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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문인협회 병술년 개띠 모임 ‘몽돌회’ 문학 발표회

등록일 2025-12-15 08:37 게재일 2025-12-15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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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 이어준 팔순의 풍경
세월이 빚은 둥근 우정 구순까지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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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순을 맞은 몽돌회가 한자리에 모여 팔순기념발표회를 가졌다. 뒷줄좌에서 시계방향 방종현, 박창기, 손동락, 이동민, 황인동, 정재숙, 유가형, 손진실, 이종열, 김숙희, 남명희.

세월은 참 묘한 조각가다. 사람을 다듬는 도구는 고운 손길이 아니라 바람과 파도, 그리고 생활의 부딪힘이다. 그렇게 깎이고 부딪히며 생긴 모서리들은 어느새 둥글어지고, 그 둥근 얼굴들이 서로를 마주할 때 비로소 따뜻한 온기가 피어난다. 대구문인협회 병술년 개띠 모임 ‘몽돌회’의 풍경은 바로 그 세월이 빚은 둥근 광채에서 비롯된다.

지난 10일, 대명동 물배기 한정식. 한 해를 매듭짓는 12월, 팔순을 맞은 문인들이 저마다 한 편의 시와 수필을 품고 한자리에 모였다. 오래된 벗들의 눈빛이 오가고 웃음이 번질 때마다 식당은 작은 문학관으로 변했다. 이날 열린 ‘팔순 기념 문학 발표회’는 단순한 연례 행사가 아니라, 서로의 세월을 확인하고 문학으로 다시 잇는 의식에 가까웠다.

몽돌회는 “팔순을 앞두고 한 번 더 둥글어지자”는 뜻으로 결성된 동갑내기 문인 모임이다. 이름 또한 상징적이다. 몽돌은 수천 번 파도에 부딪히며 모난 흔적을 지우고, 마침내 손바닥에 포근히 안기는 둥근 돌이 된다. 문인들의 삶 또한 그러했다. 각자의 풍파는 달랐지만, 세월이 남긴 결은 놀라울 만큼 닮아 있었다.

2015년 결성된 몽돌회는 시인 11명과 수필가 5명으로 구성되었으며, 교수·의사·출판인·전직 교장과 군수 등 다양한 이력을 지닌 이들이 함께하고 있다. 창립 멤버였던 고 박방희 시인의 별세로 현재는 15명이 활동 중이다. 한때는 날카롭게 빛나던 경력들이 이제는 오히려 둥근 문학적 감수성으로 이어지고 있다.

발표회는 시작부터 웃음이 넘쳤다. “나이보다 발음이 먼저 떨리면 어쩌나”라는 농담에 방 안 가득 웃음이 퍼졌지만, 작품 앞에서는 누구보다 진지했다. 팔순이라는 숫자가 이들의 글맛을 흐리게 하지는 못했다.

첫 낭독은 전 청도군수 출신 황인동 시인이 맡았다. 자작시 ‘휙’에서 그는 “나와 노을 사이로 KTX가 휙 지나간다, 맞다 저놈이 세월이다”라고 읊었다. 짧은 문장은 오래도록 방 안에 머물며 모두의 마음에 같은 표정을 남겼다.

박창기 시인은 고인이 된 아내의 1주기를 맞아 쓴 ‘돌아가는 길’을 낭독했다. “더 사랑하지 못한 것까지 미워해달라”는 구절에서는 깊은 침묵이 흘렀다. 문학이 상처를 어루만질 때 비로소 위로가 태어난다는 사실을 실감케 한 순간이었다.

이어 손동락 시인의 ‘무너진 사랑 탑’, 손진실 시인의 ‘백장미’, 김숙희 시인의 ‘세월 속에서’가 차례로 발표되며, 각자의 기억과 감정이 저마다의 온도로 청중의 마음에 스며들었다. 이종열 시인은 ‘문학으로 맺은 인연’을 통해 “어색했던 만남도 시로 꿰매다 보니 따뜻한 옷이 되었다”고 말해 공감을 얻었다.

유가형 시인은 칠곡 팔거천의 고요한 풍경을 시로 풀어냈고, 정재숙 시인의 ‘물방울 하나’는 섬세한 관찰의 힘을 보여주었다. 이동민 수필가는 “수필은 재미있어야 한다”는 소신으로 곳곳에 웃음을 보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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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형 시인이 자신의  작품을 발표하고 있다.

가장 큰 공감을 얻은 작품은 남명희 시인의 ‘몽돌회’였다.

“세찬 파도에 모서리 잃어

둥글게 어우러진 몽돌

세상 풍파 넘어온 팔순 시인들

구순까지 동글동글 살다가

봄밤에 꽃지듯 떠나자”

낭송이 끝나자 “꽃 지기 전까지 회비는 정확히 내자”는 농담이 터져 웃음바다가 되었다. 몽돌회의 웃음은 언제나 젊었다.

몽돌회를 든든히 지탱하는 두 축은 황인동 시인과 방종현 수필가다. 사회와 연주, 분위기 메이킹까지 맡지 않는 역할이 없을 만큼 활약하며, 두 사람 모두 대구예술상 수상 경력을 지녀 모임의 예술적 깊이를 더하고 있다.

같은 해에 태어난 인연, 문학으로 이어진 인연, 팔순까지 글로 마음을 나누는 인연은 흔치 않다. 이날 확인된 진실은 분명했다. 문학은 삶을 둥글게 만드는 힘이며, 우정을 오래 지속하게 하는 기술이라는 사실이다.

행사 말미, 누군가 조용히 말했다.

“세월이 우리를 이렇게 둥글게 만들었으니, 구순 때는 더 빛나지 않겠습니까?”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팔순 문인들이 맞잡은 손은 그렇게 구순의 문턱을 향해 또 하나의 약속을 건넸다. 한편, 이날 사정으로 참석하지 못한 허홍구·이은재 시인과 최진근·노덕경 수필가의 빈자리는 아쉬움으로 남았다. 

/방종현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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