준다.

완벽한 이민은 없다. 그러나 서로의 불안을 줄이는 도시는 만들 수 있다. 감정을 이해하는 속도만큼 도시의 미래는 달라진다. 그리고 그 선택이 포항의 다음 10년을 결정할 것이다.

/단정민기자 sweetjmini@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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