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에서 다쳤으나 군의관은 오진하고 정부 부처는 민원 기각, 또 기각 아들 제대 후 엄마가 2년 걸친 분투 끝에 상이 판정 받아내
대한민국은 국방의 의무를 헌법적 가치로 말하고, 그 가치는 병역이라는 형태로 청년들의 삶 속을 구속한다. 그러나 정작 그 의무를 수행하는 청년들에게 국가는 무엇을 돌려주고 있는가. 필자는 지난 2년 동안 이 질문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것도 매우 불편한 방식으로.
큰아이는 군 복무 중 오른손을 다쳤다. 체력단련 중 손목이 비정상적으로 꺾였고, 극심한 통증과 부기가 이어졌다. 그러나 군의관은 X-ray만 찍고 “단순 염좌”라는 추정진단을 내렸다. 정형외과 전문의도 아닌, 마취통증의학과 전공의였다. 그 진단은 전역할 때까지 재검토되지 않았고, 아이는 손이 뒤로 젖혀지지 않는 명백한 기능 이상을 안고도 군 생활을 버티며 만기 전역했다.
이것은 의료 실수이자 군 조직의 구조적 한계가 한 청년의 신체를 파괴한 사건이다. 도서 지역 부대에는 정형외과 전문의도 없고, CT·MRI도 없다. 진단이 불확실하면 외진을 보내는 것이 상식이지만, 군의관은 그 기본조차 지키지 않았다.
이제 와서 원망해 무엇하랴.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전역 후 손 기능은 더 나빠졌고, 그 사실을 부모인 내가 알 때까지 2년이 걸렸다. 민간병원 정밀검사에서 드러난 것은 오래된 골절 불유합, 골괴사, 결국 ‘자가 뼈이식 수술’을 받아야했다.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상태였다. 주치의는 영구 장애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 말이 나의 가슴을 후벼 팠다.
그러나 더 큰 충격은 국가보훈처였다. 대구지방보훈청에 국가보훈대상자(재해부상군경) 신청을 했지만, 그들은 군의 오진인 ‘단순염좌’ 추정진단 기록을 그대로 믿으며 1년 만에 ‘기각’을 통보했다. 정밀검사도 없이 미세 골절이 없었다는 사실을 보훈청 스스로 입증할 수 없음에도, 그 책임을 청년에게 돌렸다.
필자는 부모로서 군의관의 오진을 증명해야 했다. 당시 중대장, 소대장, 행정관, 함께 복무했던 동료 사병들의 진술서를 6장 받았다. 제대하고 2년 만에 상급자 동료들의 연락처를 알아내기란 쉽지 않았다. 그리고 아들의 뼈이식 수술을 집도한 정형외과 전문의의 소견서 및 각종 영상 검사 판독 결과지를 첨부하여 대구지방보훈청장을 피의자로 하여 이의신청과 행정심판을 동시에 제기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또다시 억장이 무너졌다.
행정심판에서 다시 기각 처분을 내렸고, 중앙행정심판위원회는 청문회를 단 일주일 앞두고, 군 내부 문서인 ‘공모상병 인증 기록’, ‘부대장 면담기록’ 등을 청구인이 직접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군 문서는 민간인이 발급받을 수 없다는 가장 기본적인 사실조차 외면한 것이다. 담당 사무관은 “우리는 이런 서류를 안내할 의무가 없는 부서입니다. 부대에 요청했는데 아무것도 오지 않았습니다. 기록이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안내하지 않아도 되지만 호의로 말씀드린 거예요.”
행정절차법 제8조는 “행정청은 민원인이 절차에 필요한 사항을 알 수 있도록 충분히 안내해야 한다.” 라고 규정한다. 법이 정한 ‘의무’를 공무원이 ‘호의’로 격하시키는 순간, 국가는 국민의 권리를 개인의 기분에 맡긴 것이 된다.
나는 직접 국방부와 해병대에 연락하며 정신없이 뛰어야 했다. 결국 필요한 기록 없이 청문에 임해야 했고, 청문 하루 지난 날 해병대 관계자는 “필요한 모든 군 자료를 이미 중앙행정심판위원회에 보냈다”고 했다. 즉, 군부대에서 보낸 자료를 담당 사무관이 놓친 것이다.
그렇게 청문회가 열리고 1달 반이 지났다. 그리고 드디어 대구지방보훈청에서 한통의 통지서가 왔다. “직무 수행이나 교육훈련과 관련한 상이로 인정하여 국가보훈보상대상자(재해부상군경)로 결정한다”고. 행정심판은 기각이었지만 이의신청에서는 중앙심판위원회가 아이의 부상을 재해부상군경으로 인정한 것이다.
이 결정은 하나의 사실을 증명한다. 초기 ‘기각’부터 잘못된 것이다. 대구지방보훈청은 끝까지 자신의 ‘기각’ 판단을 고수했지만, 결국 상급기관인 중앙심판위원회의 판단은 그 결정이 허술했음을 드러냈다. 이 사건은 아들 한 명의 문제가 아니다. 군 의료와 보훈 행정이 얼마나 부실하고 거만한지를 그대로 노출한 사례다.
국가는 말한다. “국가유공자 예우는 국가의 책무다.” 그러나 정작 ‘유공자’의 문 앞에 서기까지 국가는 끝없이 요구한다. 증명하라. 증명하라. 또 증명하라. 그러지 못하면 끝까지 네 책임이다.
묻고 싶다. 국가는 젊은이들에게 국가를 위해 국방의 의무 운운하며 희생을 요구할 자격이 있는가. 군인의 건강한 신체는 개인의 몫이 아니다. 그것은 국가의 의무다. 이제 그 의무를 이행할 차례는 국가다.
/박시윤 답사기행에세이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